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국방'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10.08.30 최강 독일에 맞선, 위대한 폴란드 기병대여! (3)
  2. 2010.08.27 지상의 왕자 -'전차'의 성장통에 관하여.
  3. 2010.08.27 UFG연습 기간, 별들을 만나다!
  4. 2010.08.24 제2차대전과 제트기 개발 경쟁!
  5. 2010.08.23 [3회] 특수부대의 임무 (1) : '타격작전' 이란?
  6. 2010.08.23 해군 항공대여, 적 잠수함을 섬멸하라!
  7. 2010.08.16 잠수함 잡는 '대잠초계기'
  8. 2010.08.05 목함지뢰? 지뢰를 피하는 방법! (1)
  9. 2010.08.04 <납량특집> '대한민국 특수부대', 커밍 순(Coming Soon)!
  10. 2010.08.03 교훈을 얻고 대비를 하라
  11. 2010.08.03 "北어뢰 '1번'글씨, 매직이 아닙니다."
  12. 2010.07.30 '불굴의 의지' 훈련에 참여한 함재기들
  13. 2010.07.29 행복전도사 曰, "양형위원회 없으면, 법원 아니잖아요?" (1)
  14. 2010.07.27 '한미 연합훈련'의 수퍼캐리어(초대형 항공모함) 이야기
  15. 2010.07.26 '한미 외교/국방장관', 2+2회담 전에.
  16. 2010.07.23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 '트윗벙개'의 추억.. (2)
  17. 2010.07.22 태평양을 왕복하는 6.25당시 총기들
  18. 2010.07.20 '전시작전통제'의 전제조건, 전시지원(WHNS)
  19. 2010.07.20 대림 미술관(6.25 특별사진전), 함께 가시죠!
  20. 2010.07.16 '천안함'으로, 국방부와 '시민사회단체'가 만났습니다. (2)
  21. 2010.07.15 6.25 상황 재현, 잠시 짚고 넘어가도 될까요??
  22. 2010.07.14 최고의 무기 AK-47소총, "그러는 거 아냐." (3)
  23. 2010.07.13 '국방정보화와 아키텍쳐', 나아갈 길은?
  24. 2010.07.12 해외파병 성공의 요건, '무사귀환'을 바라며.
  25. 2010.07.09 1950년 6월, 공군의 극적 분투
  26. 2010.07.08 제4회 국방부 '웰컴투 건강골' 행사..라고요?
  27. 2010.07.07 천안함 외교 -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
  28. 2010.07.06 "강하고 효율적인 군으로 육성" - 신임 합참의장 취임
  29. 2010.07.05 6.25전쟁 당시, 해군의 용전분투 (2)
  30. 2010.07.05 '한-미 동맹', 전작권 전환시기를 보완하였습니다.




                   과연 그들은 바보들이었나?

 
 
일본이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켰을 때를 제2차 대전 개시일로 보자는 일부의 의견도 있지만, 역사교과서나 백과사전 같은 많은 공인된 자료에는 독일이 폴란드를 기습 침공한 1939년 9월 1일을 제2차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 아마도 당시까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서구를 위주로 역사를 기록하다가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독일군

 
따라서 제2차 대전과 관련한 대부분의 서적들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전쟁사를 기술한다.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는 불과 한 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것은 독일의 급속한 팽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승자인 독일군의 전과는 상세히 설명하는 반면 순식간 몰락한 폴란드군에 대해서는 무능함을 묘사한 내용이 많다.
 

                     많은 자료가 폴란드군의 무능함을 묘사하고 있다 (포로가 된 폴란드군)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내용이다.
 
독일 대 폴란드 전쟁에서 가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월등히 우수한 독일 기갑부대와 맞서 싸우는 폴란드 기병대의 모습은 전쟁 장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 폴 콜리어 외, 「제2차세계대전」, 2008 )
 
SF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면 또 모를까, 전쟁이 장난도 아니고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전차의 위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 기마병들은 승리를 다짐하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있다. 보나마나 지는 전쟁인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 리젠, 「CEO의 원가 자르기 비법」, 2007 )
 

                              폴란드 기병대는 바보 같은 돌격의 대명사로 회자되었다
 

제2차 대전사를 읽다보면 이처럼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기갑부대를 향하여 창을 꼬나 잡고 돌격하였다가 전멸한 이야기가 자주 인용된다. 이때 군사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다라고 ...'
 
그런데 그것만이 진실일까? 과연 그들은 창으로 전차의 장갑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단순, 무식하게 전차를 향하여 돌격하였을까? 폴란드인들은 후진국이라서 전차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까?
 

                      과연 그들은 창으로 전차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바보들이었을까?
 

영광의 16세기 폴란드를 이끌었던 주역으로, 이른바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로 알려진 기병부대는 폴란드에서 최고의 정예부대로 자랑스럽게 생각되고 있으며 현재도 의전용 기병대를 운용하고 있을 정도다.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폴란드의 기병대는 비록 시대에 뒤쳐졌지만 엄연한 전투병과였다. 따라서 전사를 보면 기병대가 개전 첫날부터 독일군과 격전을 벌인 사실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기병대에 대한 폴란드의 자부심은 크다 (최근 폴란드 기병대의 모습)
 

그러한 전투 중에서 위에 언급하였듯이 오해를 불러왔던 것은 9월 19일 볼카 베그로바(Wolka Weglowa)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제9 마로폴스키(Malopolski) 기병연대가 독일 기갑부대와 격전을 벌여 순식간 100여명이 전사하는 커다란 패배를 당하였는데, 마침 이를 목도한 이탈리아 기자가 '바보 같은 폴란드 기병들의 돌격' 이라고 기사를 작성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이후 왜곡정도가 더욱 증폭되었다. 그런데 본질은 결코 그것이 아니었다.
 

                                   전선으로 달려가는 폴란드 기병대의 역동적인 모습

 
우선 독일에 비해 열세여서 그렇지 당시에 폴란드도 엄연히 기갑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실 독일의 전차부대가 폴란드를 앞선 것은 재군비를 선언한 이후부터이므로 불과 3~4년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폴란드군들이 전차를 창으로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바보들이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아는 폴란드 기병대는 왜 무모하게 기갑부대를 향해 돌격하였을까?
 

                 폴란드군도 전차를 보유하고 있어 결코 생소하지 않았다 (폴란드 제10기갑여단)
 

당시 폴란드 기병대는 함락 위기에 빠진 수도 바르샤바를 방어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는데 우연하게도 대규모의 독일 전차부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진지를 구축하여 방어선을 설정하고 말고 할 수도 없을 만큼 허허벌판에서 순식간 독일군 전차들에게 포위당한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항복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망설임 없이 돌격을 선택하였다. 전차를 향해 돌격하는 행위는 정녕 무모하였지만 굴종보다 영예로운 군인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라 침략자에 굴복하지 않았던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멍청한 바보들이 아닌 당시의 상황에서 가장 군인답게 취할 수 있던 행동을 망설이지 않고 실시한 영웅들이었다. 전쟁터에서 폴란드 기병대와 마주한 독일군들은 그들에 대해 경외감을 가질 정도였는데, 9월 1일 폴란드 기병대와 격돌하여 승리를 이끈 독일의 명장 구데리안(Heinz Guderian)은 전쟁이후 저술한 저서에서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신념에 대해 찬사를 남겼을 정도였다.
 

                       만일 누가 우리 선배들의 육탄공격을 우화한다면 과연 어떠하겠는가?
                                           (춘천전투 당시 육탄전 재현행사)
 

이처럼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단지 쓰여진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만일 6.25전쟁 당시에 침략자를 막으려 육탄으로 전차에 돌격하였던 우리선배들을 제3자가 무모한 바보들이라 우화시키고 그것을 남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우리가 왜곡된 정보만으로 남을 잘못 평가 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러면 남들도 우리를 왜곡하여 우습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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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전차를 만든다는 것이
 
 

전차(Tank)를 전쟁에 데뷔시킨 것은 영국이었고 이를 효과적인 전쟁도구로 승화시킨 것은 독일이었다. 하지만 제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최강의 기갑전력을 보유한 나라는 소련-러시아라 할 수 있다. 특히 냉전 시기에 소련이 보유하였던 기갑전력은 양과 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냉전 당시 서유럽을 위협한 소련의 기갑부대

 
특히 1950년대 제1세대 전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T-54T-55는 무려 15만 여대 이상이 소련 및 동맹국들에서 생산되어 서방을 위협하는 지상군 전력의 중핵을 담당하였다. 우리에게 너무 큰 아픔을 주었지만 전차 개발사에서 최고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T-34의 뒤를 이어 T-54, T-55가 대성공을 거두자 이에 자신감을 얻은 소련은 계속하여 기갑전력의 우위를 확보할 제2세대 전차의 개발에 나섰다.

 
                             명품이었으나 우리에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안겨준 T-34
 

이때 개발한 전차가 우랄설계국의 주도로 T-55를 개량한 T-62다. 동시대에 서방의 주력이었던 M-60, 레오파트, 치프텐, AMX-30등과 충분히 맞설 수 있을 만큼 대구경 115mm 활강포를 채택한 T-62는 1978년까지 소련 및 동맹국에서 2만5천대 이상 생산되어 동구권의 주력전차로 자리매김하였다. 현재 북한의 주력전차로 알려진 천마호나 폭풍호도 T-62의 파생형이다.

 
                                           소련 제2세대 전차의 효시인 T-62

 
그런데 유독 기갑전력에 욕심이 많은 소련은 T-62가 막 일선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할 시점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전차를 이미 구상하고 있었다. 키로프설계국의 주도로 Object 430로 명명된 전차개발안은 한마디로 기존의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선 115mm 활강포(이후 125mm로 대체)를 채택하여 화력을 대폭 증강시킨 것 가지고도 모자라 일발필살의 9M112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하여 공격력을 극대화하려 하였다.

 
                                                 Object 430 개발시안
 

거기에다가 기존 전차에서 흔히 사용하는 주조장갑이 아닌 세라믹을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복합장갑을 도입하여 방어력도 크게 강화시키려 하였으며, 파워가 향상 된 차세대엔진과 자동장전장치 등을 도입하여 기동력과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한마디로 기존의 상식 틀을 깨는 당대 최고의 전차 개발을 목표로 하였는데, 소련은 이것을 T-64로 명명하였다.

 
                                    T-64는 소련의 야심이 담겨있는 차세대 전차였다
 

그런데 당대의 기술력을 너무 앞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오히려 T-64의 개발을 더디게 만들었다. 더불어 야심만만하게 먼저 데뷔시킨 T-62가 예상과 달리 중동전에서 서방측 전차에 비해 열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급해진 소련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T-64의 개발과는 별도로 T-62를 우선 개량하는 프로젝트를 시급히 진행하기로 하였다.

 
                           T-64의 개발이 난항을 겪자 T-62를 개량한 T-72가 탄생하였다
 

우랄설계국
은 T-55에서 T-62로 이어진 신뢰성 높았던 플랫폼을 최대한 이용하여 새로운 전차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던 T-64와 전반적인 성능은 비슷하지만 개발 및 제작이 훨씬 유리한 전차를 개발해 내는데 성공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제2세대 동구권 전차의 대명사가 되는 T-72다. 이후 무려 2만대 이상이 생산 된 T-72는 소련 및 동맹국에 공급되었고 우크라이나에서 현재도 생산중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T-72는 동구권의 주력전차로 급속히 자리 잡았다

 
절치부심하던 키로프설계국이 T-64를 간신히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소련군에만 3,600여대가 배치되는 것으로 생산이 종결되었다. 비록 동맹국에게 공여를 거부하고 소련만이 보유한 최신예 전차였지만 사실 대타로 나선 T-72가 먼저 소련의 주력전차로 자리매김하게 되자 T-64가 대량배치 되기에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T-64는 계륵과 같은 신세로 전락하나 후계자인 T-80의 탄생을 가져왔다
 

참고로 T-72는 이후 한 번 더 변신을 하여 T-90으로 발전하였고 야심만만한 출발과 달리 소련의 주력 전차로 등극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았던 T-64는 개량이 되어 현재 러시아 최강의 전차로 평가받는 T-80으로 발전하였다. T-80이 T-64의 경우와 다른 점이라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 수출되어 각국의 주력 전차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K-2 흑표가 최근 밝혀진 난관을 극복하고 최고의 전차가 되기를 기원한다.

 
30여년을 매달리다가 개발포기를 선언한 인도의 ARJUN전차도 그렇지만 T-64는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소련(러시아)조차도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전차를 만드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알려준 예라 할 수 있다. 많은 기대 속에 개발을 완료하였지만 본격 제식화를 앞두고 동력계통의 일부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는 K-2 흑표의 최근 소식은 어쩌면 한 번 정도 겪어야 할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만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K-2가 진정한 지상의 왕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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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국방부는, 8월 16일~19일 총4일간의 UFG연습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별'들을 만나뵈었지요.  올 한해 다사다난하였던 국방부... 특별히 '별'님들을 만나뵙고 싶었던걸까요?

