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작지 않았던 커다란 은혜

 
 
전투병을 파병한 16개 참전 국가를 포함하여 6.25전쟁 당시에 무려 40여 개의 나라들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직간접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웠을 때 도움을 주었던 이들 국가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두고두고 되새기고 기억하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듯하다.
 

6.25전에서 맹활약하는 필리핀군

                             
 
이들 국가들 중에는 전투병력 및 무기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으로도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미국과 같은 나라는 물론 의료용 알콜과 혈청 같은 특정물품을 보내주었던 쿠바 같은 생소한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라도 아쉬웠던 당시 우리나라의 입장을 고려할 때 도움을 주었던 나라들의 경중을 일일이 따지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지원한 40여 국가 중 굳이 참전 16개국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다른 가치로는 도저히 환산 할 수 없는 고귀한  인명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전 UN군 병사들 대부분에게 극동의 신생국 코리아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이역만리 타국이었다.
이처럼 생소한 곳에 와서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귀한 생을 마감하거나 아니면 평생을 가지고 갈 부상을 당하였다.

 

많은 외국의 젊은이들이 사상당하였다.

                                 
 
이런 너무나 고마웠던 16개 참전국 중에는 룩셈부르크대공국 ( Grand Duchy of Luxembourg ) 도 있다.
흔히 베네룩스 3국이라는 단어처럼 많이 들어는 보았지만 의외로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나라가 바로 룩셈부르크인데 유럽 중부의 프랑스, 독일, 벨기에 사이에 있는 입헌군주국으로 서울시의 4배 정도 되는 크기에 약 45만의 국민이 사는 미니국가다.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는 1867년의 런던조약으로 영세중립이 보장되었던 국가였다.
그러나 이웃 벨기에와 더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일에게 점령당하여 수많은 희생자와 국토의 황폐를 초래했기 때문에 소극적인 중립을 포기하고 1948년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창설국이 되어 집단 안보체계를 통한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는 정책 전환을 하게 되었다.
 

중립을 포기하고 집단안보 체제에 가담한다.(전쟁 당시 룩셈부르크를 점령한 독일군)

  
 
중립을 포기한 룩셈부르크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최초 44명의 자원자들로 구성 된 소대규모의 부대를 1950년 11월 한국에 파병하였고 이후 연인원 89명의 용사들이 지구 반 바퀴 건너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였다.
워낙 작은 규모라서 단독적인 작전은 펼치지는 못하였고 미 제3사단 예하의 벨기에대대에 편입되어 휴전 후까지 전선에서 활동을 하였다.
 

6.25전쟁에 참전한 룩셈부르크소대 (사진출처-동아일보)

                
 
하지만 룩셈부르크군이 소규모라 하더라도 후방에서 편하게 작전을 펼쳤던 것은 아니었다.
전사 및 실종자 7명에 21명의 용사들이 부상당하였을 정도로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는데 이러한 규모를 분석하면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모든 참전국들 중 총 인구 대비 참전 병력 비율 및 전사상자 비율이 1위를 하였을 만큼 대한민국에게 최선의 도움을 우리에게 주었던 국가다.

 

룩셈부르크와 그 국민들께 감사를 전한다(유럽연합군의 일원인 현재 룩셈부르크군의 멋진 모습)

 

룩셈부르크는 냉전이 끝난 현재 안보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서유럽에 있으면서도 2개 대대 900명의 상비군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다.
유럽 주요국가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워낙 나라가 작아 의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룩셈부르크는 한국전 당시 이처럼 귀한 피를 받쳐가며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룩셈부르크와 그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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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특공대의 잊혀진 비사 (秘史)
 
 

온산이 울긋불긋 불타오르는 늦가을은 산행을 즐기는데 대단히 좋은 계절입니다.  일주일에 산을 한번 정도 가는 인구가 천만 명을 넘었다는 최근의 통계처럼 등산은 온 국민의 스포츠이자 오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즐기면서 산을 올라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전쟁 중 목숨을 걸고 산에 올라가는 것은 고난의 행로와 다름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입니다.
 

               이 화려한 가을이 완전히 지나기 전에 산에 한번 다녀오는 것은 어떨지요 ?
 

전쟁의 승패에 있어 병참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한국전쟁 또한 군수지원의 중요성이 입증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중공이나 소련과 국경을 맞이하고 있는 북한에 비해서 해상을 통한 군수물자를 보급 받아야 하였던 우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병참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UN군이 제해권을 확보한 덕분에 안전하게 해상 보급이 이루어 질수 있었고 이것은 고난의 시기에 대한민국을 지탱하여 주었던 힘이기도 하였습니다.
 

                       화물을 열심히 하역하는 한국전 당시 인천항의 모습입니다.
                        UN 군의 해상보급은 자유를 수호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한반도는 산악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이라 최전선의 군수지원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사통팔달의 도로가 많이 개통되어 평시의 군수지원 환경은 많이 좋아 졌다고 합니다만 동부전선의 산악지역은 아직까지도 폭설이라도 한번 내리면 병참선이 차단 될 정도의 악조건입니다.

 
                    한국전은 초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산악전으로 일관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도 그러한데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전 당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특히 1951년 말부터 휴전까지 진행된 참호전은 대부분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고지에 주둔한 제 부대에 대한 병참지원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산악전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인 부대의 병참지원 모습입니다
.
 

그래서 UN군은 보급품을 운반하는데 일반 노무자들을 활용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민간에게 아웃소싱을 한 것이었는데 전쟁 발발 직후부터 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소위 보국대를 비롯하여 유엔군 참전 이후 만들어진 민간 운반단 ( CTC - Civilian Transport Corps ), 한국근무단 ( 일명 노무단 ), 부두하역단 등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 활동을 하였습니다.

 
                  포탄 같은 중량물도 이 분들의 보급 수송에 절대 의존하였습니다.
 

그중 최전선의 산악 고지전을 치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속칭 지게부대라고 불린 노무대가 있었습니다.  이 노무대는 전쟁 동안 산세가 험한 지역에 위치한 부대에게 포탄, 식량 등의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운반하여 주었는데 대부분이 당장의 호구지책이 어려웠던 월남해 내려 온 청장년들이나 피난민들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집으로 충당되기도 하였습니다.
 

                    대오를 갖추어 정렬한 지원단 (上) 과 화물 적재 후의 모습
 

전쟁 당시 노무자들의 규모는 육군 사단에 편성되어 전투근무지원을 직접 수행한 노무단원 9만여 명을 포함하여 약 30여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산되며 공식 기록에 의하면 전쟁 시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당한 노무자들의 규모가 전사 2,064명, 실종 2,448명, 부상 4,282명 등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많은 수의 노무자들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되고 있습니다.
 

                              미군들은 이 분들을  A특공대라고 불렀습니다.
 

노무자들의 지원 수단은 주로 지게였는데 그 모습이 알파벳 A와 흡사하다고 하여 통상 근무단을 ' A Frame Army ' 즉, 지게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 James Van Fleet 1892~1992 ) 장군은 회고록에서 "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다. " 고 이들의 노고를 극찬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는 조국을 수호하는 원동력 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처럼 A 특공대는 戰史의 전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군의 승리를 위하여 묵묵히 맞은바 임무를 다한 최고의 정예 부대였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힘써 주신 A 특공대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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