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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mm 곡사포 이야기 [下]
  - 위대한 국군 포병의 시작 M-3
 
 
5,400여 문에 이르는 국군의 포병 전력은 서방 세계 최대로 평가받지만 우리와 대적 중인 북한의 포병 전력은 과하다
싶을 정도인 13,000여 문으로 추정될 만큼 엄청난 규모다. 한마디로 한반도는 단위 면적당 야포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포병 전력에서 이처럼 현격한 양적 격차가 지속되었음에도 단 한 번도 북한에 주눅 들었던 적이 없었다.


               북한의 포병은 양적으로 엄청난 규모지만 우리는 이런 양적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 단 한대도 없던 전차에 비한다면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지만 포병전력도 엄청나게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개전 전에 남북 포병간의 전력비는 약 1:4 정도로 추정될 만큼 지금보다 더 큰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놀라운 투혼과 뛰어난 작전으로 아군은 이러한 차이를 상쇄하면서 당당하게 맞서왔다.
 
                                   창군 초기 국군의 가장 강력한 화력이었던 M-3 곡사포
 

창군 당시 국군이 보유한 야포는 M-3 105mm 견인곡사포
였는데 이것은 당시 미군이 표준으로 사용하던 M-2 105mm 곡사포를 공수부대용으로 축소 제작한 것으로 사거리가 M-2의 60퍼센트 수준이었고 화력도 약하였다. 따라서 종전 후 많은 수가 폐기되거나 여러 나라에 공여되었는데 이때 국군도 이를 수령했다. 이처럼 미군에게는 보잘 것 없는 무기였지만 M-3는 신생 대한민국 육군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미 공수부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
 

하지만 국군이 인계받은 91문은 겨우 오늘날 1개 포병연대의 수준이었다. 당시 국군은 총 8개 사단과 2개 독립연대로 편제되어 있었는데 야포가 모자라 38선을 지키던 제1, 6, 7, 8사단과 독립 제17연대에만 포병대대가 배치되었다. 반면 북한은 각 사단별로 122mm 곡사포와 76mm 곡사포가 혼성 편재된 포병연대를 구축하고 있었고 별도로 Su-76 자주포도 운용해 총 400여 문의 야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남침의 선봉에 내세웠던 Su-76 자주포
 

지금은 K-9처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중무장하고 있지만 여타 분야처럼 국군의 포병도 그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6.25전쟁에서 포병의 신화는 양적으로 압도한 북한군이 아니라 부족한 장비를 갖춘 국군이 써내려갔다. 평소 훈련을 거듭하며 실력을 배양해 온 아군의 포병들은 전선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펼치면서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M-3 곡사포대의 훈련 중 모습
 

옹진반도를 지킨 제17연대가 3배가 넘는 북한군의 공격으로 부대가 분리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틀간 적의 남진을 막고 연대 전력의 90퍼센트가 해상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최후까지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제7포병대대의 활약 덕분이었다. 특히 포병대대장 박정호(朴廷鎬) 소령은 마지막 포탄까지 완전 소모시킨 후 적의 노획을 우려해 야포를 파괴한 후 맨 마지막으로 해상 철수했다.

 
                                                작전 중인 국군의 M-3 곡사포
 

문산 축선을 방어하던 제1사단은 편제를 6.25전쟁 내내 유지했던 유일한 국군 사단이었다. 한마디로 적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강철 철벽과도 같은 부대였고 이런 전통은 전쟁 개전 직후 전략적으로 아군이 가장 불리하였던 1950년 6월에도 그러했다. 고랑포 인근 357고지 전투와 봉일천 전투처럼 개활지로 나온 적 주력의 남진을 피로 막은 제6포병대대의 활약으로 제1사단은 방어전을 펼칠 수 있었다.

 
                            북한은 월등한 포병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아군에 압도당하였다.
                              (직사화기로도 사용한 북한군의 KS-12 85밀리미터 대공포)
 

의정부 축선은 잘못된 방어 전략으로 아군의 몰락을 가져온 실패의 반면교사가 되었지만 그러한 패배 속에는 육군포병학교 교도2대대장으로 긴급 투입된 김풍익(金豊益) 중령처럼 제로 거리에서 직사사격으로 적의 전차 부대를 저지한 살신성인의 노고도 숨겨져 있었다. 비록 꽃처럼 산화하면서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이들의 투혼은 득의만만하게 남진하던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풍익 중령
 

동부전선에서 아군 포병의 분투는 한국전쟁 초반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결정타였다. 춘천 지구를 방어한 제6사단 16포병대대와 강릉 지구의 제8사단 18포병대대는 한마디로 아군 포병사의 신화가 되었다. 제16포병대대의 놀라운 선전을 발판으로 제6사단은 북한군 2군단을 궁지에 몰아붙였고 제18포병대대는 백병전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진지를 고수하여 아군 주력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퇴로를 확보해 주었다.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국군 포병부대
 

이처럼 미약한 장비를 이끌고 한국전쟁 초기에 인상적인 승리를 이끌어 온 선배 포병부대와 용사들의 무용담은 단지
수적 열세가 전력의 우열을 가르는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었다. 따라서 지금도 수적으로는 북한의 포병전력이 우리를 앞서지만 그것이 결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미 자랑스러운 전통은 국군 포병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고 앞으로도 길이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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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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