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국방'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10.07.01 연평해전 고(故) 윤영하 소령을 추모하는 '송도고등학교' (2)
  2. 2010.06.30 제2연평해전을 기념하며 - "승리를 남기고 떠난 전우여!"
  3. 2010.06.29 동해안에 기록된, 6.25전쟁 남침의 증거
  4. 2010.06.28 6.25 전우여! 고맙습니다.("Thank you, brothers!") (2)
  5. 2010.06.25 월드컵보다 뜨거운 '한-터키 군인 축구'! (2)
  6. 2010.06.21 '제9회 6.25전쟁 귀환 국군용사 초청행사'에 참석하여. (2)
  7. 2010.06.17 군 복무의 모범, 엘비스 프레슬리
  8. 2010.06.16 '경계에서'- 6.25 특별사진전! (6.25~/서울 대림미술관)
  9. 2010.06.15 6.25의 전우, 에티오피아
  10. 2010.06.11 적의 침투도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1)
  11. 2010.06.11 밀리터리 파워블로거-'국방부 워크숍' 갔다. (10)
  12. 2010.06.09 트위터리안, 파워블로거... 드디어 국방부 상륙! (2)
  13. 2010.06.09 '오쉬노 부대' 창설 (아프간 재건 지원) (2)
  14. 2010.06.04 이젠, 무기도 녹색이다.
  15. 2010.06.03 北, 연어급 잠수정 없다?
  16. 2010.06.01 北의 천안함 주장, 과연 맞는가? (1)
  17. 2010.05.27 결코 작지않았던 커다란 은혜 (6.25 참전국)
  18. 2010.05.25 영화로 만나는 6.25 전쟁
  19. 2010.05.24 천안함 사태 관련 軍의 對北조치를 말씀드립니다.
  20. 2010.05.20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말씀드립니다.
  21. 2010.05.19 '국방개혁'을 논하다
  22. 2010.05.18 축구전쟁(Soccer War) [下]
  23. 2010.05.17 '아! 6.25' - 전쟁기념관 특별기획전(5.4~11.30)
  24. 2010.05.14 축구전쟁(Soccer War) [ 上 ]
  25. 2010.05.13 "경계에서(On the Line) - 6.25 전쟁 60주년 사진전"
  26. 2010.05.12 전장스트레스 관리, 그 중요성에 관하여
  27. 2010.05.11 냉전의 시작을 알린 소련 전차 (2)
  28. 2010.05.10 천안함 침몰 원인조사와 관련 협조를 바랍니다.
  29. 2010.05.07 단비부대 파병, 70일간의 일기 (13)
  30. 2010.05.06 나도, '안중근'처럼!


            송도고등학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지난 6월 29일은 6인의 전사자가 발생한 제2연평해전 발발 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해군주관으로 지내오던 추모식이 지난 2008년부터 정부주관 공식행사로 바뀌었고 특히 올해는 서울의 전쟁기념관에서 TV생중계 속에 성대히 개최되었다.
더불어 그동안 부대 내에 있어서 평소 국민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참수리 357호의 동일 크기의 모형이 함께 전시되어 제2연평해전의 의의와 장병들의 활약상을 쉽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8주년 행사
 

이와 관련하여 하루 전인 6월 28일, 인천 옥련동에 위치한 송도(松都)고등학교에서 작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교내 행사가 벌어졌는데, 이 학교의 72회 졸업생으로 전투 중 산화한 참수리 357호의 정장 고(故) 윤영하 소령의 추모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는 단발적인 1회성 추모제가 아닌 제2연평해전 다음해인 2003년부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벌여오는 연례행사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의미 있는 교내행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대담 기원서 교감선생님 )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린 고 윤영하 소령 추모행사
 

문)
  매년 교내 추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2002년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당시 여섯 명이나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너무 쉽게 잊혀져가는 것 같아 상당히 안타까웠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선배가 산화한 우리 학교의 학생만이라도 이를 기억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 이듬해부터 6월 29일을 기해 추모행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인양되는 참수리 357정
 

문)
  외부의 참여나 지원이 있었습니까?
답)  아닙니다. 순수하게 학교가 주관하는 자체 행사였고 경우에 따라 손님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치르고는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2009년)에는 영하의 흉상 제막행사를 함께 하였는데 영하 부모님을 초청하였습니다.
 
