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외교학 전공 후 행시 국제통상직을 거친 제가 국방부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같았습니다.


"국방부엘 가? 거기가 외교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다들 이렇게 반응하시더라고요...그래도, 저는 단호히 국방부를 선택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과연 국방부에서 외교업무를 할 수가 있었을까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국방부 동북아정책과 분들

 


여기 이 분들!  이 분들은 바로 동북아 국가들과의 대한민국 군사외교 업무를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국방인들은 '지성'에 항상 '미모'를 겸비한다고나 할까요? ^^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바로 접니다.)


동북아정책과 사무실

 


여기는, 제가 위 사진속의 분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국방부 국제정책관실 동북아정책과" 랍니다. 규모가 아담하죠?
하지만, 사무실 크기가 바로 업무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죠.
저희 사무실 안에 몇 시간만 앉아계셔 보십시오. 유창한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각종 동남아 언어들의 선율을 동시에 감상하실 수가 있습니다. 동남아 각 국민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고나 할까요? (제가 수습사무관으로 이곳에 오던 날, 사무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능숙한 외국어 음성에 가슴설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여기 국제정책관실의 업무는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위급 인사교류', 또 하나는 '각국간 국방정책실무회의 개최'  업무랍니다.

 

한-일 합참의장 의장대 사열



먼저, '고위급 인사교류'는 국가 친선의 상징이자 장기간 해결되지 못했던 난제들을 극적으로 매듭짓게되는 계기가 되곤하죠. 외교, 실리 양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년 5월에는 '한-중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된 바 있는데요, '95년 양국간 국방교류 시작 이래 10년 만에 개최된 이 회담에서는,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걸맞게 '한-중 국방교류협력MOU' 체결이 검토되었고 '실장급 국방전략대화체 개설' 검토에도 합의를 이룬 바 있답니다.

*****************'한-중 국방교류협력 MOU'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다면, Click!*****************



둘째로, '국방정책실무회의'란 각 국간 국방교류협력 계획과 증진방안 등을 실무차원에서 논의하는 자리인데요, 교류협력이 활성화된 국가 간에는 보통 연 1회 '국방정책실무회의'를 개최한답니다.
제가 담당하는 중국과는 '04년부터 매년 1회 실무회의를 개최하며, 일본과는 '94년부터, 러시아와는 '97년부터 연 1회 이상의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있지요. 

각 국간 실무회의를 정례화하는 것은, 해당 국가간 군사교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필수적인 사안이므로 저희 국제정책관실에서도 실무급 회의의 정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 모습




위의 사진은, 연 1회 개최하는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의 모습입니다. 저 뒤에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보이시죠? '국방정책실무회의'는 고위급 회담보다는 외교적 성격이 다소 약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각 국 국방정책 실무자 간에는 현안에 대해 보다 집중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 하겠습니다. '09년 12월에 개최되었던 '09년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에서는 앞서 장관회담에서 거론되었던 '국방교류협력MOU 체결'과 '국방전략대화체 개설'이 주된 의제가 되었는데요, 조속한 시일 내에 후속조치를 완료하기로 의견을 같이하였던 뜻깊은 자리였답니다.  

그런데.. 2박 3일의 일정 내내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만 나웠다면, 각국 실무자들도 사람인지라 협력도 지겨워질 수가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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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시 2함대사령부 선상에서




그래서 요렇게! 부대 교류 차원에서 회의 개최국의 함정 방문 등도 실시하였지요.(앗! 저희 과장님과 제 사수이신 이 대령님께서도 출연하셨네요~)

때는 한겨울, 우리 해군함정 선상은 너무도 추웠습니다(오들오들~~). 그런데, 중국대표단은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 함정의 구조를 꼼꼼이 살피면서 계속하여 질문을 하시느라 아예 배에서 내려갈 생각을 않으시더군요...  이런 모습은, 중국의 자국 해군력 증강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중국해군 특전대원의 전술동작




또한, 중국 측은 대청해전 당시 한국 해군의 배치와 사용 전력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면서, 한국 측이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것은 양국간 교류정신에 위배된다고 잔뜩 불만을 토로하시더라고요.  순간, 모두가 당황한 속에서 우리 2함대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죠. "우리는 민주국가이므로 모든 것은 언론에 공개된 그대로이다. 보도자료와 실제 교전상황 사이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라고. 단호한 우리측 답변에 중국측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군사외교도 외교이다보니, 상대국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관건이겠으나, 상대측이 잘못된 언동을 보인다면 어느정도의 단호한  대처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절'과 '단호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과연 어떻게 적절히 구사할 것인지 늘상 고민하며 산답니다.

