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an's Land'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16 전선에 울려 퍼진 크리스마스 캐럴 (2)
  2. 2009.11.30 전쟁에서 탄생한 명품 바바리코트 (2)
  3. 2009.11.16 제1차 세계대전의 이상한 승리 (2)
                                                     

                                                      크리스마스 이야기 [ 1 ]
 
                      1914년 에피소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쾌속 진공하던 독일군의 진격이 마른전투 (Battle of Marne) 에서 프랑스군의 강력한 반격에 막혀 멈춘 후 전쟁은 소강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참호전으로 변한 전선에도 어느덧 눈발과 더불어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고 밤은 점점 깊어져갔습니다.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어느덧 전선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춥고 습한 참호 속에 웅크리고 언제 있을지 모를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던 영국군들의 귀에 독일어로 부르는 낯익은 노래 소리가 낭랑한 바로 그때 들려 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四面楚歌처럼 영국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기 위한 독일의 심리전으로 처음에는 생각 하였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노래 소리는 서서히 독일군 참호 쪽 전체로 변해가더니 합창처럼 전선에 울려 퍼져 나갔습니다. 바로, 독일어로 부른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이었습니다. 그러자 영국군 참호 쪽에서도 이를 영어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한 낯 동안 포격이 반복되던 전선이 순식간에 크리스마스캐럴 아카펠라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치열한 (?) 노래 대결이 있은 후
                           독일의 한 병사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밤새 캐럴이 울려 퍼진 전선에 동이 터오자 한 독일군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와 영국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방아쇠에 손이 간 영국 병사들은 그 독일 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총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독일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작은 나무에 초를 단 크리스마스 트리였습니다.

 
                     양측 병사는 무기를 내려놓고 전선 중간으로 나와 어울렸습니다.
                                       (기념재현 행사와 박물관 기념물)


 
순간 영국군 측에서도 몇 몇 병사들이 참호 밖을 빠져나가 그 병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양측 지휘관은 놀라서 병사들을 제지하였으나 그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양측 참호 중간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No Man's Land 로 불리던 죽음의 땅에 잠시간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 입니다.


                              지옥의 전선에 크리스마스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의 극적인 모습이 담긴 실사)


 
참호 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그때서야 양측 참호 사이에 무수히 널려있던 양쪽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측 지휘관들이 시체수습을 위하여 잠시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합의합니다. 영국 병사들을 묻을 때는 곁에 있던 독일군들이 기도하고, 독일 병사를 묻을 때에는 반대로 영국군 병사들이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시신을 함께 수습하는 모습


                 이후 전쟁 기간 내내 시신 수습을 위한 일시적 휴전이 종종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체가 치워지자 들판에서 양측 병사들의 축구경기가 벌였습니다.  피탄 공이 가득 찬 진흙벌판은 공을 차고 쫓는 병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경기 후에는 병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지급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가족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휴전을 보도한 당시 신문보도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쪽 군 수뇌부는 경악하였고 적군 병사와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즉시 내려옵니다. 그리고 일선의 지휘관들에게는 참호를 벗어나 적군 병사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이적행위자로 간주하여 현장에서 총살해도 좋다는 지침이 하달됩니다.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1914년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고 다시 아침이 찾아오자 포탄이 상대편의 머리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전선의 병사들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멈춰졌던 전쟁은 명령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크리스마스의 평화는 결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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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
                                                    군복이야기 [ 2 ] 
                 참호전에서 나온 名品 
 

 
저절로 두툼한 외투를 찾게 되는 쌀쌀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신사들과 새침때기 숙녀들 중에 흔히 바바리(Burberry)라고 불리는 코트로 한껏 멋을 내고 종종 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흔히 두툼한 점퍼류의 외투에 비하면 방한 능력이 떨어지지만 미적 감각을 추구하는 정장차림의 멋쟁이들에게 바바리만큼 잘 어울리는 훌륭한 패션소품도 없습니다.

 
                              바바리코트는 여성 정장에도 잘 어울리는 외투입니다.
 

그런데 이런 멋진 외투가 종종 바바리맨으로 불리는 변태들의 도구로 사용되어 사회문제가 되고는 합니다. (딸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못된 변태들이 박멸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옷이라도 이상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천박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옷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야 빛난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생각됩니다.

 
              학교근처에서 바바리맨을 체포하는 장면이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입니다.
                       하루 빨리 저런 못된 변태들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바바리는 고유명사입니다.  원래 이런 종류의 의류를 트렌치코트(Trench Coat)라 하는데, 영국의 세계적인 패션 메이커인 바바리社에서 만든 트렌치코트가 우리나라에서는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제품 중 이런 케이스가 많은데 예를 들어 해당 아이템의 유명제품인 포크레인(Forkcrane)이나 호치키스(Hotchkiss)는 굴삭기(Excavator)와 스테플러(Stapler)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바바리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험프리 보가트
                  아마 트렌치코트가 가장 멋있어 보이는 명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그런데 하필 이처럼 멋진 코트에 뜬구름 없이 참호를 뜻하는 트렌치라는 단어가 붙게 되었을까요?  의외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현대 도시인 최고의 패션 정장인 트렌치코트는 말 그대로 참호용 군복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사들의 정장이나 소품 중에 의외로 밀리터리와 관계된 것이 많은데 트렌치코트도 그러하며 오히려 다른 소품에 비해 그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 어지러운 참호와 멋진 패션 소품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1914년 제1차 대전 초기, 독일의 진격이 프랑스의 마른 부근에서 멈춰 진 후 서부전선은 종전 때까지 지리 한 참호전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이러한 참호전은 불과 수 백 미터의 전진을 위하여 수십만 군인의 어처구니없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전쟁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한심한 전투의 표본으로 기록되는데 대표적으로 솜전투, 베르덩전투, 이프르전투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참호에서 덧없이 죽어갔습니다.
 

