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23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끝 ]
  2. 2009.11.16 제1차 세계대전의 이상한 승리 (2)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끝 ]

 
피눈물은 씨앗이 되어
 
 
1978년 4월 7일, 신문 1면 톱으로 한국이 전차 개발에 성공하였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다. 하지만 사실 정확한 표현으로는 기존에 국군이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던 구형 M-48 전차를 M-48A3K와 105 mm 주포를 가진 M-48A5K로 성능개조를 하여 전력화하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이 맞다. 특히 M-48A5K는 당시 미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M-60과 맞먹는 성능을 보유하여 국군의 기갑전력을 급속히 향상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M-48 전차 개조공장을 방문한 故 박정희 전대통령
 

이처럼 변신과정을 거친 M-48 전차는 현재도 국군 기갑전력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런 개조 생산은 한국형 전차의 개발에 중요한 경험으로 축적되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 때문인지 미국이 여러 이유를 들어 M-60 전차의 한국 판매를 거부하자 독자적인 전차개발에 뛰어 들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판매거부 조치는 국산전차 개발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한 형국이 되었다.
 

                     강력하게 개조된 M-48A5K 전차는 상당수가 현재도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1970년대 말 한국은 M-1 전차를 개발한 미국 크라이슬러 디펜스社의 도움을 받아 한국 지형에 맞는 전차의 개발에 나섰다. 이러한 장기간의 노력의 결과 시험 물량 출고와 테스트 후 1987년 9월, 드디어 국민들 앞에 그 자랑스러운 최초의 한국형 국산전차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바로 K-1 전차였다.

 

                                                  최초의 국산전차인 K-1
 

이후 계속 된 양산으로 약 1,000여대의 K-1전차가 국군에 성공적으로 제작되어 공급되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함께 개발에 성공한 국산 K-200 보병수송장갑차가 함께 제식화 됨으로써 1990년대 초부터 국군은 창군이래 계속된 대북 기갑전력의 열세를 질적으로 일거에 만회하고 세계최강의 기갑세력 중 하나로 우뚝 서게 되었다.


                                         공지합동 훈련에 참가중인 기계화보병부대
 

하지만 국군 기갑부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K-1 전차를 개량한 120mm주포를 가진 K-1A1 전차를 개발하여 배치하였으며, 거기에다가 K-2 차세대전차와 K-21 보병전투장갑차를 개발하여 현재 대규모로 도입하기 전 단계이다. 비록 양산 직전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어 생산 및 도입이 늦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처럼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배치가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신한다.

 

                                         보다 강력하게 업그레이드 된 K-1A1 전차
 

이러한 전력 확충을 발판으로 현재 국군은 맹호부대를 필두로 결전, 불무리, 필승, 화랑부대가 기계화사단으로 개편 되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으며, 오뚜기부대가 기계화사단으로 개편 진행 중에 있다. 그외 별도로 수개의 기갑여단이 공격의 첨병으로 그 임무를 다하고 있으며 거기에 더해 각 보병사단마다 전차부대나 장갑차부대를 운용 할 정도로 고도로 기계화된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도하 시범을 보이는 신형 K-21 전투장갑차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군 기갑부대의 시작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고 기갑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조차 낯간지러울 정도로 미약한 전력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선배들은 이러한 미약한 전력을 원망하였지만 절대 탓하지 않고 용감히 전선으로 뛰어들어 전력 이상의 전과를 거두었다. 오늘날 우리의 기갑전력은 국방백서에 나타난 것처럼 2,300여대의 전차 2,400여대의 장갑차 그리고 1,000 여문 이상의 자주포로 이루어진 막강 전력이다.


                                                 차세대 전차인 K-2


하지만 기갑연대에서 시작된 전력이 어느 날 갑자기 뻥튀기처럼 갑자기 늘어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기갑이라 부르기 민망하였던 미미한 전력으로 시작되었던 국군의 기갑부대가 오늘날 이렇게 막강한 전력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창군 초기와 전쟁 당시의 피눈물을 머금고 조국을 수호하고자 하였던 선구자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이런 된장!  우리 이긴 것 맞아?
 