요즘 저희 과는, 동북아 각국이 개최하는 다양한 국제회의에의 참여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회의에의 참석을 준비한다는 것은, 겉 보기엔 화려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중요성 만큼이나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요.

오늘도 대한민국 군사외교의 선봉에서 열심히 뛰고있는 우리 국방부 국제정책관실, 여러분들도 많이많이 격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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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에 대한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처음 앉았을 때 막막했다. 자이툰이나 다이만처럼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서 글을 쓰라면 정말 자신이 있는데 (정말 그 이야기는 책으로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 않은 다른 파병 역사를 소개하는 글은 정말 자신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난 시오노 나나미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고 해서 열혈국방 식구들에게 대충 짜깁기 한 글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선 우리나라 파병사를 담은 두툼한 책 몇 권을 빌려 옆에 쌓아 두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어 봐도 답이 안나오기는 마찬가지. 역사책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매력적인 소재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괜히 쓴다고 그랬어, 괜히 쓴다고 그랬어......뾰로롱~ 블로그에 올려만 주세요~~.^^)

뭐가 좋을까? 뭔가 독특한 것? 아니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파병사(派兵史)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 놓은 책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못믿겠다면 대형서점의 인터넷 사이트나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로 들어가 검색해 보라. “파병”을 키워드로 넣었을 때 나오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대중의 관심에서도, 학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한 戰史가 아닌 파병사이기 때문이거나, 연구할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서 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앞으로 파병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도록 노력하겠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해외에서 헌신해 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戰士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왜 그곳에 가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말이다.


               파병의 기원


우리 군은 베트남에 전투 및 전투지원 부대 파병부터 최근의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때론 일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파병은 여러 가지 고려요소를 두고 고민한 결과 국익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들이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세계 속에 어깨를 펴고 자랑스럽게 우뚝 설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나라에 파병하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해외에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는지 그 파병의 기원에 대한 것은 학자에 따라서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앞에서 베트남부터라고 이야기한 건 뭐고 지금 다시 기원을 따지는 건 뭐야?’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로만 우리의 지식을 한정짓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자.

파병은 우리의 전쟁이 아닌 타국의 요청에 의해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여 고대사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다면 최초의 파병 기록은 신라 현덕왕 때인 서기 8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본기를 보면 “현덕왕 11년 7월, 당나라 군주절도사 이사도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의 현종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양주절도사인 조공을 보내 우리 군사들을 징발해 주도록 했으므로 왕은 순천군(順天軍) 장군 김웅원에게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가서 돕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가 3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파병을 했던 당나라에 대한 보답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글쓴이는 해외파병 관련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군인입니다. 「라라라」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하고요.^^  『열혈국방의 Blue Helmet(블루헬멧)』을 통해 넘쳐 흐르는 문학적 소양과 전문적인 군사지식을 접목해 해외파병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기고할 예정입니다.



파병에 대한 세밀한 절차 등이 문헌 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는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고려를 원정기지로 삼겠다는 원나라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나 대규모 원정군을 꾸려 파병했다. 1차 원정 때는 9백척의 전선(戰船)과 1만 5천여명을 지원했고, 2차 원정 때도 역시 9백척의 전선과 2만 5천여명이 동원되었다. 물론 원나라 군사 1만 5천여명에 대한 군수지원은 제외하고 말이다.