바로, 국방부장관 주관으로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를 개최하였다는 이야기.
 



국방부는 1989년부터 매년, 국내 거주 예비역 장성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초청행사를 진행하여 왔는데요,

이 자리는 예비역 장성분들을 초청하여 그분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국방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분들을 국방정책에 대한 후원자로 모시고자하는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초청행사 시작전, 간단한 티타임을 갖고 담소를 나누시는 '별'들~



                                                      방명록을 작성하시고-

                                               국방에 소중한 제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별'님들은 행사장(국방부 대강당)으로 입장하시지요.

                                               정책설명회 전, '별'들의 환담

금번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는, '제1부'로 1) 장관 인사말씀 및 주요인사 소개 2) 북한의 군사동향 및 군사대비태세 보고 3) 천안함 피격사건 조사결과 보고 4) 국방정책현안 보고 5) 질의/응답 으로 구성하였으며, 오찬 후 '제2부'로는 안보현장 견학(문서고, 전쟁기념관, 천안함 현장 중 택1)으로 구성하였답니다.


UFG연습 기간이라 민방위복을 착용한 국방장관의 '별'들께 대한 인사말씀으로 정책설명회는 시작되었고요.

특별히 금번 예비역장성 초청 행사를 UFG연습 기간 중에 실시하게 된 것은, 특별히 예비역 장성분들과 안보현안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국방부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정책현안 설명 전, 중요한 것들을 말씀드렸지요.
바로, 오찬 후 안보현장 견학 이동경로입니다- 






한가지 알려드린다면,..
예비역 장성분들중 많은 분들께서, 평소 자발적으로 국방부 정책고객으로 등록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국방부가 정책고객서비스 메일을 통해 전해드리는 각종 국방정책들에 대해 고견을 보내주시는데요, 이처럼 전역 후 현재까지 꾸준히~ 우리 국방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과 성원들을 보내주고 계시답니다.

물론, 일반 국민들께서도 국방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국방부가 금번 특별히 예비역 장성분들을 초청한 이유는... 그분들은 평생을 국방부 및 군과 동고동락하신 만큼 국방정책과 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는 국방정책에 대한 예비역 장성분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하고「선진 강군」의 토대를 놓으신 군 원로들의 헌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뜻깊은 자리였답니다. ^^
국방부를 찾아 주신 '별'님들!  그 사랑 변치마소~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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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는 것이

 
 
음모론이나 무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정도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만들었던 비밀무기에 관한 이야기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V-1, V-2, Me-262처럼 실제로 전선에 등장하여 연합군을 경악시킨 놀라운 무기도 있었지만, 단지 구상단계로 끝나고 이후 흥밋거리로 전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V-2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나치의 비밀병기다.


 
오래전 인터넷 검색 도중 아래 그림을 보고 깜작 놀랐던 적이 있었다. ( 현재는 폐쇄된 폴란드사이트로 후속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가정으로만 끝날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림은 독일의 유명한 항공기 제조사인 포케울프(Focke Wulf)가 제2차 대전 말에 콘셉을 잡은 차세대 전투기인 Ta-183의 예상도인데, 설명이 너무 자세히 되어있었다.

 
                                       상상력을 유발시킨 문제의 Ta-183 그림
 

설명에 따른다면 전쟁 당시에 포케울프의 제작소나 연구소 같은 관련 시설이 東프로이센(East Prussia-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와 폴란드 동북부 일대)에 있었던 듯하다. 사실 습작에 불과한 단순 개념도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독일은 최초로 제트기를 만들고 제트전투기도 처음 데뷔시킨 나라인데다 Ta-183의 디자인도 극히 평범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제2차대전 당시 포케울프사의 명성을 드높인 프로펠러 전투기 Fw-190
 

그림을 보고 놀랐던 이유는 사실 다른데 있었다. 포케울프 제작진이 제2차 대전 후 스웨덴으로 가서 제트기 제작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 동서진영을 대표하여 제트전투기로 명성을 드높인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F-86과 MiG-15는 제2차 대전 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과 소련에서 옮겨간 독일 기술진들이 직간접적으로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거의 동시에 등장한 이 두 전투기의 외형이 놀랄만큼 비슷하다.

 
                        MiG-15(전)와 F-86이 비슷한 모습을 가지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대에 중립국 스웨덴이 최신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J-29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미국과 소련 외에 처음으로 제식화에 성공한 후퇴익 제트전투기이었다. 제트기 (그것도 후퇴익)의 개발은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동안 별다른 기술적 기반이 없다고 평가되던 스웨덴이 J-29를 만들어낸 데에는 패전국 독일 기술진의 참여가 있었을 것이라 심증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밀 기계공업의 강국인 스웨덴의 자체 기술력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웨덴의 SAAB J-29 Tunnan

 
특히 포케울프가 구상하던 여러 제트전투기 모델 중 Super TL과 스웨덴의 J-29는 이름만 바꿔 달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너무 닮았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나치 비밀병기 콘셉을 보면 UFO타입의 나치 비밀병기처럼 당대 기술로 불가능한 것들이 많지만 Super TL은 실현 가능성이 컸던 모델이어서 전후 독일 기술진의 J-29 제작 참여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포케울프가 구상하고 있던 Super TL

 
포케울프의 관련 시설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東프로이센은 소련군에게 제일 먼저 점령된 독일영토였다. 당시 거기에 살던 400여만의 독일인들은 보복을 피해 피난을 하였는데, 제트기 엔지니어들이 발트해 건너에 있던 중립국 스웨덴으로 도피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사실 이 정도 고급인력이 굴러 들어온다면 마다할 나라는 없다. 그들이 스웨덴에 정착하여 제트기 전투기 개발에 착수하지 않았을까?
 

                             오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작된 스웨덴의 최신 전투기 그리펜
 

그렇다면 오늘날 최신예 전투기인 그리펜(Grippen)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스웨덴의 전투기 제작기술은 독일의 기술진이 뿌린 씨앗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장의 개념도에 쓰여 있는 내용과 J-29를 연관지어 이처럼 여러가지 가능성이 생각나게 만들 만큼 고성능 제트기를 자력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것은 현재도 그렇다.

 
                                                공군의 고등훈련기 T-50
 

사실 우리가 T-50 Golden Eagle 같은 고성능 제트기를 직접 만들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앞에서 추론한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외부의 자발적 도움 가능성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제트기 제작에 관한 노하우 습득에 있어서 거의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였다.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이뤄낸 쾌거여서 더욱 자랑스럽고 그 성과가 소중하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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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적군의 중요시설을 향해서

소수의 군인들이 특공작전을 펼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

‘나바론의 요새’입니다.




영국군 2천명의 목숨을 노리는 나바론 섬의 거포,

첩첩산중에 독일군이 우글거리는 적진의 한가운데로

포대를 파괴하라고 겨우 6명의 군인들이 보내집니다.

이들이 가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공군으로도 안되고, 해군으로도 안되니

재주 있으면 니들이 해봐라’는 것입니다.

결국 특수부대는 정규부대가 수행하지 못하는 임무의

노련한 해결사들인 거죠.

 
결론적으로 이런 저런 고생 끝에

끝내 거포를 폭파했다는 게 스토리죠.


                      <6인의 특공대랍니다. 자세가 많이 어정쩡한 게 ‘아저씨 배구단’인가요? -_-;; >

 

바로 여기서 볼 수 있는 특수부대의 임무가

‘타격작전’이라는 것입니다.

실로 타격작전은 특수부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임무죠.

   
    타격작전이란 “특수작전부대가 실시하는 단기간 또는 소규모의 공세작전으로 사전에 지정된
 
   목표물(인명, 장비 또는 시설물)을 포획/파괴/회수하는 군사작전“을 말합니다.




                          <아무리 남자끼리 신체접촉이 싫어도 해야죠. 타격작전이잖아요. -_-;;>

 

근데 말이 좋아서 타격작전이지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상당히 위험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머릿수가 심하게 모자라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타격작전은 소수의 특수부대 병력으로 타격합니다.

보통 공격할 때는 수비병력의 3배를 동원하는 것이 정석인데

오히려 적보다 3배 이상 적은 경우가 허다하지요.

 
결국 치고 빠지는 게 관건이 됩니다.

적에게 들키지 않고 은밀히 접근해서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고도 격렬하게 공격한 다음

목표가 달성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빠져나옵니다.


             <굳이 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알고 보면 1초라도 빨리 적에게 한 방을 먹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은밀히 접근하다보니 밤을 선호하고,

침투하는 수단도

고공강하, 헬리콥터, 잠수함 등 다양합니다.

헬기로 날아와도 점잖게 착륙하지 않고

굳이 줄 타고 내려오는 이유도

빠른 시간 내에 갑자기 목표물에 접근하려는 이유에서 랍니다.

 
공격도 남다릅니다.

불과 몇 분 내에 수백발의 탄환을 쏟아 붓고

폭약을 장착하여 목표물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 명사수들의 화력이 모이면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닙니다. 벌집일 뿐이죠. ^^ >

 

이게 체력만 좋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짧은 시간 내에 어떤 시설물을 파괴하려면

속속들이 그 내부를 알아야 합니다.

 
목표까지 정확히 몇 발자국인지

초병의 동선이 어디에서 어디인지

팀원이 피격됐을 때 어떻게 임무를 재분배할지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놓고

반복적인 사전연습을 통해서

머리 속에 그리고 근육 하나하나에 각인시킵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저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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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끝]



 
 

                           좀 더 확충되기를 바라는 부분

 

오늘날은 탐지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물 밖으로 떠오른 잠수함뿐만 아니라 물속에 숨어있는 잠수함까지도 하늘에서 탐지 할 수 있을 만큼 항공기를 이용한 대잠초계 활동 영역이 더욱 넓혀졌다. 특히, 고정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대잠헬기의 등장은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보통 크기의 수상전투함들도 하늘을 통한 대잠 초계활동을 가능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초기의 수상발진형 대잠초계기 Martin Flying Boat

 

더불어 대잠미사일이나 공중투하어뢰 같은 정확한 대잠 타격능력의 발달은 은밀히 숨어있는 잠수함이라도 하늘로부터의 공중초계에 포착된다면 곧바로 침몰로 연결 될 수 있을 만큼, 잠수함에게 대잠초계기는 더욱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였다. 더구나 잠항 중에 있는 잠수함이 하늘에 떠 있는 대잠초계기의 존재를 즉시 알아내기가 어려워, 수면 위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수상함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해상초계 단일 목적으로 최초로 개발 된 P2V Neptune


잠수함도 수시로 부상하여 몸을 노출 시킬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재래식 잠수함의 한계를 극복한 핵추진이나 AIP같은 여러 가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보다 은밀히 작전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항공초계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임무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 우리 군도 운용중인 P-3 Orion

 
결국 처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시일이 지났지만 쫓는 대잠기와 쫓기는 잠수함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 중에는 아직까지도 물속의 잠수함이 하늘에 떠있는 항공기를 공격할만한 마땅한 공격체계가 부족한 점도 있다.  물론 잠대공 요격 미상일이 연구 단계에 있어 가까운 시일 내 실용화도 예상되지만,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쫓고 숨어 다니는 일방적인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도 사용하였던 2세대급 항모 탑재 초계기인 S-2 Tracker
                                         ('전쟁기념관'에 가시면 볼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북한 잠수함세력의 위협에 대처하여야 하며, 또한 주변국 잠수함들의 천연이동로라고 불리는 동해를 비롯한 인근 해역의 초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해군의 대잠초계 능력을 좀 더 증대 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천안함사태에서 보듯이 서해 또한 결코 잠수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 퇴역한 항모 탑재형 초계기인 S-3 Viking

 
현재 영해를 초계하기 위해 우리 해군은 OO기의 함정탑재용 링스(Lynx)대잠헬기와 OO기의 P-3C 대잠초계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종들은 현재 여러 나라의 주력 대잠 초계기로 널리 사용될 만큼 훌륭한 성능을 자랑하는 좋은 기종이다. 특히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최근에 제식화한 P-3CK는 부족하였던 대잠 초계능력을 대폭 증가시켜주었다.
 

                               최근 도입되어 국군의 대잠 초계 능력을 확장시킨 P-3CK


 
이러한 체계적인 장비의 도입과 운용으로 우리 군의 해상초계 능력은 꾸준히 증가되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주변 해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선인 인근 주변 수역까지 24시간 쉬지 않고 완벽하게 감시하는데 충분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해군 항공대의 전력 확충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미국 항공모함을 방문한 한국 해군의 링스헬기

 
우리 해군은 삼면이 바다인 영해를 방어하는 것은 물론 청해부대처럼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원양에서도 작전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임무를 담당할 수 있는 해군 항공대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대잠초계를 비롯한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 해군의 발전과 노력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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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2]


                              초기의 모습

 
대잠초계기는 그 특성상 장시간 하늘에 체공하여야 하지만 기동이 날렵하거나 속도가 빠를 필요까지는 없다. 때문에 플랫폼이 되는 비행기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굳이 기체가 고성능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대잠작전 및 해상초계에 필요한 각종 센서(Sensor)류가 워낙 고가의 장비다 보니 이러한 장비들이 탑재된 대잠초계기 한 기의 가격은 보통 고성능 전투기의 그것을 능가하고는 한다.