참호를 파고 대치한 양측 사이의 땅을 흔히, No Man's Land라고 지칭 할 만큼 그야말로 참호전은 현실에 나타난 지옥이었습니다.  춥고 습한 지옥 같은 참호에 머물며 전투를 벌여야 했던 군인들을 위해 방습 및 보온기능이 있는 군납외투가 납품되었는데 이때부터 이를 트렌치코트라고 불렀습니다.  그중 영국군들이 사용하던 것이 좋다고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면서 영국군의 트렌치코트는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투가 되었습니다.
 

                  습하고 추운 참호에서 싸우는 군인들을 위한 외투가 만들어졌습니다.
 

바바리社외에도 또 하나의 메이커인 아쿠아스텀(Aquascutum)社의 트렌치코트도 상당히 호평이 좋아 당시 영국군 군수납품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국내에는 바바리가 최고의 브랜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아쿠아스텀의 트렌치코트도 꽤나 유명합니다.  어쨌든 종전이 된 후 그 기능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트렌치코트를 애용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중요한 패션 의류가 되었습니다.

 
                               바바리사의 트렌치코트를 착용한 영국군 장교
 

오늘날 세계의 멋쟁이들이 외투로 입고 다니는 트렌치코트는 말 그대로 전쟁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다수 현대인들이 참호전을 치르는 심정으로 트렌치코트를 입고 출근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트렌치코트는 외부에서 활동이 많은 영업사원들이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분들의 삶을 보면 세상 살아가는 자체가 참호전 못지않다는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바바리맨을 검색하다 보니 재미있는 사진이 있어 몇 장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런 우스운 모습과 달리 못된 변태들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사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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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2

             이런 된장!  우리 이긴 것 맞아?
 
 
 
지난 11월 11일은 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지 91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와 관련한 작은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낯설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지옥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격투기 선수인 추성훈과 최홍만이 경기를 벌였습니다. 추성훈이 경기개시와 더불어 최홍만을 흠씬 두들겨 팹니다. 최홍만이 종종 반격을 하였지만 라운드가 계속 될수록 추성훈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되었고 결국 최홍만은 너무 맞아서 두 눈이 부어서 감길 정도로 수세에 몰렸습니다.

 
         실컷 몰리다가 회심의 반격을 하려는데 상대가 기권하여 버리면 조금 황당하겠죠?
 

그런데 최홍만을 때리다 때리다 추성훈이 지쳐버리고, 이틈을 노려 뚝심의 최홍만이 반격을 하려는데 갑자기 추성훈이 타월을 던지고 기권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최홍만은 기권승을 거두는 것이지만,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추성훈을 제대로 때려 보지도 못하였으니 얼마나 약이 오를까요? 차라리 패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런 경우라면 승리를 얻은 것이 실감도 나지 않고 그리 기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전사를 살펴보면 이런 황당한 승리를 거둔(?)전쟁이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대전쟁(Great War)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그러합니다. 세계대전으로 호칭될 만큼 서류상으로는 여러 나라가 참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독일과 러시아의 동부전선과 독일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싸웠던 서부전선의 전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제1차 대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서부전선
 

그런데 이 전쟁의 패자(敗子)가 다 아시다시피 독일입니다. 외부와 고립된 상태로 장기간의 총력전을 펼친 결과, 독일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자 결국 항복하였지만, 사실 단지 물적, 인적 손실의 관점에서 볼 때 바다 건너와서 싸운 영국과 뒤 늦게 참전한 미국을 제외하고는 독일의 손실은 제1주적이었던 프랑스나 러시아 보다 적었습니다.

 
            독일도 많은 희생을 겪었지만 오히려 승자인 프랑스의 피해가 더 컸습니다.
                                   (베르덩전투의 독일군 집단묘지 )
 

오히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에 의거 휴전한 동부전선은 제정러시아의 많은 영토를 전리품으로 얻은 독일이 승자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부전선으로만 축소한다면 프랑스와 벨기에영토에서 대부분의 전쟁행위가 벌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99% 이상의 물적, 인적 피해가 프랑스와 벨기에 영토에서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서부전선에서 지옥이 재현된 곳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영토였습니다.
                                        (서부전선 주요 전투지역도)
 

연합군이 쏘았던, 독일군이 응사했던 간에 상관없이 포탄들은 프랑스나 벨기에 땅에서 폭발하였고 이 때문에 이들 국가의 영토의 물질적 피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이른바 현실에 등장한 지옥으로 표현되는 마른, 이프르, 솜므, 베르덩 전투 등의 일련의 대회전으로 인하여 서부전선은 말 그대로 No Man's Land가 되었던 것 입니다.

 
                   항공촬영한 전선의 피탄공 인데 마치 스펀지 같은 모습입니다.
                               과연 저곳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원래 사이도 나빴고 감정도 좋지 않은 사이였지만, 전쟁 내내 이처럼 무서운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종전 후,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데 기를 쓰고 앞장섰던 것은 한편으로 충분히 이해할만한 합니다. 문서상으로는 항복을 받았지만 독일영토에 제대로 총알 한발 날려보지 못하고 전쟁을 끝내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요?

 
            승자가 얻은 것은 황당한 폐허뿐이었는데 이런 것을 승리라 할 수 있는지요?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 독일이 항복을 하고 두 손을 들었을 때, 물론 지긋지긋한 전쟁이 드디어 끝나서 좋기는 하였겠지만 막상 독일을 제대로 때려보지도 못하고 막아내기만 급급하였던 프랑스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된장, 아니 케챱! 우리 이긴 것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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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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