문)  고 윤영하 소령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요?
답)  우리학교는 사립이다 보니 영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학교 다닐 때 영하가 워낙 과묵하여 군인이 될 줄을 몰랐는데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 약 3주전에 영하가 학교를 찾아 온 적이 있었어요. 스승의 날에 출동 중이어서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때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2009년 교내에 설치된 고 윤영하 소령 흉상
 

문)
  고 윤영하 소령 때문에 학교와 해군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답)  예. 우선 영하의 해군사관학교 동기 분들이 매년 우리 학교에 윤영하 장학금을 기탁하여 주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리고 제2함대 소속의 제천함과 자매결연을 맺어 매년 방문  행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안보교육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문)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답)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우리나라는 안보에서 한시도 눈을 팔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신문보도에서 보듯이 요즘 청소년들 중 6.25전쟁의 발발일은 고사하고 어떤 전쟁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사실을 정확히 알게끔 더욱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학교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송도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앰블램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에서 1906년에 개교하여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송도고등학교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에 인천으로 피난하여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다보니 6.25전쟁에 대한 의미가 상당히 남다를 수밖에 없어 전쟁 발발일과 제2연평해전이 속한 6월 마지막 주를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추모주간으로 정하여 매년 이와 관련한 각종 교내행사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추모 행사 중의 송도고등학교 학생들
 

송도고등학교는 특히 농구부가 유명한데 이충희, 김승현, 유희형, 김동광, 정덕화, 강동희 등 한국 농구사의 기라성들이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농구부보다 정, 관, 군, 학계를 빛낸 이 학교 출신의 많은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학교이고 당연히 학교를 빛낸 수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되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젊은 졸업생이라 할 수 있는 고 윤영하 소령을 기리는 행사를 매년 잊지 않고 열어오고 또한 이를 교육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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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10시, 제2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이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제2연평해전'은, 붉은 악마들이 '2002 월드컵'으로 기쁜 함성을 외치던 그날, 우리해군이 북한의 기습공격으로부터 이나라를 지켜낸 해전입니다.




행사에는 연평해전 전사자 유족과 전상자, 각부처 주요인사,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2,5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제2연평해전 기념식은. 해군에서 개최되던 것을 2008년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격상시켜 개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전 국민의 행사로 개최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이번 행사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전상자들의 나라를 위한 숭고한 헌신과 공훈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여 '나라사랑 정신'의 원동력을 삼고자 학생 500여 명이 초청되었습니다.

6월 29일 기념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전쟁기념관은, 제2연평해전 교전 당시의 총탄 자국과 신체 굴곡 등이 원형과 동일한 '참수리 357정'의 모형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정' 모형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승리를 남기고 떠난 전우들를 기려,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에 전사한 전우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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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안 기록된 남침증거
 

 
흔히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38선 일대의 모든 북한군부대에 '폭풍'이라는 남침 암호가 하달되면서 04시에 일제히 포격을 개시하면서 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모든 남침 준비를 완료한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개시한 시간이 04시였고 이것은 6.25전쟁 발발의 개시 시간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군이 38선 이남으로 월경하여 도발을 개시한 것을 전쟁 개시시점으로 본다면 실제로 전쟁은 그보다 1시간 앞선 03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새벽 4시에 북한군의 포격이 개시되면서 6.25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비록 38선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북한군 일부가 6월 25일 03시에 38선을 넘어 이미 남침을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6.25전쟁 당시 상륙작전하면 인천상륙작전을 먼저 떠올리고 전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통영상륙작전, 원산상륙작전 등도 생각이 날 것이다.전쟁 중 상륙작전의 대부분은 위에 언급한 예처럼 제해권을 확보한 유엔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막연한 상상과 달리 6.25전쟁 중 최초로 벌어진 상륙작전은 북한군이 시도 하였는데, 이것은 전쟁 개시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주장하는 6.25전쟁 북침설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북한군의 동해안 상륙과 강릉전투 상황도
 

1950년 6월 25일 03시 북한군 제766부대(최근 개봉한 영화  '포화 속으로' 에서 차승원이 지휘관으로 나온 부대)가 동해안의 임원진으로 그리고 제945부대(오래동안 제549부대로 알려졌었다)가 인근의 정동진으로 기습 상륙하였다. 그리고 기록을 살펴보면 북한 스스로도 이것은 성공적인 기습작전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03시에 동해안에 상륙한 북한군은 연대규모의 경무장부대들로 해당 지역에 상륙한 후 현지에서 암약하던 공비 세력과 연결하여 국군을 분리하고 고립시키는 임무에 투입되었다.당시에 동해안을 담당하던 국군 제8사단은 38선 일대의 주문진에 제10연대, 강릉에는 사단사령부를 그리고 후방인 삼척에 제21연대를 배치해 놓고 있었는데 북한군이 중간에 상륙하여 제8사단의 연결을 끓고 제10연대와 사단사령부의 배후를 차단하였다. 따라서 국군 제8사단은 개전 첫날 38선을 돌파하여 남진하는 북한군 주력과 배후를 압박하던 이들 상륙부대에 의해 순식간 고립된 형국이었다.