            오늘날 대잠초계기는 육상발진형, 항모탑재형, 헬기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초계 임무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각종 센서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전략물자인데, 수요처도 한정되어 있고 제작에도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어 이를 생산하는 나라도 얼마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였던 나라들이 자신들의 해상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서 장기간의 노력과 개발로 이루어진 성과물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은 미국과 영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계기는 플랫폼 자체가 고성능은 아니지만 센서류가 고가인 무기체계다

 
잠수함의 무서움이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앞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보트의 신화가 처음 등장한 제1차 대전부터인데, 당시에는 주로 사람의 오감에 의해서 잠수함의 탐지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보편적인 대잠초계 장비로 사용되는 소나(Sonar)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ASDIC 같은 초보적인 초계장비가 개발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기술 여건상 그리 좋은 성능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나의 기술은 어군탐지에도 이용되는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독일의 유보트들이 충전 등을 위하여 수시로 수면 위로 부상하였지만 연합군은 수상함만으로 이들을 발견하기 매우 힘들었다. 이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선(Airship)이 적당한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제1차 대전은 본격적으로 비행기가 실전에 본격 투입된 무기사적으로 혁명적인 시기였지만, 넓은 바다 위에서 잠수함을 탐색하기에는 체공시간이나 비행반경 등을 고려 할 때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다.

 
     제1차 대전은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무기로 활용된 시기였으나 항속거리 등이 짧아
             넓은 지역을 장시간 초계할 플랫폼으로 사용하기는 곤란 하였다

 
그래서 비행선이 적합한 초계도구로 사용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센서에 해당되는 부분은 오로지 비행선에 탑승한 인간의 눈(眼) 밖에는 없었다. 비행선이 비록 장시간 체공은 가능하였지만 속도가 느리고 거대한 동체를 이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해안주변의 연근해에서만 활동이 가능하였고, 당시의 통신기술을 고려할 때 잠수함을 발견하였어도 이를 해군 구축함에 즉시 통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비행선이 최초 초계용 항공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더구나 마땅한 자체 대잠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여 부상한 잠수함을 바로 아래에서 발견 하였다 하더라도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었끼 때문에 비행선은 전술적으로 뛰어난 효과는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잠수함의 출몰을 감시하는 것은 망망대해를 수십 척의 수상함 들이 떼를 지어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하늘에서 해상을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오늘날 고성능 PC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APLLE ][ 를 단순히 성능만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컴퓨터는 반드시 집체만한 대형이고 여러 명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APLLE ][ 와 같은 선구자의 등장 없었다면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를 만든 기술적 발전과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의 열풍도 이미 이를 시대를 앞서보고 사전에 차근차근 준비한 기술적 기반이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비행선에 의한 초계활동은 보잘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오늘날 해상초계기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1차 대전 당시에 인간의 감각에 의지하여 적 잠수함을 발견하는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공중초계 활동을 결코 우습게 볼 수는 없다.  ( 사실 '견시'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초계수단이다 ) 그러한 하나하나의 시도와 시행착오가 쌓여서 오늘날의 고성능의 대잠초계기가 탄생되고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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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드리지 말고 신고하세요!

 
 
대부분의 무기는 상대를 공격하는데 사용되는데, 특이하게도 지뢰(地雷)는 방어용으로 사용되는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지뢰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나 충격으로 뇌관을 작동시켜 폭발하는 원리로 작동하므로 주로 상대의 공격이 예상되는 통로지역에 대설하여 놓습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편인데 화약을 이용한 현대적 의미의 지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탄생하였습니다.
 

                                          여러 종류의 지뢰들
      (좌에서 시계방향으로 M-15 대전차지뢰, M-14 대인지뢰, KM-14 대인지뢰)

 
지뢰는 상대방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땅에 파묻힌 채로 살포되므로 상당히 발견하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지뢰가 폭발하여 피해를 입게 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고 지뢰의 매설이 예상되는 지형을 통과하여 공격할 때는 공병대등이 먼저 탐색하여 공격로를 사전에 개척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지뢰는 비인도적 무기의 대표로 손꼽힙니다.


                          매설된 지뢰는 발견하고 제거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실 모든 무기가 인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지뢰가 비인도적인 무기로 꼽히는 이유는 피해 대상이 무차별적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비록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기지만 적들만 골라 선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뢰를 매설한 측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전진과 후퇴가 반복되어 전선의 등락이 심한 경우에 이런 경향이 많습니다.

 
                                 대전차지뢰에 의해 피폭된 M1A1전차

 
하지만 그보다도 지뢰가 비인도적인 이유는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 발생하는 폭발사고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무기를 사용할 일이 급격히 감소되지만 지뢰는 제거되지 않는 한 계속하여 작동합니다.  더구나 발견하기도 어렵고 제거에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므로 평화가 정착된 이후에도 본의 아니게 폭발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이 경우 피해를 입는 이들의 대부분은 민간인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전방지역에 출몰한 북한의 목함지뢰(木函地雷)가 문제가 되는 부분도 바로 이점입니다.  군의 작전 통제구역뿐만 아니라 여름 휴가철에 민간인의 접근이 가능한 하천 인근에 무차별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북한 측 지뢰가 어떠한 경위에 의해서 흘러 들어왔는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8월 3일까지 총 76발의 목함지뢰가 출몰하였고 그중 하나는 지난 7월 31일 폭발사고를 일으켜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전방지역에서 발견되는 북한 제 목함지뢰

 

현재 발견 된 목함지뢰는 우리 측에서는 생소한 방식인 나무상자 안에 TNT같은 폭발물이 들어있는 형태의 대인 살상용 지뢰입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소련이 주변의 재료를 이용하여 값싸고 신속하게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러시아말로 '고체폭약'이라는 의미의 '뜨로찔'이라고도 부르고 6.25전쟁 당시에도 폭 넓게 사용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목함지뢰 구조도

 
외피가 나무다 보니 쉽게 썩어서 매설 이후 5~7년마다 교체하여야 하지만, 반면 제작이 쉽고 금속탐지를 피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투박한 겉모양과 달리 상당히 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밟는 것처럼 외부의 압력이 있어도 터지고 부비트랩식으로 줄을 건드리거나 뚜껑을 열어도 폭발하는데 안전핀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불과 1kg 정도의 작은 압력에도 터질 수 있어 상당히 위험합니다.


 
                 현재 군은 최선을 다해 지뢰를 수색하고 제거 중에 있습니다
.


 
보도에 따르면 군 당국은 지난달 17~23일 개성지역에 내린 많은 비로 인해 유실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북측에 재발방지를 위한 전화통지문을 발송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유일하게 목함지뢰만 떠내려 온 점을 들어 민간인 피서객을 노린 의도적인 방출가능성도 진지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원인이야 어떠하든 발견된 것만도 70개가 넘을 만큼 다량의 지뢰가 살포되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목함지뢰 발견 시 신고를 부탁하는 안내문

 

현재 군 당국에서는 한강하류와 임진강 등 북한과 연결된 하천 주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이고 이들을 제거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깊숙한 풀밭이나 모래톱, 수면 하에 목함지뢰가 매몰되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따라서 해당 지역에 가게 될 경우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물론이고 만일 발견하였다면 절대로 건드리지 말고 군경에 즉시 신고하여야 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한 철저한 준비는 결코 과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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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특수부대'들이 몰려 옵니다!   여러분의 '열혈국방'으로.
 



                                                             특전사


                                                           동명부대


    금번 '열혈국방'에서는 '열혈님'들을 위해 <납량특집>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 : 

    대한민국 특수부대' 연재를 준비하였습니다.

    육군 특전사, 해군 UDT/ SEAL/ EOD, 해병특수수색대, 공군 CCT/ PJ, 경찰

    특공대, 해양경찰특수기동대, 해외 파병 특수부대 등등등을 만나보십니다.



                                                          경찰특공대
                 
                                              경찰특공대 가상 테러진압 훈련

                        
  
                                      경찰특공대 가상 한강여객선 인명구조 훈련


    
    대한민국 각 특수부대를 '클로즈-업' 합니다.
   
    각 특수부대의 창설, 활동내용, 화기, 기타 장비 등등등...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화~악!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흐믓해져 옵니다. ^^


    본 특집기사 제작에는,  대한민국 각 군, 경찰청, 해양경찰청, 해외 파병부대 등이
   
    협조하여 주셨으며, 작가는 '열혈국방'에서 '글로벌 밀리터리' 코너를 담당하고
   
    조선일보 등에서 밀리터리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계신 '양욱'님 입니다.


    8월 2주부터 연재될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 : 대한민국 특수부대"!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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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훈을 얻고 대비를 하라


 
 
<사례 1> 1935년 10월 30일, 차세대 폭격기로 개발 중인 모델번호 299실험기가 최종평가 시험비행을 벌이던 도중 추락하였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조종사 과실에 의한 사고였습니다.  결과는 참혹하여 조종사를 비롯하여 비행기에 탑승하였던 수많은 관계자들이 모두 숨지는 끔직한 참사가 되었습니다.  비록 299실험기는 여타 경쟁기종에 비해 성능이 앞선다고 사전 평가를 받았음에도 정식 도입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락하여 불타는 299실험기
 

<사례 2>
1943년 2월 18일, XB-29실험기로 명명되어 제작 중이던 차세대 폭격기가 최초 실험비행에 나섰습니다.  군 관계자와 기술자들을 태우고 40여 분 동안 비행했을 때 갑자기 엔진에서 불이 났고 이로 인해 비행기가 공장지대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 및 공장 관계자 등 총 31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XB-29실험기의 본격 제식화는 유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장지대에 추락하여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 XB-29실험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은 무지막지한 전략폭격을 실시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적 후방을 공습하여 상대의 전쟁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어버린 전략폭격은 한마디로 전쟁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꾼 거대한 군사전략이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선에 각기 다른 4발 중(重)폭격기를 투입하였는데 유럽에서는 하늘의 요새(Flying Fortress)라고 불린 B-17이, 태평양에서는 최강요새(Superfortress)로 알려진 B-29가 활약하였습니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폭격기로 명성이 자자한 B-17(좌)와 B-29
 

그런데 B-17은 <사례 1>에서 소개한 모델번호 299실험기가, B-29는 <사례 2>의 XB-29실험기가 바로 원형기입니다.  이처럼 무기 개발사는 물론 전쟁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뛰어난 전략폭격기들이었던 B-17과 B-29의 명성은 엄청난 실수에 의한 실패와 기술부족에 의한 시련을 극복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B-29는 6.25전쟁에서도 맹활약하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져 문제없이 사용되는 것이 가장 좋고 누구나 바랍니다.  하지만 무기 개발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실패와 좌절을 극복한 예를 발견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잡하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무기일수록 이런 실패의 예는 흔하고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문제점까지 고려한다면 처음 무기를 만들었을 때 처음 구상한대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무기를 만들기란 어쩌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포의 비밀무기로 유명한 V-2 로켓도 엄청난 실패를 겪었습니다.
 

따라서 본격 제식화 된 이후에도 사용도중 발견 된 여러 문제점을 지속적인 개량이나 개선을 거쳐 고쳐나가면서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이것은 비단 무기류뿐만 아니라 상업제품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당연시 되는 각종 제품의 리콜제도의 대상에는 베스트셀러로 많이 팔리고 사용되는 제품들도 포함되고는 합니다.

 
                          리콜은 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난 7월 29일 장갑차 도하훈련 도중 침수사고가 발생하여 조종사가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
하였습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한 장갑차는 많은 기대 속에 최근 제식화되어 추후 국군의 주력이 될 K-21장갑차였습니다.  곧바로 사고의 발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가 벌어지겠지만 신형 장비를 가지고 훈련 도중 사고가 발생하였고 더구나 인명 피해까지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 후 인양된 K-21장갑차 (사진-뉴시스)
 
만일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라면 조속히 개선이 이루어져야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술한바와 같이 새로운 무기나 장비가 완벽하게 제작되어 별다른 문제가 없이 완벽하게 작동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하여 다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개선하여야겠습니다.