 
 
지난 11월 11일은 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지 91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와 관련한 작은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낯설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지옥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격투기 선수인 추성훈과 최홍만이 경기를 벌였습니다. 추성훈이 경기개시와 더불어 최홍만을 흠씬 두들겨 팹니다. 최홍만이 종종 반격을 하였지만 라운드가 계속 될수록 추성훈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되었고 결국 최홍만은 너무 맞아서 두 눈이 부어서 감길 정도로 수세에 몰렸습니다.

 
         실컷 몰리다가 회심의 반격을 하려는데 상대가 기권하여 버리면 조금 황당하겠죠?
 

그런데 최홍만을 때리다 때리다 추성훈이 지쳐버리고, 이틈을 노려 뚝심의 최홍만이 반격을 하려는데 갑자기 추성훈이 타월을 던지고 기권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최홍만은 기권승을 거두는 것이지만,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추성훈을 제대로 때려 보지도 못하였으니 얼마나 약이 오를까요? 차라리 패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런 경우라면 승리를 얻은 것이 실감도 나지 않고 그리 기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전사를 살펴보면 이런 황당한 승리를 거둔(?)전쟁이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대전쟁(Great War)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그러합니다. 세계대전으로 호칭될 만큼 서류상으로는 여러 나라가 참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독일과 러시아의 동부전선과 독일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싸웠던 서부전선의 전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제1차 대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서부전선
 

그런데 이 전쟁의 패자(敗子)가 다 아시다시피 독일입니다. 외부와 고립된 상태로 장기간의 총력전을 펼친 결과, 독일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자 결국 항복하였지만, 사실 단지 물적, 인적 손실의 관점에서 볼 때 바다 건너와서 싸운 영국과 뒤 늦게 참전한 미국을 제외하고는 독일의 손실은 제1주적이었던 프랑스나 러시아 보다 적었습니다.

 
            독일도 많은 희생을 겪었지만 오히려 승자인 프랑스의 피해가 더 컸습니다.
                                   (베르덩전투의 독일군 집단묘지 )
 

오히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에 의거 휴전한 동부전선은 제정러시아의 많은 영토를 전리품으로 얻은 독일이 승자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부전선으로만 축소한다면 프랑스와 벨기에영토에서 대부분의 전쟁행위가 벌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99% 이상의 물적, 인적 피해가 프랑스와 벨기에 영토에서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서부전선에서 지옥이 재현된 곳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영토였습니다.
                                        (서부전선 주요 전투지역도)
 

연합군이 쏘았던, 독일군이 응사했던 간에 상관없이 포탄들은 프랑스나 벨기에 땅에서 폭발하였고 이 때문에 이들 국가의 영토의 물질적 피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이른바 현실에 등장한 지옥으로 표현되는 마른, 이프르, 솜므, 베르덩 전투 등의 일련의 대회전으로 인하여 서부전선은 말 그대로 No Man's Land가 되었던 것 입니다.

 
                   항공촬영한 전선의 피탄공 인데 마치 스펀지 같은 모습입니다.
                               과연 저곳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원래 사이도 나빴고 감정도 좋지 않은 사이였지만, 전쟁 내내 이처럼 무서운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종전 후,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데 기를 쓰고 앞장섰던 것은 한편으로 충분히 이해할만한 합니다. 문서상으로는 항복을 받았지만 독일영토에 제대로 총알 한발 날려보지 못하고 전쟁을 끝내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요?

 
            승자가 얻은 것은 황당한 폐허뿐이었는데 이런 것을 승리라 할 수 있는지요?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 독일이 항복을 하고 두 손을 들었을 때, 물론 지긋지긋한 전쟁이 드디어 끝나서 좋기는 하였겠지만 막상 독일을 제대로 때려보지도 못하고 막아내기만 급급하였던 프랑스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된장, 아니 케챱! 우리 이긴 것 맞아?"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