고려 2차 일본원정 요도

고려시대 전투장면을 묘사한 그림



조선시대에도 역시 유사한 사례가 있다. 명나라로부터 1467년과 1479년 각각 여진족 토벌의 요청을 받고 대규모의 병력을 보냈다. 2차 파병 때는 1만명을 파병했다가 회군했으나, 이로 인해 명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자 변방수비부대 3천명을 다시 급파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여진정벌 당시 전투를 묘사한 그림

조선의 2차 여진정벌 요도



조선이 두 차례나 정벌했던 여진은 임진왜란 후에 급격히 성장하여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웠는데, 이들이 요동으로 진출하자 명나라는 다시 조선에 정벌군 파병을 요청해 왔다. 조선은 임진왜란에 명나라가 군을 파병한 보답으로 1619년 다시 후금정벌을 위해 파병을 했다. 그런데 파병군을 이끌었던 강홍립은 주력군을 이끌고 홍경 근교 심하전투에서 후금군에게 투항했는데, 이는 광해군은 세력이 성장하고 있는 후금의 보복 침공을 예방하면서 동시에 대의명분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파병은 청의 요청에 의한 1654년, 1658년 러시아 정벌이 마지막이었다.


조선의 1차 나진정벌 요도

후금정벌 당시 진군을 묘사한 그림



우리 한민족의 파병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우리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주변국의 요청에 따라 정치․외교적인 차원에서 국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추진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파병과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국익증진과 민족자존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파병



우리 군,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군의 이름으로 태극기를 달고 나간 파병의 시작은 월남전이다. 1964년 9월 11일부터 73년 3월 23일까지 총 8년 6개월 동안 연인원 31만여 명이 577,476회의 작전을 수행했다. 월남전에 파병한 부대만도 주월사령부,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십자성부대, 비둘기부대, 백구부대, 은마부대 등 총 8개 부대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해병대(청룡), 해군(백구), 공군(은마)도 포함되어 있다. 1991년 걸프전에 국군 의료지원단(사우디)과 수송단(아랍에미레이트)을 보내기도 했으며, 2001년부터 아프간에서의 항구적 자유작전에는 해군 수송지원단 해성부대와 공군 수송지원단 청마부대를 비롯해 동의․다산부대를 파병해 2007년 12월 14일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이라크 자유작전에도 건설공병지원단인 서희부대와 의료지원단인 제마부대를 보냈으며(2003년 4월 30일~2004년 4월 30일), 2004년 8월 3일부터는 자이툰과 다이만부대를 이라크와 쿠웨이트로 2008년 12월 19일까지 파병했다.

그 이외에도 우리 군은 1993년부터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등 다양한 지역에 UN PKO의 이름으로 파병활동을 했으며, 2010년 현재 레바논을 비롯한 전 세계 17개 지역에 약800여 명을 보내 임무를 수행중이다.



<퀴즈>

열혈국방 식구들을 위해서 상품이 걸린 Mini Quiz를 준비했다. 일정병력을 부대 단위로 파병하게 될 경우에는 부대의 임무와 성격을 나타내는 부대명과 부대마크 등을 제작해 사용한다. 그 중 부대마크는 각각의 구성요소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 문제 들어갑니다.

Q> 아래의 그림은 어느 파병부대의 마크입니다.
     그 부대의 부대명(OO부대)과 파병했던 곳은 어디인가요?




정답(부대명과 파병 장소)을 비밀댓글로 남겨주시면 정답자 1명을 선정하여 해외파병부대 장병들의 어깨에 붙이는 태극마크 패치와 레바논 동명부대 기념품인 멋진 볼펜을 상품으로 증정하겠습니다.




다음에는 파병복에 관한 에피소드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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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소령 아이티서 헌신적 구호"

국방일보나 한국신문에 소개된 내용이 아닙니다. 지난 17일 브라질의 유력 일간지 폴랴 데 상파울루에서는 아이티 유엔안정화지원단(MINUSTAH)에서 근무중인 이 선희 소령(여군 35기)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폴랴 데 상파울루 신문에 소개된 이선희 소령 기사



신문은 MINUSTAH에 참여하고 잇는 유일한 한국 군인인 이 소령이 MINUSTAH의 브라질 군 캠프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쉴새 없이 아이티 재건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는 "전투화를 3일동안 벗지 않고, 앉아서 잔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이소령의 헌신적인 모습이 예상되시죠.!!!