 
                조속히 원인이 규명 되어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의 실수에 의해 실패한 B-17이나 결함으로 사고를 겪은 B-29도 뼈아픈 실패를 극복하고 마침내 무기사에 길이 남는 성공한 명품무기가 되었듯이 K-21장갑차도 이러한 뼈아픈 사고를 잊지 말고 이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아서 훌륭한 무기로 조속히 자리 잡도록 당국과 제작업체에게 노력을 촉구합니다.  반드시 교훈을 얻어 사고의 재발이 없도록 대비하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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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8월 2일(월) 국방부 브리핑룸에서는,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가 자청한 천안함 공격 北어뢰 '1번글씨' 관련 발표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과 합조단 조사결과에 대한 의문점들 중 "인양된 어뢰 파편 후부에 쓰인 '1번' 이라는 글씨는 폭발시 고열의 화염 속에 타버렸어야 하는데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사항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미 물리학자, 어뢰폭발했다면 1번 글씨 타버려" .."고열에도 견디는 신기한 '1번'글씨" ...  
일부에서는 어뢰의 온도 상승치에 대하여 그럴듯한 과학적 증거로서 '화약의 발열량의 13%/ 어뢰의 열용량 = 섭씨 약 150도'라는 계산식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송태호 교수는  항간의 서투른 계산으로 인한 열손상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에는 20도씨 이상의 온도 상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1번 글씨부분은 0.1도의 온도상승도 없어 절대 열손상을 입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래, 카이스트 교수의 주장이 있습니다. 교수의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 바 있고요. 




송교수는, 보다 전문적인 계산을 수행하여 실제에 가까운 온도상승치를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천안함과 어뢰잔해에 나타난 여러가지 현상은 각각 해당 전문가 그룹에 의하여 보다 고도의 분석이 수행되어야 옿게 알려질 수 있으며, 해당분야 전문지식이 부족한 자들이 섣부른 계산을 근거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사회를 낙후시키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천안함 피격사건과 관련하여 네티즌 여러분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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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굴의 의지'  훈련에 참여한 함재기들
 
 

작전명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로 명명되어 지난 7월 25일에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에는 우리 해군이 보유한 독도함을 비롯한 다양한 각종 함정들과 F-15K를 위시한 공군의 최 신예기들이 참여하여 막강한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 선보인 무기들 중 하이라이트는 미국이 보유한 항공모함 CVN-73 조지 워싱턴호와 현존하는 최강의 전투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신예 전투기 F-22라 할 수 있습니다.


                                    연합훈련 중인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와 한국 해군의 독도함

 
그중 전략 기동장비의 꽃인 항공모함은 훈련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미국만이 운용 중인 슈퍼캐리어(초대형 항공모함)는 다양한 종류의 함재기를 탑재하여 작전을 펼치는데, 항공모함이 우리에게 낯선 장비이다 보니 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함재기도 생소한 편입니다.  물론 F-4팬텀기처럼 함재기에서 파생된 기종을 사용하였지만 통상적으로 함재기는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운용되므로 우리에게 낯선 것은 사실입니다.

 
                   갑판에 다양한 종류의 함재기를 가득 싣고 항해 중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에는 통상 1개 항모비행단(CVW-Carrier Air Wing)이 탑재되어서 운용되는데, CVW는 소속 항공모함을 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하며 CVW를 구성하는 비행대도 작전의 투입 목적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고는 합니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한 조지 워싱턴에는 별개의 임무에 투입되는 8개의 비행대로 구성된 제5항모비행단(CVW-5)이 전개되었습니다.  막강하지만 우리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이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전투폭격비행대 (VFA)

 
공대공전투와 공대지전투를 펼치는 전폭기로 구성된 비행대로 항모비행단의 주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CVW-5에는 F/A-18E 슈퍼호넷으로 구성된 3개 비행대(VFA-27, 102, 115)와 구형인 F/A-18C 호넷으로 구성된 1개 비행대(VFA-195)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통상 1개 비행대가 12~14기의 전폭기로 구성되니 48~56기의 전폭기가 항공모함에 탑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착함 중인 VFA-27의 FA-18E 전폭기
 

                                        조기경보비행대 (VAW)

 
조기경보기는 작전 구역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한마디로 하늘의 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공중을 통한 적의 내습을 원거리에서 감시하거나 아군 VFA가 원거리로 작전을 나갈 때 함께 동행하여 아군기가 원활하게 작전을 펼치도록 돕는 임무에 투입됩니다.  CVW-5에는 4~6기의 E-2C 조기경보기로 구성된 1개 비행대(VAW-115)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이함하는 VAW-115의 E-2C 조기경보기
 

                                          전자전비행대 (VAQ)

 
전자전기는 적의 레이더망을 비롯한 전자 감시체계를 교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한마디로 아군이 대지공격 등의 작전을 펼칠 때 상대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VFA가 작전을 나갈 때 조기경보기와 전자전기가 함께 동행 하여 작전을 펼치며 CVW-5에는 4~6기의 EA-6B 전자전기로 구성된 1개 비행대(VAQ-136)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전자전기는 아직 우리 군도 보유하지 못한 최고의 전술장비입니다.
 

                                         이함 준비 중인 VAQ-136의 EA-6B 전자전기
 

                                             수송비행대 (VRC)

 
말 그대로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하는 수송기부대입니다.  항공모함은 한 번 작전을 나가면 장기간 작전을 펼치므로 인근 육지나 다른 항공모함 사이의 긴급한 인원이나 화물의 수송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목적에 수송비행대가 투입되는데, CVW-5에는 2~4기의 C-2A 수송기로 구성된 1개 비행대(VRC-30)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비행 중인 VRC-30의 C-2A 수송기
 

                                        헬리콥터비행대 (HS)


조종사구조, 해상구난, 연락, 수송, 대잠초계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헬리콥터로 구성 된 비행대입니다.  CVW-5에는 4~6기의 SH-60, HH-60 고성능 헬리콥터로 구성된 1개 비행대(HS-14)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작업 중인 HS-14의 HH-60H 헬리콥터

 
위에서 언급한 CVW의 구성은 통상적이지만 고정된 것은 아니고 임무와 상황에 맞게 수시로 변경되거나 조정됩니다.  평소에는 위에서 언급한 60여기 정도의 각종 작전기를 탑재하고 항공모함이 작전에 나서지만 이들 작전기들 대부분은 하나하나가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최신예기라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흔히 항공모함 비행단의 전투력이 중소국가의 공군력을 능가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패키지 시범 비행 중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에 탑재된 제5항모비행단(CVW-5) 소속의 함재기들
 

사실 항공모함 자체는 그리 무서운 무기가 아닙니다.  워낙 큰 덩치 때문에 방어에 불리하여 수많은 호위함의 보호 없이 단독으로 바다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능력을 가진 CVW를 원거리로 이동시켜 작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전략무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항공모함에서 내려 육지에 전개 된 CVW는 통상적인 비행단 수준으로 능력이 반감된다는 점입니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항공모함과 CVW는 함께 있을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처럼 무서운 전략무기도 결국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힘을 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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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상 규정된 자와 국군이 관리하는 포로가 지은 죄 등은 어디에서 재판을 받을까요?
아시다시피, 바로 '군사법원'이죠.

"그런 범죄 처리안하면 군사법원 아니잖아요?"
"아니, 다들 표정들이 왜이래요? 군사법원에서 처벌 많이 받아보신 사람들처럼." 


                            모 방송 행복전도사 왈, "그런 범죄 처리안하면, 군사법원 아니잖아요?"


대한민국헌법에는, 군사재판을 위한 특별법원으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군사법원법」에서는 군사재판을 관할할 군사법원의 조직, 권한, 재판관의 자격 및 심판절차와 군검찰의 조직, 권한 및 수사절차 등을 규정하여 군사법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에서는 이군사법원법」의 일부조항을 개정하고 있답니다.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지요.

첫째, '양형위원회' 조직, 운영, 양형 기준의 효력 등 관련 조항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대법원에는「법원조직에 따라 '양형위원회'를 두고 있는데요, "양형"이란 형벌의 종류와 양을 정하는 과정으로 양형위원회에서는 형벌의 종류와 양형기준을 설정, 변경하고 그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가 있답니다.

현재 군사법원에서는 임시 양형위원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금번군사법원법일부조항 개정은 '양형위원회'을 설치, 상시 운영하기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하여 군 범죄 형량에 대한 기준 연구를 지속하고 좀더 신뢰성있고 객관적인 양형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이는, 향후 인권보장과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군사법원의 새로운 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임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군사법원의 양형위원회

 

둘째, 군검찰관 및 군사법경찰관의 수사장구 및 무기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자 합니다.
일반경찰의 경우「경찰관직무집행에 범인의 체포, 도주 방지 등을 위해 최소한으로 경찰장구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군사법경찰관과 군검찰관 수사 시에는 그러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에, 군 수사업무도 적법하게 수행하고 직무수행자와 기타 제3자의 생명, 신체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필요 최소한 범위의 수사장구(수갑 등) 나 무기(가스총, 전자충격기 등)를 사용할 수 있도록군사법원법개정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직무수행시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하기도 하시지만,경찰관직무집행법과 마찬가지로 무기 사용의 경우 범인이 무기나 흉기를 소지하여 세 차례 이상의 투항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구체적 사용 기준을 명시하려는 것이랍니다.




그 밖에 이번군사법원법개정을 통하여 '군검찰관'이라는 딱딱하고 엄격하게 느껴지는 용어를 '군검사'로 변경하고 미비점을 개선하고자 한답니다.

군사법원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수행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군사법원법」개정은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수렴 단계에 있습니다. 군 사법기관의 재판의 공정성과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군사법원법개정이 절실하다라고 감히 말씀을 드려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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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수퍼캐리어에 대한 이야기
 
 

최고의 전략 병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항공모함은 이미 실전에 등장한지 100년 가까이 되었을 만큼 생각보다는 오래전에 개발된 무기입니다.  한마디로 비행기가 무기로 사용되자마자 항공모함이 등장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항공모함은 여러 나라에서 여러 형태로 개발되어 사용하다가 제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 모양으로 개념이 정립되어졌습니다.
 

                               최근 부산에 입항한 조지 워싱턴의 모습 (사진-조선일보)
 

현대 항공모함의 표준처럼 여겨지는 슈퍼캐리어(Super Carrier-초대형 항공모함)은 현재 미국만이 운용 중인데, 지난 7월 21일 한-미 연합훈련을 부산에 입항하여 언론에 공개된 배수량 9만 7천 톤의 핵추진 항공모함 CVN-73 조지 워싱턴 (USS George Washington)호도 거기에 해당됩니다.  최초의 슈퍼캐리어의 영예를 가지고 있는 항공모함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건조에 착수하여 1955년 취역한 CV-59 포레스탈(Forrestal)입니다.

 
                                               최초의 슈퍼캐리어인 포레스탈

 
사실 슈퍼캐리어의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배수량기준으로 적어도 7만 톤이 넘고, 경사활주로(Angled Deck)가 장착된 총 길이 300미터가 넘는 갑판, 4개의 사출기 및 엘리베이터 등을 그 외형적인 특징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즉, 제트화로 대형화된 60여기 이상의 전술기를 탑재하여 최대 한개 편대를 동시에 이함 시킬 수 있거나 이론상으로 함재기를 동시에 이착함을 동시에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륙하는 다양한 종류의 함재기들
 

이에 부합된 능력을 처음으로 보유한 항모가 바로 포레스탈인데 이후 등장한 미국의 항모들을 통상적으로 슈퍼캐리어라 지칭합니다.  현재도 이 정도 규모의 항모를 실전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밖에는 없는데, 최근 취역 한 CVN-77 부시(George H.W.Bush)호까지 이러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포레스탈은 기념비적 작품이었습니다.  굳이 차이라면 시대의 기술이 접목된 동력, 아일랜드구조, 엘리베이터 위치, 무장이나 센서류 정도라고나 할 정도입니다.
 

           포레스탈의 개념도인데, 최근 항공모함과 비교하여 엘리베이터 위치 등이 차이가 있습니다.
 
 

포레스탈의 등장이전까지 미국이 운용하였던 최대 규모의 항모가 배수량 5만 톤 정도였던 미드웨이급(Midway Class)이었으며, 현재 미국의 항모 이외에 최대 규모인 러시아의 쿠즈네쵸프(Kuznetsov)나 영국의 도입예정인 CVF급 항모도 이착함 능력 및 배수량 기준으로도 60년 전 등장한 포레스탈에 미치지 못합니다.  단지 배수량으로만 따진다면 이에 필적할 만한 항모는 제2차 대전 당시 일본해군의 시나노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러시아 유일 항공모함인 쿠즈네쵸프는 사출기가 없어 운용능력이 부족합니다.
 

