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4 전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11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2 ]
  2. 2011.04.12 주인이 바뀐 소련제 전차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2 ]
 
 
장갑대대의 주력 M-8 장갑차
 
한국전쟁 직전 '기갑연대'에서도 핵심전력은 국군 유일의 기계화장비 완비부대인 장갑대대였다. 미군정이 물러나면서 인도한 장비를 인수하여 창설된 부대였는데, 당시 국군의 모든 대대급 부대 중 최강의 전력을 갖춘 부대로 평가를 받았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국군의  무장이 얼마나 빈약하였는지 반증 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하다.
 


                          항복한 일본군의 안내를 받아 서울로 진입한 미군의 M-8 장갑차
 

3개 중대로 구성된 장갑대대는 M-8 정찰 장갑차 27대, M-2/M-3 반궤도 차량 24대 그리고 20여대의 무장 짚(Jeep) 차를 보유하였다. 부대 명칭대로 기갑연대 예하의 장갑대대라 칭하기에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이것이 창군 초기에 국군이 보유한 모든 기동 전투장비였다. 오늘날 국군의 기갑부대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민망한 수준에서 국군의 기갑부대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시가행진 중인 기갑연대 소속의 M-8 장갑차
 

당시 사료를 보면 이들 장비가 혼재된 형태로 중대가 편성되지 않고 M-8 중대, M-2/M-3 중대 그리고 무장 짚 중대로 각각 개별 편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후방임무가 아닌 정규전에서는 각 중대별로 분리되어 작전을 펼치기 보다는 대대 전체가 작전에 투입되어야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력이라 할 수 있는 M-8 중대조차도 소대별로 나누어 전방의 각 사단에 배속하여 운용하였다.
 

                              M-8 장갑차는 부득이한 사유로 소대별로 나뉘어 배치되었다
 

지금이야 통신강국 KOREA지만, 해방 후 우리나라의 통신사정은 몹시 열악하였고 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M-8에 장착된 SCR-506 무전기는 장거리 통신에 적합하여 남산통신소를 키스테이션으로 하여 육군본부와 전방 사단의 통신에 유효 적절히 사용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강릉의 8사단에 배속한 M-8 장갑차에서 송신한 육성이 서울 남산 통신소에서 수신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귀중한 자산을 통신용 목적으로 뿔뿔이 나눈 것이었다.
 


                             창군 초기 국군의 기간 통신망 역할을 담당한 SCR-506 무전기
 

이미 제2차대전을 통하여 집단화된 기갑부대가 효과적임은 입증된 사실이었지만, 사실 장갑중대의 전력으로는 굳이 집단화고 뭐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M-8을 통신용으로만 운용할 수는 없었다. 북한군 T-34 전차에 전방의 부대들이 유린되자 M-8은 출동하였다. 명령을 내린 상부나 이를 운용하던 병사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망설일 수 없었다.
 

                  창군 초기  M-8 장갑차는 국민들에게 국군의 위용을 어필하는 최고의 무기였다
 

M-8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서 정찰용으로 개발된 경장갑차였지만 건군 초기에 국군이 유일하게 운용한 중장비여서 시가행진 등 공개 행사에서 국군의 위용을 국민에게 어필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M-8과 비슷한 성능의 BA-64 정찰 장갑차 54대를 정찰 및 수색 용도로 운용하였지만 M-8이 전쟁 초기에 달려 나가 막으려 하였던 상대는 북한의 T-34 전차였다. 화력이나 장갑능력에서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M-8이 상대할 적수라면  BA-64 장갑차가 맞지만
                          T-34 전차의 남진을 막기 위해 출동하여야 했다. (노획한 BA-64)

 
의정부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을 돕기 위해 출동한 M-8의 37mm 주포가 불을 뿜어 수많은 철갑탄을 적 전차에 명중시켰지만 대부분 튕겨 나가는 참담함과 함께 차례차례 적 전차의 희생양이 되어 갔다. 이런 수모에도 불구하고 M-8 장갑차는 김포와 영등포 일대에서 북한군 6사단을 상대로 지연전을 펼칠 때 큰 활약을 하였고, 옥천 지연전에서는 적 전차의 무한궤도를 끊어 전차 공포증에 빠져있던 아군에게 용기를 불어 넣기도 하였다.