이 소령은 09년 11월, 1년의 기간으로 파견되었으며, 평화유지군에 소속된 군 및 경찰의 유류, 식량, 식수 등을 담당하는 군수 담당 장교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티 재건을 돕기 위해 근무기간 연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소령의 군인정신에 고개가 숙여 지네요. 한편, 개인 및 부대별로 세계에 파병나가 있는 한국군은 14개국 7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엔군 통수권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기지내 기자회견장에서 이소령을 만나 "이 소령이 여기서 근무한다는 애길 듣고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해달라"고 격려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이선희 소령의 경우는 운이 좋은 케이스랍니다. 

이소령은 지진이 발생한 지난 12일 오후 유엔 사무실로 사용 중이던 시내 몬타나호텔에 있다가, 잠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사이 대지진으로 인해 호텔 건물이 팬케익처럼 차례차례 모두 무너져 내렸고, 호텔 외부에 있던 이소령은 극적으로 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근무하던 유엔 직원 40여명은 건물잔해에 깔려 사망했고, 190여명의 직원들은 실종된 상태라고 하니 안타까움이 이루말할 수 없네요. 파견된 우리 119 구조대원들의 활약에 조그만 기대를 걸어봐야 겠습니다.



   




유엔이 현재의 인력으로는 부족해 각국에 치안유지 병력을 아이티에 추가로 보내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정부에서도 PKO 파병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동의와 유엔과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라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사안이 시급한만큼 긴급히 편성될 수 있겠죠.!!!




우리 정부는 아이티에 천만 달러 규모로 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등, 아이티에 대한 구호의 손길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선희 소령을 위시한 우리 민관군의 구조 및 구호활동이 대지진으로 인해 상심해 있는 아이티인들에게 조그만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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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에게 대든 하룻강아지
 
                                                                
 
아이슬란드(Iceland)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 대서양의 북극권에 있는 제법 큰 섬나라로 국토의 크기가 대략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총인구가 불과 30만에 불과한 약소국입니다. 전통적으로 수산업과 관광산업이 이 작은 나라의 기반 산업인데 작년 말 불어 닥친 국제 금융위기 때문에 커다란 타격을 입고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의 풍광입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도 지상군이 약 120명 정도이고, 경비정이 4척인 해양경비대, 공군은 없으며 헬기만 4대인 그야말로 웬만한 국가의 지역경찰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민망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1949년 NATO 창설 12개국의 일원이었을 만큼 국가의 방위를 대외 동맹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슬란드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국제 동맹 체제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작지만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PKO 활동 중인 아이슬란드 여군)
 

아이슬란드는 징검다리처럼 유럽과 북미를 연결하는 대서양 항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제2차 대전 당시에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였음에도 영국과 미국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당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대서양을 통하여 생명선을 유지하고 있던 영국과 바다를 건너가 유럽에서 싸워야 할 미국에게 아이슬란드의 중립 선언은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아이슬란드 산스케이드에 주둔했던 미군
 

지리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중간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1986년 냉전체제의 해체를 예고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역사적인 회담이 열린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빅(Reykjavík)이었을 만큼, 냉전 시기에는 미국이 소련을 감시하기 위한 전략 시설물들을 이곳에서 비밀리에 운용하였고 주변 해역에 이를 역 감시하기 위한 소련의 함대가 수시로 출몰하고는 하였던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냉전을 허물기 시작한 역사적인 1986년 레이캬빅 미소정상회담
 
이처럼 군사적으로 자위를 행사하기에도 터무니없이 작은 초미니 국가가 지난 1976년 영국에 일전불사를 외치고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이 아무리 늙은 사자(영국의 상징이 사자)이지만 건방지게도 하룻강아지가 사자에 덤빈 형국이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영국이 아이슬란드를 요리하는 데 불과 반나절도 걸리지 않겠지만 영국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이슬란드 인근으로 출동하는 영국 구축함
 