포레스탈이 최초로 제식화한 슈퍼캐리어는 맞지만 서류상으로는 제2차 대전 직후 연구된 CV-58 유나이티드 스태이츠(Uniter States)의 개념이 정립된 최초의 슈퍼캐리어이었습니다.  하지만 장거리 전략폭격기, 핵미사일 등의 이유로 항모무용론이 제기되자 개발이 취소되었는데 그 구조가 현대의 항모와 많은 차이를 보이며 오히려 태평양 전쟁 중 일본 항모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서류상의 계획되다 폐기된 CV-58 유나이티드 스태이츠 
                                경사활주로가 없는 등 현대의 항공모함과 차이가 많습니다
 

이처럼 용도가 폐기 될 운명에 처했던 슈퍼캐리어가 포레스탈로 부활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트기 시대의 도래에 따른 함재기의 대형화 때문입니다.  오래 동안 대양의 주인이었던 전함(Battleship)이 그 덩치로 인하여 사라진데 비하여 오히려 항공모함이 덩치를 더 키우게 된 이유가 바로 항모의 존재 이유였던 함재기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퇴역한 F-14함재기의 멋진 이함 모습
                       슈퍼캐리어의 등장으로 고성능 대형 함재가의 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전 항공모함은 크기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여기에 탑재하여 운용할 수 있는 함재기가 공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능 상 핸디캡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나 슈퍼캐리어의 등장은 F-4, F-14, FA-18같은 대형 함재기의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수직이착륙기를 이용한 경항모 시대를 개막하였으나 결국 다시 중형 항모정책으로 회귀한 가장 큰 이유는 수직이착륙기와 경항모 자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작전능력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항공모함과 작전 중인 영국의 경항공모함
                                  한눈에 보이는 크기만큼 작전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도 이러한 공룡을 만들어 놓고 그 능력을 제대로 몰라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전의 미드웨이급에서는 상상도 못 할 거대비행체의 이착함실험 등이 그것입니다.  비록 시범적으로 KC-130F 수송기의 이착함에는 성공하였지만 대형 수송기도 할 수는 있다 정도만 증명하였을 뿐 갑판 운영에 있어서의 비효율성 등으로 단지 실험으로만 끝납니다.


                              포레스탈 갑판에서 이함대기 중인 KC-130F의 실험 모습
 

이처럼 새롭게 시도할 연구가 많았을 만큼 슈퍼캐리어는 군사 패러다임의 정립에 많은 변혁을 불러왔고 이때부터 무서운 전략 병기로 본격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장을 개척한 포레스탈은 1993년 퇴역하여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무기사적 의의는 크고 영원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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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관심 속에, 7월 21일(수)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국방부 앞 전쟁기념관에서는 6.25 참전 전사자들과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헌화와 의장행사가 있었습니다.

전쟁기념관 후문을 통해 행사장으로 향하니, 한쪽으로 양국 의장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답니다. 아래는 미국측 의장대 대기모습!


                                                           미측 의장대원들 행사전 대기 모습


이제, 클린턴 미 국무장관, 게이츠 미 국방장관,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외교부장관이 전쟁기념관 내로 입장하실 시간입니다.


                                한미 외교/국방장관 입장 전 한미양측 보좌/보조 기관들 대기 중입니다. 


                                                    외신 기자들 긴장합니다.


                                                  우리 장병들도 다같이 긴장!


               한미 외교/국방장관님들, 6.25 전사자와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위해 정렬!


양국 2+2 장관님들은 6.25 참전 전사자들과 천안함 희생자들 명비에 묵념과 헌화 후 의장행사 참관을 위해 평화의 광장으로 내려오십니다.  










의장행사 전, 양국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국기에 대한 경례!


                               미국 6.25 참전용사 3세들도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였습니다.


                            이어, 한미 합동 군악대 공연이 있었습니다.(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양국 군악대 공연후 장관님들, 참석자들과 인사를 위해 평화의 광장 레드카펫을 행진하십니다.


행진 간, 미국 6.25 참전용사 손자손녀들과의 기념촬영도 빼놓지 않으십니다.(아래) 




위와 같이 전쟁기념관 의장행사 후, 양국 장관님들은 삼엄한 경호 속에 본론인 '2+2 본회의' 진행을 위해 정부종합청사로 향하셨습니다.




당일 오후, 정부종합청사에서는 '2+2 장관회담 본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회의에서는 '09년 6월 양국 정상이 채택한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계속하여 발전시켜 나갈 것과 '15년 12월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포함한 새로운 계획인 '전략동맹 2015'를 '10년 안보협의회의(SCM)시까지 완성할 것에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10년 7월 9일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을 환영하면서 북한측에 천안함 공격에 책임질 것을 촉구하였고,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아울러 '09년 6월 '동맹미래비전'에 기초하여 양국이 동맹협력의 폭과 깊이를 보다 긴밀하고 포괄적으로 협력할 것과 동북아 지역의 안보환경과 새로운 도전들에 함께 대처할 방안들을 논의하는 등 다각적으로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해 나갈 것에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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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그 고지식하고 꽉막히기로 유명한('열혈국방'은 절대 인정 안합니다.ㅋㅋ) 우리의 국방부가..  '트윗벙개'를 하였습니다.

때는, 7월 14일 점심시간! 찌는듯한 했볕을 맞으며, 그렇게 우리는 그분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
국방부는 총 5명이 벙개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트위터리안들을 만났죠.



                           

                                                  역시 먹을 것이 있어야 대화가 즐겁줘~ 


                                                    


그러면, 우리의 아름다운 만남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선, 탕수육과 자장면 그리고 짬뽕이 있어, 만남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현장에서 찰칵!  정책홍보담당관님 제일 안나오신 사진으로 한장!ㅋㅋ


                                                        삼각지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


식사 간, 마치 10년지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o  참석 트위터 : " 청와대하고 농림부, 마사회의 트윗벙개 때에도 참석했었어요~...."   
     
    o  참석 트위터 : "일전에 병무청 팀블로그 기자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곳 활동은 취재범위가 군부대
        로만 제한이 되어있어서 만족스럽지 못하였답니다....   저는 국방 전체를 취재하고 싶었거든요...그래서
        그곳 활동을 그만두었습니다. 국방부 직업군인블로그('군화신꼬') 기자가 될 수는 없나요?"

    o  국방부 참석자 : "적극 환영입니다!~ 제가 말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o  참석 트위터 : "저는 00에서 블로그와 트위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국방부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 지 무척 궁금했습니다...그래서, 이렿게 벙개에.."   모두들 쫑알쫑알쫑알...


그리고, 저희 국방부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영양가 있는 장소, '전쟁기념관'으로 모두들 향하였지요.


                                                                      전쟁기념관 전경



   o  참석 트위터 : "이곳, 전쟁기념관내 '참수리 357호'를 보게되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후배들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아파옵니다. 저도 해군에서 군복무를 했었거든요..." 
       "그리고, 군 복무를 생각하니... 신기한 것이, 군복무 전에는 정말 생각의 중심이 '나'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었
       는데요, 군에 복무중에는 부대내 정신교육 때문인지??  정말 나라를 위해 훈련도 하고, 전쟁이 나면 전쟁도
       하며, 전투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되더라고요... 물론 민간으로 돌아오니, 다시 '나'중심
       주의로 돌아갔지만요...ㅋㅋ"

   o  국방부 참석자 :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군'도 조직의 목표가 있고, 군에 온 장병들에게는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조직 목표를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o  참석 트위터 : 물론.. 그렇겠죠? 

    

                                            전쟁기념관내 참수리 357호를 향하여, 앞으로~갓! 


  o  참석 트위터 : "참수리357호, 이거 진짜를 갖다 놓은 건가요??"

  o  국방부 참석자 : "어디, 진짜 배인지, 모형인지, 한번 올라가 보실까요? 호호호.."


                                               멋진 포즈 잡아주세요~(참수리357호 모형위에서)


                                                '이 배를 조종하려면, 어케 해야하나...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기념관내 6.25 특별사진전 '감상파'와 '비감상파(일전에 보신 분들)'로 나뉘었습니다.('감상파'들은 사진전을 감상하였지요~)
국방부 , 오신분들께 사진전 입장권을 드렸어요.


       사진전 입장권을 드리니, 참석 트위터 말씀하시길, "다음에 우리 애인하고 와야~쥐. 오늘은 이만!"



                                 전쟁기념관 '6.25 특별사진전' 관람 전 '빠이빠이-픽쳐' 한 컷!


그리고, 그들은 전쟁기념관내 6.25 특별사진전에서 '3D입체사진'을 보기위해 영화'메트릭스'에 나오는, 그 비슷한 안경을 쓰셨습니다. 요렇게!


                                     영화 '메트릭스'를 연상케 하시는, 트위터리안들.^^  


그분들...  다음 '트윗벙개'때 또 뵙죠.

담에 또 만나요!~~~   트위터리안, 안녕!   


   그리고, 저희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께서는 7월 26일이면 '보건정책과장'이 되십니다. '열혈국방'과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 그리고 '동고동락', '군화신꼬' 등등등을 모~두 낳으신(?) 다산의 여왕!  "사랑합니다!" ^^ 
                                                                        
                                                                                              - 국방부 정책홍보과원 일동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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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을 왕복하는 총기들
 

 
우리나라에서는 수렵용 엽총이나 사격장 용도로 허가를 받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개인이 총기를 보유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때문에 총기와 관련한 사고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없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적고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범죄율이 높은 여러 나라에서 법으로 총기 보유를 강제하고 싶어도 어느덧 하나의 문화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경찰의 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제 총
 

이러한 딜레마를 가지고 가장 크게 체감하고 고민하는 나라가 아마도 미국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부개척 시대를 거치면서 민병대의 전통을 하나의 자랑이자 역사로 생각하는 미국은 현재도 총기의 보유가 자유롭고 총기의 수집이 하나의 취미로도 정착되었을 정도입니다.  금연자도 담배 수집을 취미로 가질 수 있듯이 총기의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총기 컬렉션을 할 만큼 총기와 그와 관련된 문화가 관대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잦은 총기사고에도 불구하고 총기를 규제하지 못하는 것이 미국의 고민입니다
 

국가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미국은 유별나게도 지나간 물건에 대한 가치를 상당히 높게 쳐줍니다. 골동품이라기보다는 폐품에 가까운 불과 십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과거의 물건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다보니 시골 동네에도 골동품가게(Antique Shop)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단지 예전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판 모르는 남의 사진첩도 거래되는 경우까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골동품 점인데 남의 사진까지 거래가 됩니다
 

그런 점은 총기와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며 실제로 실전경험이 있는 총기를 역사적인 소장품으로 간직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이 당연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제2차 대전, 한국전쟁을 거쳐 월남전 초기까지 사용된 M1과 M1카빈소총(이하 카빈)은 상당히 소장가치로써의 인기가 높습니다.  이들 소총은 총 1000만정 가까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생산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러 나라에서 주력 제식소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M1소총(상)과 카빈
 

하지만 거대한 전쟁에 가장 많이 사용된 주력 소총이었던 관계로 아직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M1과 카빈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 아직까지 보관상태가 양호하여 작동되는 M1과 카빈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 있다입니다.  얼마 전까지 예비군용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상당량의 작동한 소총이 보관 중입니다.  그러나 부품조달, 보관비용 등의 여러 문제로 실전용으로 사용하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비군 훈련에 사용된 카빈
 

마침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애물단지가 되어가던 이들 소총들이 미국 호사가들을 위해 다시 바다를 건넜습니다.  지난 2009년 말 예비군용 총기로 보관되어 있던 M1과 카빈 중 상태가 양호한 12만 2천정 (M1 7만5천정, 카빈 3만 5천정)의 소총들이 미국의 민간판매용으로 방출되기로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데다가 구형총기에 대한 재고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 한마디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민간인이 취미로 사용 중인 M1
 

전술한 것처럼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인마살상용 총기의 개인 보유가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M1이나 카빈 같은 고성능소총(총 자체가 구형이지만 총기로써의 성능은 상당히 좋은 편으로 현재도 평가되고 있음)의 국내 소비가 불가능하므로 전량 비용을 들여 자체 폐기하여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러한 대외 재판매 방식은 상당히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가 사용 중인 카빈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러 미국에서 한국으로 태평양을 건너왔던 귀중한 무기들이 그동안 소중하게 사용되고 보관되다가 이제는 미국의 호사가들을 만족시켜 주기위해 반대로 태평양을 건너가게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아마 이들이 생명체였다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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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점을 2015년으로 연기한 것과 관련하여 논란이 많습니다.


                                                    한미동맹, 전작권 전환 연기에 합의


'전시작전통제권'이란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 및 美증원군에 대한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며 그 중 '핵심은 美증원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입니다.

美증원군이 우리 안보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규모가 69만 여명의 병력, 함정 160여척, 항공기 1,600여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재 주한미군 규모가 2만 8,500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전속결의 현대전 성격상 美증원군의 '전개여부'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개속도'가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전시지원(WHNS)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미 '전시지원 시범식교육' 모습


전시지원(WHNS)이란, Wartime Host Nation Support의 약어로서 '전시 주둔국 지원'을 의미하며 이를 줄여 '전시지원'이라는 용어로 통칭되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위기, 적대행위 또는 전쟁시 대한민국이 미합중국 군대의 접수, 이동과 지속을 위하여 제공하는 군사, 민간자원 및 지원"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데요, 이 전시지원(WHNS)의 목적은, 美증원군의 신속한 전개를 보장하고 전투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유사시 한반도 방어능력을 완비하는 것입니다.


