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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5 전쟁도 멈추게한 마를린 디트리히의 '릴리 마를린'♬~

          누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는가?
 
 
 
일설에는 1941년에 있었던 유고슬라비아 전선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많은 자료에는 1943년경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있었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황량한 사막에 밤이 찾아오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독일군 진지에서 한곡의 구슬픈 노래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미군 진지를 향해 흘러 나왔습니다.
 

                             구슬픈 노래가 레코드판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Vor der Kaserne, vor dem grossen Tor, Stand eine Laterne und steht sie noch davor.  So wollen wir uns wiedersehn, Bei der Laterne wolln wir stehn, Wie einst Lilli Marlene, wie einst Lilli Marlene ...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병영의 정문 앞에, 여전히 그녀는 서 있네.  그렇게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가로등 옆에서 우리는 계속 서 있고 싶어,  언젠가 릴리 마를린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마를린이 그랬듯이 ...
 

 

이 노래는 1915년 제1차대전 당시 독일의 라입(Hans Leip 1893~1983)이 러시아 전선으로 떠나며 그의 애인을 생각하며 썼던 사랑의 시에 1937년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슐츠(Norbert A. Schultze 1911~2002)가 곡을 붙여 만든 구슬픈 반전가요 릴리 마를린(Lilli Marlene)이었습니다.

 
                                        릴리 마를린 레코드판 표지
 

독일은 이 애련한 사랑의 노래를 전선에서 크게 틀어 연합군 병사들이 향수병에 걸리도록 선무공작을 하였던 것이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만리타향 낯선 사막의 전쟁터에 싸우던 수많은 연합군 병사들은 순식간 우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군들은 그렇게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막의 미군들은 음악소리를 듣고 우수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얼마안가 미군 쪽에서 독일 측을 향하여 대응차원에서 노래를 틀어놓았는데 이때의 노래도 바로 릴리 마를린이었습니다.  이때 미군 측에서 독일 진지로 틀어놓은 레코드에서 릴리 마를린을 부른 사람은 당대의 섹스심벌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여배우 마를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 )였습니다.

 
                                      당대의 섹스심벌 마를린 디트리히
 

남자의 가슴을 후벼 파는 디트리히의 섹시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독일 측을 향하여 울려 퍼지는 릴리 마를린 노래 소리는 역시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 전쟁을 하던 수많은 독일병사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결국 총통에 명령에 따라 싸우기만 하는 로봇이 아닌 사람들이었던 독일의 젊은 병사들도 우수에 빠져들었습니다.
 

              디트리히와 그녀의 노래는 미군은 물론 독일군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릴리 마를린은 독일군은 물론이거니와 연합군 병사들도 가장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는데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이 노래가 울려 퍼질 시간이 되면 일단 전투가 중단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속설도 전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들리면 전투가 중단되었다는 속설까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런데 독일 측을 향한 역공작의 히로인이었던 디트리히는 베를린에서 태어난 순수한 독일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수로 연예계에 몸을 담았으나 1930년 폰 슈테른베르크(Josef von Sternberg 1894~1969) 감독이 제작한 영화 푸른 천사(Der Blaue Engel)를 통해 은막에 데뷔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고 더불어 세계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에서도 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디트리히는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후 디트리히는 독일과 미국에서 몇 편의 영화를 더 찍었는데, 당시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벨스가 나치의 선전 영화에 출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원래부터 정치적인 신념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나치를 혐오하였던 디트리히는 제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미국에 정착하여 시민권을 얻고 세계적인 배우로 활동하였습니다.
 

                 나치의 강요가 있었으나 그녀는 단호히 거부하고 미국에 정착합니다.
 

전쟁 후 등장한 유명한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기 전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섹스심벌이었던 그녀는 앞에서 예를 든 선무방송을 위한 녹음뿐만 아니라 전쟁 중 군비모금 자선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쇼를 하기도 하고 최전선을 방문하여 병사들을 위문 하는 등 反나치 활동에 열성적이었습니다.

 
                                       부상병을 위문하는 마를린 디트리히
 

이러한 활동은 미국에서는 인기연예인의 반열에 그녀를 올려놓아 명성을 드높였지만 반면 고향인 독일에서는 지금도 국가를 반역한 매국노로 은연중 지탄받고 있습니다.  비록 나치에 반대하는 행동이어서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못하지만 전쟁 중 그녀가 부른 노래 소리에  방심하다가 죽어간 많은 군인들의 미망인들이 그녀를 마녀로 매도 할 만큼 미움이 크다고 합니다.
 

                    삭막한 전선에서 들린 그녀의 노래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상대를 맥 빠지기 위해 틀어 놓았던 릴리 마를린 그리고 이 노래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전선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만인의 연인이 되었던 마를린 디트리히 ... 이 모두가 전쟁으로 인하여 예술이 불행에 빠져든 것일까요?  아니면 전쟁의 어지러움 속에도 예술이 계속 빛을 발한 경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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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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