한마디로 초등학생이 격투기 챔피언에게 싸움을 걸었다고 결투를 벌일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세계의 이목이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아이슬란드도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전무 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지만 결코 장난으로 영국과 대결하려 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게는 극히 일부지만 한마디로 아이슬란드에게는 모든 것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사자에게 대든 하룻강아지였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분쟁은 1976년 초 아이슬란드가 선포한 200마일 배타적 경제수역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영국 트롤 어선단이 아이슬란드의 선언을 무시하고 수역 안에서 조업을 계속하자 이를 쫓아내기 위해 아이슬란드 해양경비대가 출동하였고 반대로 영국해군이 자국 어선단 보호를 명분으로 군함들을 출동시켰습니다. 열 받은 아이슬란드는 펄펄뛰며 영국과 단교하고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노르웨이의 중재로 간신히 실전은 면하게 됩니다.

 
                              영국의 어선을 밀어내는 아이슬란드 경비정
 

그런데 이것도 처음이 아니었고 이미 1958년과 1972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충돌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슬란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영국과 처절히 맞섰습니다. 아이슬란드가 영국해군을 상대하기 위해 동원한 장비는 어선을 개조한 작은 보트였을 뿐이었지만 거친 북해의 바다위에서 영국의 구축함들과 당당히 대치하였습니다.
 

                       대구는 아이슬란드가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무슨 고기가 잡히기에 이렇게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전쟁까지 불사하였던 것이었을까요? 바로 유럽인들에게 최고급 어종에 속하는 대구(Cod)때문 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 근해는 한랭어종인 대구가 우글거리는 황금어장인데 앞에서도 언급하였던 것처럼 아이슬란드에서 어업은 국가의 생명선이기 때문에 이처럼 전쟁 불사까지 외치고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바다를 지키는 것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독도 근해에서 일본 순시선과 대치중인 해양경찰대 경비함정들)
 

결국 원만하게 타협이 이루어졌지만 혹자의 경우는 만일 1970년대 영국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였다면 과연 아이슬란드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무모한 만용이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누군가 빼앗으려든다면 과연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우리나라가 아이슬란드만큼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적어도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큼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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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07년 7월 레바논 남부지역(티르) UN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동명부대의 용맹한 활약상이 속속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09년 7월까지 주둔하기로 한 동명부대의 파병기한을 1년 6개월 연장하는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견연장 동의안을 심의 의결해 국회에 제출한 상태입니다.

  자 그럼 중동의 레바논에 파병된 우리 동명부대의 활약상을 사진과 더불어 강군이 설명해 드릴께요.^^*

 




   최근(6월 22일) 레바논 평화유지사령관 주관의 국제사격대회에서 UNIFIL(UN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국 12개국 20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동맹부대가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한국군 사격술이 세계 최고수준임을 과시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UNIFIL 사령관 주재하에 열린 슈퍼 파워 앤드 런(Super power & Run game)에서 11개 종목중 5개종목에서 우승하며, 파병국중 최고의 체력을 보유한 최강부대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동명부대는 파병국으로서의 강인한 체력뿐만 아니라 외교사절로서의 봉사활동 또한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레바논 남부지역 인근지역의 대학생 150여명을 초청해, 대한민국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마을별 도로포장, 마을회관 건립, 학교교육운동 사업 등을 전개하며 지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또한 받고 있습니다.  
 
  현지인을 대상으로한 태권도 교실 또한 주 2회로 실시하며, 한국군의 태권도를 알리고 주민들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도 만들고 있습니다.




 
 동명부대는?

 
레바논 동명부대는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부대, 아프가니스탄의 다산, 동의부대와 달리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파병된 유엔 평화 유지군입니다.

  동명부대는 우리나라가 유엔 평화유지활동을(PKO)을 위해 군대를 파병한 5번 째 국가로 전투병과 함께 파견한 국가로는 동티모르에 이어 두번째랍니다.  
 
  동명부대원은 총 359명으로 특전사 소속 전투병과 장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UN 평화유지활동 (PKO : Peace Keeping Operation)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명부대 동영상 캡쳐입니다.
(저작권 때문에 캡쳐만을 보여드려서 아쉽네요.^^*)

이역만리 레바논에서
국제평화유지활동을 벌이고 있는 장병들에게 박수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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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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