전시지원(WHNS)은, 1980년대 'Hunn-Warner법'에 의한 군축여론과 美 국방예산 삭감 등으로 인해 미국이 동맹국들의 안보부담을 요구하면서 생성되어, NATO의 중장기 방위력 증강계획 추진과정에서 발전되었습니다. 특히, 1982년에는 미국-서독간 전시지원(WHNS) 협정이 체결되어 당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공산진영 국가들의 안보위협에 대한 준비태세가 확립되었고, 이러한 추세에 따라 미국은 또 다른 분단국인 우리나라와도 1991년에 전시지원(WHNS)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현실(판문점에서) 


이후 1990년에 동-서독이 통일되면서 1995년에는 미국-서독간 전시지원(WHNS) 협정이 종료되었으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와 체결한 전시지원(WHNS)협정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전시지원(WHNS)은, RSOI 단계별로 시행되는데 RSOI(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Integration의 약어)란 '한반도에 전개되는 美증원군을 지휘관의 작전적 요구대로 전투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부대병력, 장비, 물자가 도착하도록 공항 및 항만이 제공되어 수용(Reception)되고,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일정기간 대기(Staging)를 위해 시설과 토지가 제공됩니다. 이후, 작전지역과 집결지로 이동(Onward movement)하기 위해 주보급로와 예비보급로가 확보되어야 하며, 수송수단 및 이동관리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집결지에서 전방부대와 작전적으로 통합(Integration)하기 위해 토지 및 시설, 보급, 탄약지원 등이 필요하게 됩니다.

현재 한,미간에는 전시지원(WHNS) 협정이 체결되어, 이를 근거로 한 전시지원(WHNS) 계획이 수립되어 우리 동원계획(충무계획)에 반영되어 있으며, 동 계획에 의한 지원절차 숙달을 위해 매년 KR과 UFG연습 기간동안 실제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한가지 국방의 고민점은, 이 전시지원(WHNS) 계획은 지원자산에 대한 사후 비용분담 원칙이 아직 정립되지 못해 '잠정'전시지원(WHNS) 계획으로서 수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美증원군에 대해 지원을 하더라도 무조건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니며, 자산별로(정부 및 軍자산, 민간 동원자산, 시설 및 토지 등) 비용분담 원칙이 합의되어야 하는데, 양국간 국익이 대립되는 문제이므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이러한 비용분담 원칙을 타결하여 정상적인 전시지원(WHNS)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전시지원(WHNS)의 법적체계를 완비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안보문제는, 주변 열강의 국익이 대립되는 국제적 문제이며, 우리의 자주국방 노력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근본적 취약요소가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유사시 美증원군의 한반도 전개 보장'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입니다.

결국, '전시작전통제'의 성공은, 전시지원(WHNS)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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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서울 대림미술관(경복궁 역쪽)에서는 6.25전쟁 60주년 특별사진전 '경계에서(On the Line)'가  전시 중입니다.


                                                  <6.25 사진전'경계에서(On the Line)...>


'한국전쟁'에 대한 10가지 이야기들을, 구본창, 주명덕, 강운구, 원성원,백승우 등 대한민국 대표작가 10인의 사진을 통해 바라봅니다.

                                                                     구본창 작가와 함께.


                                                                    강운구 작가...


                                                  어머니 그리고 철모.... 구본창 작가 작품들


                                                                    최광호 작가 작품


7월18일 저도, 국방부 특별도슨트 1일 관리자가 되어 대림미술관을 방문했었드랬지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10시30분과 12시에 진행되는 '특별 도슨트(이동욱 일병과 이준기 이병)' 신청은, 선착순 사전예약제(신청 사이트 : http://www.ontheline.co.kr )로 운영되고 있답니다. 국방부 6.25 사진전(6.25~8.20)이 열리고 있는 서울 대림미술관으로 오세요~


                                                           '경계에서' 만의 특별도슨트


6.25 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적지, 다부동 전투의 참전용사 모습, 철책선 주변풍경,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초상과 전쟁유물 등을 사진예술을 통해 이야기 합니다.
 
더운 여름, 시원한 대림미술관에서 6.25전쟁을 생각해보며 사진예술을 즐겨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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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월15일,목)로, 6~7월중 총 5회의 '천안함 정책설명회'를 모두 진행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정책설명회'를 준비하여,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된 국민들의 의문사항들을 상세히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6월 중에는 밀리터리 파워블로거분들과 트위터분들을 만났었죠.^^ (일전에 포스팅한 것 보셔요~)

7월 15일은 국방부에서 준비한 '천안함 정책설명회'가 마지막 5회째를 맞이하는 날이었던 만큼, 특별한 분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바로, 국민여러분들의 여론을 이끌어 나가시는 '시민사회단체' 여러분들(26명) 이십니다.

다들 모이신 후,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정책설명회'가 시작되었답니다.


                  민군합동조사단 대변인의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이 있었습니다.(국방부 대회의실)


먼저,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의문사항별 설명에 들어갔습니다.
각종 언록매체들을 통해 쟁점이 되었던 부분들을 항목별로 정리하여 설명드렸습니다.
'흡착물' 관련 내용에서 '절단면'과 기타사항 관련 내용까지를요.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천안함의 선체 흡착물질 성분이 일치"(진지하게 설명을 들으시는 시민단체분들)


                                                   "프로펠러가 안쪽으로 오그라든 이유는?"

                                                           어뢰 추진동력장치 관련 설명

          "폭발 직후(31~41초) TOD 영상은 함수,함미가 맞물려 있는 것 아닌가?" 에 대한 설명내용


다음으로, 천안함 침몰이 '좌초'가 아닌, '비접촉 어뢰폭발' 이라고 판단한 근거들을 설명드렸답니다.
'선체 형상 분석'에서 '폭약 성분 분석' 까지를요.


                                                      선체 형상 분석

                                                    생존자 진술내용 분석


이어, 참석하신 시민사회단체별 질의와 국방부/합참의 답변이 있었답니다.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던 참여연대 






           그리고,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에서 시민사회단체분들의 질문에 상세히 답변을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질의에 국방부장관은 깊은 감사와 당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국방부장관과 신문사 등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 오신분들의 성의어린 질문 등 말씀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에 우수한 인력들을 동원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이자리에서 좀더 세세한 부분들을 가지로 끝없는 질의와 답변을 이어나갈 수도 있겠으나,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천안함 절단면 등을 보기위해 평택 2함대사령부로 향하였습니다.  










천안함... 국방부와 군도  천안함과 희생장병들이 그립고,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군이 부족하였던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중심이 아닌, 세세한 지식들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그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군이 더욱 강하게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천안함 정책설명회에 참석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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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

 
 
6.25전쟁 제60주년을 맞이하여 각종 매체에서 특집 프로그램이 상영되고 있고 당국도 이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당시의 기록필름을 이용한 시사프로그램과 달리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최근의 극화나 행사를 보면 고증과 관련하여 자못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에 관하여 몇 가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전 영국군을 초청하여 4월 17일 개최 된 임진강전투 기념식 (사진-뉴시스)
 

우선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질타를 많이 받은 부분이 당시 사용한 무기나 장비에 대한 묘사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극화니까 내용은 별개로 하고 사실 6.25전쟁에 실제로 사용된 장비를 소품으로 구하는데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 같이 사소한 부분까지 정확히 고증을 거쳐 재현된 전쟁영화나 드라마에 이미 눈높이가 맞추어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눈에 거슬릴 정도로 고증이 잘못된 부분에 대한 불만이 클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이에 관한 정보를 아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 극화의 모범으로 불리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 된 것이 신작 드라마 ‘ 전우 ’ 에 등장한 헬리콥터다.
헬리콥터가 6.25전쟁에 처음 등장한 것은 맞지만 드라마에 나온 헬리콥터는 월남전에 사용된 UH-1H 기종이었다.
비록 이 부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질타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헬리콥터라는 피사체를 극에 등장시키고자 하였다면 어쩔 수 없었던 차선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드라마가 실제로 있었던 전쟁사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재미를 추구하는 가상의 극화이고 내용 전개상 헬리콥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우에 등장한 UH-1H 헬리콥터 (사진-KBS)
 

하지만 또 다른 극화인 ‘ 로드 넘버 원 ’ 에 등장한 북한군 T-34전차는 정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방송 전에 1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북한군 전차를 재현하였다고 선전하였는데 문제는 엉뚱하게 재현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사용된 전차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이왕 거금을 들여 할 것이면 제대로 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였다.
전쟁당시에 북한군이 사용한 T-34는 85형인데 방송국에서 재현한 모조전차는 제2차 대전 당시에 소련군이 사용한 외형부터 차이가 많이 나는 76형이었다.
한마디로 힘은 힘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은 부분으로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충분히 재현 가능하였는데 대충하다보니 벌어진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제대로 재현할 수 있었던 T-34 (사진-MBC)
 

사실 여기까지는 아마추어(?)가 벌인 일이고 드라마는 아무래도 장비나 소품보다 극 전개가 우선이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하여 당국에서 개최한 재현행사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등장하였다.
지난 6월 28일에 6.25전쟁 초기 대한민국을 구한 위대한 전투로 평가되는 ‘ 춘천전투 ’ 재현행사가 제2군단 주도로 현지에서 열렸다.
당시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맹활약한 국군 제6사단의 선전을 재현하였는데 제16포병대대의 포격장면과 북한군 자주포에 대한 육탄공격 장면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제6사단의 선전을 표현한 춘천전투 재현행사 (사진-연합뉴스)
 

당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주체측이 많은 애를 썼음에도 연출 병사들이 사용한 소총이 K-2였던 것처럼 아쉬웠던 부분이 종종 눈에 띠었지만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의 SU-76 자주포를 국군이 현재 보유한 M-48 전차로 재현하였다는 점은 커다란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실제 있었던 전투의 재현이라면 적어도 자주포는 자주포로 재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 지평리전투 ' 재현행사와 비교하여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적의 자주포를 전차로 재현 한 것으로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지난 5월 27일에 참전 유엔군 노병을 초청하여 현지에서 제7기동군단 주체로 지평리전투가 재현되었다.
미 제2사단 마크를 군복에 부착하고 M-1 카빈 소총을 소품으로 섰으며 마지막에 전차를 앞세운 크롬베즈 전투단의 돌격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호평을 받았다.
다만 중공군이 사용한 소총을 나무모형로 깎았는데 아쉽게도 6.25전쟁 당시에 사용하지 않은 AK 소총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옥에 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평리전투 재현행사 (사진-뉴시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위에서 일일이 언급한 부족한 점들은 아픈 과거사를 상기하려는 노력과정에서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어느덧 6.25전쟁을 서서히 먼 과거의 기억이 되어가고 있고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더 많아진 이때에 그러한 과거사를 잊지 않게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쉬운 많은 부분이 있었지만 이런 부분은 차차 개선될 것이라 생각하며 비극의 과거사를 잊지 않고 새롭게 각인시켜주려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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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야 !
 

 
추론이기는 하지만 지구상에 파생형을 포함하여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어 널리 퍼진 무기라 한다면 AK-47소총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 개발국인 구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옛 공산권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이 순간에도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정확한 생산량을 알고 있지 않을 정도다.

 
                                AK-47은 무기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다
 

군은 병력과 장비로 구성이 되는데 병력이 보유하는 최소한의 화기가 소총이다.
보병은 물론이거니와 통신이나 수송처럼 비전투병과 사병들도 소총은 기본적으로 장비하고 있다.
당연히 무력을 보유한 집단들은 기왕이면 성능이 좋은 소총을 기본무기로 갖추려 한다.
거기에다가 성능이 좋은 소총이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AK-47은 냉전시기 공산권은 물론 현재도 많은 국가의 표준 소총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947년 개발되어 아직까지 많은 나라의 군대가 기본 장비로 채택하고 있는 AK-47은 가장 좋은 소총이라고 평가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제작이 용이한 만큼 가격도 저렴하고 내구성과 정비가 용이한데다 화력까지 좋아 미국의 M-16과 더불어 '최고의 공격용 소총' 이라고 평가를 받지만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공산국가에서 탄생한 총답게 카피 본까지 합한 생산량은 M-16을 훨씬 능가한다.

 
                                       북한도 AK소총의 주요 생산 소비국 중 하나다
 

이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AK-47은 개발자 칼라시니코프(Mikhail Kalashnikov)와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전차부대 하사관으로 참전한 그는 1941년 독일군과 교전하던 중 포탄 공격을 받고 부상을 당하여 입원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소련군이 자기 안방에서 독일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치욕적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옐친(左) 러시아 전대통령과 칼라시니코프
 

장고 끝에 그는 독일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소련의 무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결론을 내렸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독일 무기들의 품질이 소련 것에 비해 좋았지만 T-34처럼 소련 또한 좋은 품질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독소전 초기에 소련이 몰렸던 가장 큰 이유는 전선 지휘부의 무능과 경험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말단으로 참전하였던 칼라시니코프에게는 당장 손에 들고 있던 무기차이가 눈에 보였을 것이다.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소총을 제작하였다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이 위기에 처하였던 것을 직접 경험한 그는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해 무기의 기본이 되는 소총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리고 종전이후 툴라(Tula)조병창에서 일을 하며 그가 구상하던 소총을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AK-47이다.
그만큼 AK-47은 한 개인의 일생의 노력이 응축된 산물이었다.