 

                M-8 장갑차의 모습을 일부 확인 할 수 있는 M-20 장갑차 (사진-4.19 민주혁명회)
 

이렇듯 개전 초 성능 이상의 활약을 펼친 M-8 장갑차는 여러 전투에서 차례로 파괴되었고, 북진 시 청진부근에서 전투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흥남철수 적재품목에서 발견 되지 않아 결국 1950년 말 국군 전력에서 사라졌다.  4.19 당시의 사진을 보면 M-8과 동일한 차체를 쓰던 M-20 장갑차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고 있다. 아쉽지만 사진으로나마 용감했던 M-8 중대원들의 무용담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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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무기의 재활용 사례 [ 上 ]
 
 
세계가 동서로 갈려 첨예하게 대립했던 냉전 당시에 서방측의 주력전차(MBT; Main Battle Tank) 중 최고의 성능을 가진 걸작이라면 서독의 레오파드(Leopard 1)전차를 꼽는다. 하지만 2차대전의 패전국이라는 치명적인 멍에를 가진 서독의 전차가 실전에 투입되기는 곤란하였고 주로 흔히 패튼시리즈(Patton Series)라고 불린 미국의 M-47/ 48/ 60전차들이 서방측을 대표하는 전차로 활약하였다.
 


                                     냉전 시기 서방측의 대표적 전차였던 M-60
 

반면 동구권에서는 1980년대 이전까지 공산권과 친 소련 국가들의 유일한 무기 공급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소련의 전차 일색이었다. 따라서 2차대전 이후 등장한 미소의 전차는 서로를 숙명의 라이벌로 여기고 상대를 뛰어넘기 위해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전차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고, 이들 무기를 채용한 국가들 간의 전쟁을 통해 미국과 소련의 전차들은 서로 뒤엉켜 싸웠다.

 

                                         같은 시기에 공산권을 대표한 T-55전차
 

이 시기 미국과 소련이 만든 전차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대규모의 기갑전을 벌인 경우는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 사이에 수 차례 벌어진 중동전에서였다. 동 시대에 있었던 한국전이나 월남전은 지형상 대규모 기갑전이 벌어지기 힘든 환경이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제 전차를 이용하던 이스라엘이 소련 전차를 사용하던 주변 아랍국들과 전투를 벌여 일방적이라 할 정도의 완승을 이끌어 냈다.
 


                                            욤키푸르 전쟁 당시 파괴된 양측 전차
 

하지만 이런 결과는 훈련, 전술에서 이스라엘이 뛰어났기 때문이지 전차의 성능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냉전 시기에 동구권에서 사용한 소련제 전차들의 성능이 상당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인데, 엄밀히 말해 현재 미국의 주력 전차로 명성이 자자한 M-1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전차가 소련의 전차를 성능면에서 압도한 적은 없었다.

 

                   M-1의 등장으로 미국은 소련보다 좋은 성능의 전차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차로 잘 알려진 T-34의 예에서 보듯이 전차에 대한 기술적 기반이나 생산 능력을 본다면 오래전부터 소련은 이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었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소련의 야심작인 T-54/ 55전차가 출현하였을 때 피탄 면적을 최소화한 혁신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기동성 그리고 서방의 전차들을 압도하는 대구경 주포 등으로 인하여 당대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소련의 기술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 T-34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대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T-54/ 55전차가 주인이 바뀌어, 그것도 격렬한 전투를 벌인 교전 상대에 의해서 더욱 더 강력한 전차로 탄생한 희한한 경우가 있었다.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이 노획한(사실 버리고 도망간 것을 접수하였다는 표현이 적절) 이집트의 T-54/ 55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유기된 T-55전차들
 

지금도 무기개조 분야에서 감히 어느 나라도 따라 올 수 없는 실력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인데, 그들은 전리품으로 수확한 T-54/ 55를 개조하여 최강의 T-54/ 55를 만들어 냈다.  바로 Ti-1967 타이란(Tiran)전차인데, 이 전차들로 별도의 기갑여단을 운용하여 아랍의 T-54/ 55와 교전을 벌이기도 하였고 1972년 욤키프르 전쟁 때는 최신식 T-62전차들까지 노획하여 새로운 타이란 전차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이 개조한 최강의 T-55인 타이란 전차 부대의 퍼레이드
 

이렇게 탄생한 타이란은 동급 최강의 T전차로 명성을 날렸고 한때 이들의 주인이었던 아랍 국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이들을 값지게 사용한 후, 외국에 팔거나 무상으로 원조하여 외교적으로 생색을 냈을 만큼 마르고 닳도록 써먹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만행(?)을 지켜만 보고 또한 얻어터지기까지 하였던 주변 아랍국들이 배가 아팠을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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