 
                                그는 전쟁 초기 소련이 당한 치욕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이 채택 후 대량 생산하거나 여러 국가에 생산하도록 허락하여 전 세계에 마구 공급된 AK-47은 방위를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게릴라, 테러리스트는 물론 마약사범이나 갱단까지 널리 애용하는 무기가 되었고 이렇게 AK-47이 전 세계 구석구석에 퍼져 살육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에 칼라시니코프는 매우 괴로워했다.

 
                   하지만 국가 방위가 아닌 무력 집단의 살육도구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06년 6월 12일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 중 일부이다.
그는 11일(현지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AK-47소총이 오사마 빈 라덴 추종자들의 손에 들려있는 장면을 TV에서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내가 개발한 소총이 저들 손에 들어가게 됐을까'자문하곤 한다 "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중략)...그는 " AK-47 소총 개발은 당초 파시스트 독일 침략군으로부터 조국을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됐다 " 고 회고하였다.

 
                                M-16 개발자 유진 스토너(右)와 함께 한 칼라시니코프
 

비록 한 개인의 열정과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명품이지만 전 세계 분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등장하는 AK-47을 보면 아무리 좋은 물건도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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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소 딱딱한 말씀을 드려봅니다.... 하지만, '알찬' 정보로요!^^
 
7월9일 KIDA에서는, 국방부 후원, KIDA(한국국방연구원) 주최로 국방정보화 정책 발전을 위한 세미나(제목 : '미래 국방정보화 발전방향과 EA(Enterprise Architecture)')가 개최되었답니다. 




KIDA의 '국방정보화 정책 세미나'는,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하였습니다.

본 세미나는 주요 국방정보화 추진 이슈에 대해 발표와 토론 진행함으로써 합리적 정책방향을 도출하고 관련 전문가들간 공감대 확산을 목적으로 개최되어 왔답니다.



                          KIDA(Korea 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  한국국방연구원)


특별히 금번 세미나 시간에는, 대통령실 IT특보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IT강국인 만큼, 현 정부는 '전자정부'를 넘어, 이제 'Smart  Korea' 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4년까지 '3D, 콘텐츠, 미디어'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며, 금년말 개최하는 'G20 정상회의' 도 'Paperless Meeting'으로 진행할 계획으로, Tablet PC로 회의자료를 보며 자동통역 기능을 활용하고, 실시간 메모 작성과 전송이 가능한 회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대통령실 IT특보의 특강 ('IT강국에서 IT선도국으로')


"우리나라는 그간 SW개발을 내수에만 치중하고 수출을 등한시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SW수출에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국방SW 수출'도 적극 검토되고 있습니다. 올해 말이면 국방SW 수출'안'이 마련되고, 대통령 보고 후 2011년부터는 '수출용 국방SW 개발'이 진행될 것입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국방 차관은 세미나 서두의 축사를 통해, "국방정보화는, 초기엔 인사/군수 중심의 업무 전산화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최근에는 C4I체계 같은 전장분야로 영역을 넓혀 '네트워크 중심전(NCW)'인 미래전 양상에 대비하여 전투요소들에 정보기술을 통합하는 등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국방정보화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제2부'에서는, 국방부 정보화기획관과 최종섭 KIDA 책임연구위원의 주제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국방부 정보화기획관은, '미래 국방정보화 발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 '국방정보화'란, '국방 관련 정보를 생산, 유통, 활용하여 국방분야 제반활동이 가능하도록, 또는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전장관리와 평시관리 업무를 동시에 운영하고, 상용체계와 군용체계를 복합적으로 운영하는 등의 특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그간 국방정보화는 조직원간의 인식의 차이로, 사용자 중심이 아닌 개발자 중심으로 체계가 개발되고 무기체계와 비무기체계를 구분짓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습니다.

이제 '국방정보화'는 다음과 같이 발전되어야 합니다.

1. 조직 '목표'에 부합하고, 2. '상호운용성' 중심으로 관련기관간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며, 3. 정보체계의 활용성을 극대화하고, 4. 민관군 협력(상용기술의 국방적용 촉진, 정부부처간 협력, 산학연 협력체계 구축 강화 등)으로 개방형 발전을 지향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최종섭 KIDA 책임연구위윈의 '국방EA 나아갈 길' 발표내용입니다.

" 국방EA(Enterprise Architecture) 란, 무엇입니까?
 많은 분들께서 아키텍쳐, 아키텍쳐 하시는데, 도대체 이 '아키텍쳐'가 무었인지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국방EA'는 바로 '업무에서 정보기술까지, 미래 업무프로세스의 청사진'이라 하겠습니다.    




2010년 12월에는 국방 통합 아키텍처가 구축될 예정이나, 많은 분들께서 그 활용을 의문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활용에 관하여 말씀드리면, 'EA'는 국방분야 뿐만 아니라 국가업무 전체 차원에서 그 활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이미 1990년대에 미 국방부와 합참은 아키텍처를 도입하여 적극 활용해오고 있으며, 그 외에도 영국, 호주, 독일 등 선진국들이 'EA'를 도입,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군부대의 건물 신축공사나 전시 작전운용 등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국가 EA추진의 법근거와 추진방향


우리 국방EA의 구축 및 활용의 성공을 위해서는, 활용목적을 명확히 하고, 필요예산 확보에 노력하여야 하며, '최상위 EA' 구축과, 관련 EA 구축사업간에 일관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참석자들간 정책토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있었답니다. 

" '국방정보화법'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관계자들간에 공감대 형성과 배려심이 필요하며, 전장과 자원이 이원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국방부 정보화기획관실 정보화정책담당관)",

"국방정보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업간 중복, 폐쇄성을 지양하고 합동성과 표준화을 중시하여야 합니다(합참 지휘통신참모부 차장)",

"공군 무기체계는 첨단무기체계를 추구하여, 그 특성상 유지보수의 해외의존도가 높아 소요예산이 많으며, 정보보호 취약점(해킹 등) 증가에 따라 무기체계의 오작동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즉, 공군의 경우는 군내 S/W 유지보수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으로, 향후 '공군 S/W 관리단'을 창성할 계획 있습니다.(공군 정보화기획처장)" ...

저의 경우 부족한 정보화 지식 상태로 세미나에 참석하여, 세미나 진행간 간간이 두통이 엄습하였으나 ^^,  참석자분들 모두 진지하게, 그리고 희망차게 열띈 토론을 벌이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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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사귀환의 이유
 

 
인류역사에 있어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들은 영웅으로 길이길이 그 명성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에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도달하였던 그 자체만으로 그들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탐험가들이 길이 인류사에 남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탐험에 나선 이들의 무사귀환이다.

 
                 산악인 오은선은 여성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였다 (사진-연합뉴스)
 

목표했던 곳에 도달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통상적으로 생환하지 못하면 완벽하게 성공한 탐험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통신 및 이동수단이 발달한 요즘은 목표에 도달한 사실이 실시간으로 확인가능하고 조난을 당하여도 구조 될 가능성이 높지만 예전에는 무사히 귀환을 하지 못하면 탐험의 성공여부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탐험의 과정이나 결과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극점에 도달하였지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스코트 탐험대
 

다음의 경우를 살펴보면 무사귀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반, 영국 에베레스트 제9차 원정대 소속의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발을 디뎠고 이들은 지구의 마지막 극점을 정복한 위대한 사람들로 영원히 기록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오래전인 1924년 6월 8일, 영국 에베레스트 제3차 원정대의 조지 말로리앤드류 어빙이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많다.

 
                                           에드먼드 힐러리(右)와 텐징 노르가이
 

"산이 있어 오른다" 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말로리는 동료 어빙, 오델과 함께 해발 8,100m 지점에 6캠프를 설치하는데 성공하였다.
여기에서 말로리와 어빙은 안개 속을 헤치며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였고 이들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6캠프에 남아 지원을 맡은 오델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일순간 안개가 걷히자 오델은 에베레스트 정상 아래에서 천천히 정상을 향해 다가가는 작은 점 모양의 말로리와 어빙 일행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안개가 다시 끼면서 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조지 말로리(右)와 앤드류 어빙
 

1999년 영국 BBC가 주축이 된 원정대가 말로리의 시신을 찾는데 성공하였으나 그가 지니고 있던 카메라는 발견하지 못하여 등정여부를 밝힐 수는 없었다.
만일 추후에라도 카메라가 발견되어 정상정복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나온다면 인류의 탐험사는 다시 쓰여 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성공적으로 완수한 등정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업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티에서 근무 중인 단비부대 (사진-KODEF)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무사귀환이 단지 탐험의 결과 여부를 알리기 위해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탐험도 의미가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고 이를 탐험과정 중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바로 완벽한 성공의 기준점이다.
이러한 숭고한 원칙은 탐험 같은 분야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근무를 하여야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명제이기도 하다.

 

                                        해외에 파견나간 국군의 무사안위를 기원한다.
 

현재 이역만리에 곳곳에 파견되어 묵묵히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있다.
그들의 임무가 탐험이나 모험이 아니기 때문에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다고 해서 앞에 언급한 예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안전하게 돌아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그들은 나라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해외로 나간 소중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무사귀환은 미지를 개척하고 돌아온 어떠한 탐험가들의 영웅적인 행동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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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적이었던 대한민국 공군의 분투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극이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개전 초기의 참담했던 상황을 묘사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북한군 전차다.
국군이 용감하게 육탄방어에 나섰지만 전차를 앞세운 북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당시에 국군이 보유하지 못한 전차는 6.25전쟁 발발 당시의 현격한 전력차이를 한 번에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군 전차를 육탄공격 중인 국군을 묘사한 TV 드라마 (사진-MBC)
 

그런데 이처럼 전차로 대표되는 기갑전력 외에도 국군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북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엄청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병력으로는 1 : 2 수준이었지만 화력까지 계량화한다면 전쟁 발발 당시에 남북 간의 전력차이는 약 1 : 5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중에서도 사실 가장 전력차이가 심했던 것은 항공전력이었다.
전차의 경우라면 비록 북한군의 T-34를 막는데 무용지물이었지만 2.36인치 로켓포나 57밀리 대전차포처럼 형식적이나마 대전차무기를 보유하였던 것에 비한다면 전쟁 발발 당시의 항공전력은 그야말로 비교불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격준비에 나선 북한 공군기

 
당시에 북한군은 야크(YAK)전투기 외 160여기의 작전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총 200여기의 군용기로 구성된 항공사단을 보유하였다.
하지만 당시 국군은 단지 L-4, L-5, T-6 훈련기 23기 만 보유하여 전투력은 전무한 상태여서 공대공전투로 적기와 맞상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개전하자마자 북한기가 서울 상공에 나타났을 만큼 제공권은 북한군이 장악하였다.

 
                                         적 전차를 향해 육탄 돌격하는 L-5 훈련기
 

그러나 단지 공대공전투가 불가능하다고 국군은 그냥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후방석에 정비사들이 급조폭탄을 휴대하고 있다가 눈으로 조준하여 손으로 투하하는 공대지 육탄작전을 펼치기 위해 당시 하늘의 용사들은 망설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이러한 육탄공격은 미미한 성과밖에 기록하지는 못하였지만 보유한 274개의 폭탄마저 개전 3일 만에 바닥이 나자 더 이상 작전을 진행 할 수도 없었다.
쉽게 극복할 수 없었던 현격한 전력차이에 하늘의 용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1950년 6월의 모습이었다.


                                선명한 태극 마크를 붙이고 현해탄을 건너오는 최초의 F-51편대
 

그러한 국군에게 미국의 즉각적인 참전과 원조는 어둠을 밝히는 빛줄기가 되었다.
미국은 한국 공군에게 10기의 전투기를 공급하는 바우트원(Bout One) 계획을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전쟁 발발 하루 뒤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비롯한 10명의 국군 조종사들이 F-51 전투기를 인수받기 위해 일본 이타즈케의 미 공군기지로 도착했다.
일본에 도착한 조종사들은 즉각 전투기 전환 훈련에 돌입했으나 악천후 등으로 인해 나흘 동안 1인당 20~30분 정도의 훈련비행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급박한 전황 소식을 접한 조종사들은 즉각 귀국을 요청하여 7월 2일, 10기로 이루어진 F-51 전투기 편대가 대구에 도착하였고 다음날부터 출격에 나서 적에 대한 공대지 작전에 투입되었다.

 
                        지난 7월 1일 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51 전투기 인수 재현행사
 

세계 항공전사에서 보기 힘든 극적인 광경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순간이었다.
전투기를 다뤄 본적이 없었던 조종사들이 불과 나흘간의 급박한 훈련을 거친 후 실전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린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다름없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고 그러한 분투는 국난 극복의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한국 공군의 선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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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강혜정님 대사, 들어 갑니다. " 뱀이 나와~" ㅋㅋㅋ



                                              국방부 본관 로비에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


국방부 본관 지하1층 로비입니다.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국방부 제4회 '웰컴투 건강골'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7월6일~8일)

여타 정부청사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며 즐거워하고 계신 이분! 이분은 누구?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무실 담당 대위입니다. 

행사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답니다.  행사 구성은 1) 설문조사(건강생활습관), 2) 건강측정(혈압측정, 체성분 분석, 체력검진), 3) 건강상담(운동, 절주<가상 음주체험>) 등, 4) 패널전시(금연, 영양, 절주 등)로 하였고요.


 어제인가 담배를 끊고, 매점에서 결연히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나오신 듯한 이분.'나도 행사에 참가해 봐?'


                                                  "술, 너무 드시지 마세요~"

  
                                                     "흡연, 하지마세요~"


                                    "걸으세요! 걸으면 복이와요('만보계'도 드려요)~"


                                     1. 건강 측정전 설문지 작성 - "똑바로 쓰세요!"ㅎㅎ


         2.~ 8. 로비 벽면에 붙은 번호순으로 건강을 측정합니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들..질서도 정연.


                                              즐거운 혈압측정 - "안 아프시죠?"


                                            심폐지구력 측정 - "할만한데요?"


       '가상 음주체험'도 해보아요~ (특수안경을 쓰면, 어지러운 증상 등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08년 3월부터 국방부 전 직원의 건강증진과 조직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매년 위와 같은 '캠패인 성격의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증가하고 있는 직원들의 관심으로, 본 행사는 국방부 조직문화로 확대되어가고 있답니다.  

금년 '웰컴투 건강골' 행사<7.6(화)~7.8(목)까지>에는 국방부/합참 직원 및 영내 지원부대 장병, '단' 장병 및 군무원 530여 명이 참가하였고요, 국방부는 계속하여 조직원들의 건강에의 관심 고취, 기초체력 향상, 만성질환 예방, 생활습관 개선 등을 위해 위와 같은 행사를 개최, 구성원들의 건강과 조직의 건강을 동시에 증진시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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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남성 분께서 전화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국방부가 중국 등 주변국들에게 좀더 열심히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최근 위와같은 민원들을 받으면서 '요즘 참 많은 분들께서 천안함 피격 사건, 특히 '천안함 외교'에 큰 관심들을 갖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 국방부는 과연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외교적 노력을 하고있을까요?  


                                    '제9차 아시아안보회의' Q&A에 참석한 김태영 국방장관


국방부의 '천안함 외교'는, 기본적으로 '외교'인 만큼 외교통상부와 긴밀한 협조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양 부처 중 국방부는, 주로 타국의 군 관련자들에게 천안함 관련 정확한 조사내용과 사실을 전달하고 군사전문가들을 설득함으로써, 전 국가 차원의 지지를 얻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양쪽 관계부처간 무 자르듯 업무를 명확히 분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는 합니다.

지난 달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9차 아시아안보회의', 일명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는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처하는 우리 국방부의 외교적 노력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던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2010 샹그리라 대화' 회의장 전면 


'아시아안보회의'는 매년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 안보수장들이 모여 역내 안보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인데요, 올해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의 후속조치를 모색하던 중 개최되면서 우리 정부에는 관련 국제사회의 공조를 호소하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방부는 사전에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결과를 내용으로 하는 팜플렛을 제작하여 '제9회 샹그리라 대화' 참가국들에게 배포하고, 본회의 주제 연설국으로 참가하여 각국과 양자대담을 실시하는 등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참가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하는 데 힘썼습니다.  


                                                     김태영 국방부장관 본회의 주제 연설 
  

회의기간 중 김태영 국방장관은 본회의 주제 연설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무려 11개국과의 양자대담, 국방장관 오찬 등 쉴 틈 없이 빼곡한 일정을 소화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정은 국방장관 오찬이었습니다. (말씀드린 '오찬행사'는 비공개 행사였으므로, 아래에는 '오프닝 디너' 전경을 공개합니다.^^)


                                           '2010 샹그리라 대화' 오프닝 디너 전경                                       


사실, 한 나라의 안보수장이 둘만 모이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비공식 오찬 차리는 무려 10여개 국의 안보수장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어려운 자리였으므로, 한국은 이 오찬 행사를 활용하여 북한의 천안함 피격 의도, 처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입장, 6자회담 및 천안함 관련 후속조치 등이 조심스럽고도 진솔하게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참석자들의 발언 요청시에는 명패를 '번쩍' 듭니다.


우리 국방부는 현재 '아시아안보회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여러 국가와 전방위적인 협력 외교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현재까지 뉴질랜드, 몽골, 일본, 베트남, 스페인 등과 국방정책실무회의를 개최하고, 호주, 영국, 일본, 인도네시아 국방대생에게는 국방정책설명회를 실시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이러한 행사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지지를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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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5일, 한민구 대장이 제36대 합참의장에 취임하였습니다.


 
   
    7월5일, 한민구 대장이 합참의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신임 합참의장은, 앞으로 "확고한 군비태세 유지와 한미연합방위태세 공고화, 합동성

    강화 및 현존/미래 위협에 대비한 효율적 방위역량 구축'
등 4가지 사항에 대한 중점 
 
    추진의지를 밝혔습니다. 


    특히 한 의장은, "합동성 강화는 군의 숙명으로, 각 군 전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전력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적이 도발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우리군의 능력과 의지를 

    다져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로서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하였
습니다.


    합참의장 이,취임식을 주관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6.25전쟁 이후 최악의 시련이자 도전으로, 제2의 창군을 시작한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군을 새롭게 바꿔 나가고 교육훈련 강화, 정예 전투원 양성을 통한 강한
 
    군대 육성, 정보 기술 집약형 군사력 구조로의 전환과 효율적 국방운영 체계 구축이 우리
 
    군의 역사적 과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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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밝힌 용전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 해군본부로부터의 긴급출동 명령을 받은 YMS-509 경비정이 동해의 묵호항을 빠져나와 북상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명령을 내린 해군본부나 정장이었던 김상도 소령도 전면전 발발사실은 몰랐다.
북상하던 509정은 7시 20분경 옥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 상륙부대를 이동하던 북한군 소형 포함을 발견하고 즉시 교전을 벌였는데 이것은 6.25전쟁 최초의 남북 해군간의 교전이었다.

 
                                           YMS-509와 동급의 미 해군 소해정
 

비록 적함을 침몰시키지는 못하였으나 5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군 함정을 북으로 패주시켰다.
그리고 509정은 당일 오후 3시에 또 다른 북한군 상륙부대 함정들과 교전을 벌여 상륙정 1척을 격파하고 발동선 1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당시 북한은 남침과 동시에 동해안 후방에 특작부대를 상륙시켜 국군 제8사단의 배후를 단절시키는 작전을 구사하였는데 509정의 분투로 많은 차질을 빚었다.

 
                          후방으로 침투하던 북한군을 차단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대한민국 해군의 지략은 같은 날 서해바다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전면전임이 확인되자 해군본부는 유일한 상륙함 LST-801 천안함을 옹진반도로 급파하였다.
원래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고립된 옹진반도에 주둔한 제17연대를 후방으로 철수시키기로 계획은 되어 있었지만 해군은 육군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인천경비부 사령관 유해거 중령에게 명령을 즉각 하달하였다.
 

                                제17연대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LST-801 천안함
 

이때 천안함 하나로 부족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경비부가 보유한 모든 소해정들과 인근의 민간 선박을 징발하여 급조된 철수 선단을 구성하는 치밀함을 해군은 발휘하였다.
그 결과 적에게 함락될 위기의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해상철수한 제17연대는 즉시 국군의 예비대가 되어 전쟁 초기의 피 말리는 지연전에 투입되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하여 반격전의 선봉장으로 맹활약하였다.

 
                                                  옹진반도 전투 상황도
 

하지만 전쟁 초기의 대한민국 해군이 보여준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남해바다에서 있었다.
전면전 발발 소식을 접한 해군본부는 당시 우리 해군이 보유한 최대 전투함인 PC-701백두산함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백두산함은 변변한 전투함정이 한 척도 없음을 한탄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하 모든 해군 장병들이 월급을 털어 마련한 기금에다가 국민의 성금 등이 모여 어렵게 장만한 함이었다.

 
                                          하와이에서 포탑을 장착하는 PC-701함
 

사실 함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미 해군에서 퇴역하여 해양대학의 실습선으로 활용하던 구현 선박에 3인치 포를 장착한 450톤 규모의 소형 함정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을 가로질러 태극기를 게양한 백두산함이 1950년 4월 10일 모항인 진해에 입항하였을 때 국민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만큼 한국 해군에게 귀중한 전투함이었다.
바로 이러한 한국 해군의 자랑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것이었다.

 
                                                      작전 중인 백두산함
 

진해기지를 출항한 백두산함은 25일 18시경, 급속히 남하하던 미확인 괴선박을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는데 이 괴선박이 약 600명의 무장병력을 탑승시킨 북한의 1,000톤급 수송선임을 알게 되었다.
백두산함은 유리한 위치에서 교전을 벌이고자 일단 현장에서 이탈한 후 통제부의 명령을 받아 26일 0시 10분경 다시 근접 접근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이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이 전투 결과 아군은 전사와 부상이 각각 2명인 피해를 입었지만 적선을 격파하여 침몰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대한해협전투 상황도
 

전사에는 이를 대한해협전투라고 표기하는데 그 의의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북한 무장선의 임무는 부산항 점거를 위해 북한군을 상륙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유일 생명선이 조기에 차단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백두산함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한 것이었다.
 

                                           전쟁 직전 촬영된 백두산함의 장병들
 

이처럼 개전 초에 압도적인 적에게 밀려 고전을 거듭하였던 지상의 상황과 달리 대한민국 해군은 서전부터 상당한 전과를 올렸고 그것은 암울했던 시기에 어둠을 밝혀준 횃불과 같았다.
비록 최근에 발생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이처럼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대한민국의 보루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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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의 대한민국으로 전환 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 말로 조정하기에 합의하였으며, 금년 SCM(10.8)까지 새로운 전환계획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전작권 전환 시기 조정'은,
지난해 5월 2차 북핵실험 등 한반도 안보상황이 매우 불안정하고, 2012년은 역내 각 국의 지도부 교체 등 정치 및 안보적으로 유동성이 높으며,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50% 이상이 안보불안을 이유로 전작권 시기의 연기를 원하고 있는 등에 따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작권 전환시기가 2015년으로 조정된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2015년에는 전시 임무수행을 위한 필수전력이 구비됩니다.
     →
C4I체계 개발 및 성능 개선, 공중전력 및 對화력전 수행능력 등이 보강됩니다.

2)  한국군의 지휘구조가 완성됩니다.

      지상작전사령부 창설로 안정적 지휘구조가 마련되며, 연합연습을 통해 운용능력이 완성됩니다.

3)  2015년에는 한-미 연합작전 환경이 더욱 개선됩니다.
      → 2015년에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완료되며, 지휘구조를 위한 시설과 C4I체계 완전 가동 상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4)  2015년은, 한미양국 공히 선거일정 등이 없어 정치적으로 안정되는 시기입니다. 
   
  → 기존 전환 시기인 2012년은 한국의 총선과 대선, 미국과 러시아의 대선 및 중국의 주석 교체 등이 있어 전략환경상 전작권 전환시기로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입니다.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과 관련, 최근 우려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1)  '추가 부담(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분담액 증가 등은 없으며, 오히려 비용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됩니다.


2)  '군사주권'의 문제는?
      작전통제권의 본질은, 국익 보호와 전시 군사력 운용의 효율성 문제이지, 주권의 문제는 아닙니다. 참고로, NATO의 경우도 회원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자국의 결정에 따라 작전통제권을 미군 장성인 NATO사령관에게 위임합니다. 

3)  일부언론의 '밀실 합의'라는 주장에 대한 입장
      한미 양국간에 최종 합의내용이 결정되기까지 보안을 유지하였던 것은, 양국 협의간 안보 관련 중대 민감사안을 공개할 경우에는 국론 분열 및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청와대와 국방부간 전작권 전환시기 관련 이견'이 있다?
      민간언론의 보도 뉘앙스 차이가 확대 해석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작권 전환 합의는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라 하겠으나, 우리 군은 2012년을 목표로 지금껏 충실한 준비를 해왔으며 현재도 연합방위를 주도할 기본운용능력(IOC) 을 구비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C4I, 합동화력운용체계 등을 보완할 경우 보다 안정적으로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78년 연합사로의 작통권 전환과 '94년 한국 합참으로 평시작통권 전환 및 '07년 전시작통권 전환 합의 등도 국무회의 심의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

6)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 발표가 '정국 타개 방편'이라는 시각은?
      전작권 전환시기의 적정성 평가 및 보완 문제는, 현 정부 출범시부터 국정과제로 선정되어 검토되어 왔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과 직접 연관은 없으나 이 사건으로 전작권 전환시기의 조정을 검토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은 사실입니다.

7)  전작권 전환 시기의 재연기 가능성은?
      정부와 군은 2015년 말을 전작권 전환의 최종시한으로 설정하여 전 역량을 기울여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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