 
                      영화 '포화 속으로'에 묘사된 북한군 제766부대
 

다행히도 국군 제8사단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전면의 적을 막고 대관령쪽 퇴로를 확보하여 무사히 철수를 단행할 수 있었고 이것은 6.25전쟁사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벌어진 바로 이러한 숨막히는 개전 초기의 상황에서 중요한 의의를 그동안 많이 간과하였다.
우선 03시에 북한군 정규군이 동해안에 상륙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38선 일대에 포격을 날리기 이전에 그들의 정규군을 우리 후방으로 침투시켜 도발을 감행했고 그렇다면 6.25전쟁 개시시간을 03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03시에 전쟁이 벌어졌음을 기록한 남침사적비
 

이것은 또한 6.25전쟁을 지금까지도 북침이라 왜곡 선전하는 북한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개전 당일 국군 후방으로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다는 자체가 벌써 북한군의 남침을 입증한다.
상륙작전은 규모의 대소 여부를 떠나서 사전에 충분한 사전준비를 마친 후에나 실시할 수 있는 군사작전이기 때문이다.
도발을 받자마자 즉각 반격하여 상대의 배후로 연대규모의 부대가 상륙을 펼친다는 자체가 우선 말이 되지 않는다.

 
         사전 준비가 필요한 상륙작전은 즉시 반격에 사용할 수 없는 군사작전이다.



비교적 소규모였던 통영상륙작전 당시의 해병대도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북침설은 개전 당일 동해안에서 벌어진 상륙작전만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거짓임이 여실히 입증된다. 1950년 6월 25일 03시 동해안에서 벌어진 북한의 기습상륙작전은 개전 시기에 대하여 한 번 정도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남침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적극 활용될만한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제8사단 강릉전투 승전비
 

그런데 야심만만하게 후방에 상륙한 북한군 부대는 이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비록 전쟁 발발 당일 동해안 국군 제8사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지만 방어에 나선 민관군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전사에 일일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무명 사병들과 민초들의 노력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주역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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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1950년 발발하였던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울 전쟁기념관에서는 금년 6월 25일 훨씬 이전부터 6.25 희생용사에 대한 추모와 참전국에의 감사를 위한 각종 전시와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1월 30일까지 전시되는 전쟁기념관 6.25 특별사진전


                            6.25 전쟁시 배고픈 아이들 - 전쟁기념관 정원에 전시된 사진들

                                                            전쟁기념관 내 '호국추모실'

                              호국추모실 내 조형물 '겨레의 얼'(천장에서 희망의 빛이 비추고 있다.)                    


6월 25일 정오에는, 이곳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UN 6.25 참전국 용사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행사에는 한미 군지휘부(대한민국 국방장관, 합참의장, 주한미군사령관, 미 8군사령관) 등 90여명이 참석, 전쟁기념관내 참전 21개국 전사자명비에 헌화와 묵념을 하였습니다.


                         먼 땅에서 와 우리를 위해 희생해준 6.25 전우들에게 국화를 헌화하였습니다..



이어, 전쟁기념관 중앙로비로 이동하여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주먹밥과 감자, 고구마는 6ㆍ25 전쟁 당시 군인과 피란민이 주로 먹던 식량이라고 합니다. 



                                                  6.25 참전용사에게 감사편지 쓰기 행사  


                                                                   6.25 당시 전투식량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


6·25전쟁 당시에는, 물자가 귀해 그릇 대신 탄 상자에 주먹밥을 담아 지게로 날랐으며, 포탄 탄피에 된장국을 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6.25 당시에는 밤샘 전투를 벌이는 동안 고작 주먹밥 한 개가 지급되었는데, 전사자가 발생하게 되면 소ㆍ중대마다 5~6개의 주먹밥이 남곤하였습니다. 또 한겨울에는 얼어붙은 보리주먹밥을 먹기도 하였답니다.

금년 6월25일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는 1950년 6.25 당시 한국군의 열악했던 보급상황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요, 그 외에 나물국과 쑥개떡 등도 전시되었으며, 오늘날 한국군과 미군의 전투식량도 선을 보였답니다.


                                            UN 참전국 추모행사에 참석한 한미 군 지휘부 




이날 행사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주먹밥을 시식한 뒤 “60년 전 우리나라가 숨이 넘어갈 정도의 국난에 직면하였을 때 우리를 도와주려고 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왔었습니다. 그러한 지원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과거 60년 전을 생각하며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은 “테이블 접시에 놓은 주먹밥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성찬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이 경제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며, 북한의 지도부는 도발행위를 계속한다면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 다양한 6.25 기념행사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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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국군용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귀환 국군용사'란 1994년 이후 귀환한 6.25전쟁 국군포로들 말합니다.

6.25전쟁 관련 국군 실종자는, 정전 당시 유엔군의 추정 수치로는 8만 2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나, 최종 송환된 국군포로의 수는 8천여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다수의 미송환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으셨던 미국, 그리스,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들과 가족


6.25전쟁 국군포로 관련하여, 국방부는 1994년 10월 최초로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중위의 귀환 이래 이들 국군포로와 가족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미 귀환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분들을 돌봐드리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정기적으로 귀환 국군용사의 가정을 방문드리기도 하며 각종 간담회를 개최,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답니다. 

6.25 전쟁 60주년인 올해 5월31일~6월1일에는 국방부 주최로 1박2일간의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를 개최하여, 귀환 국군용사간 친분을 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으며 각종 애로 및 건의사항들을 국방부에 제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 현장으로 떠나보실까요?

때는 5월31일 오전, 행사 참석자들은 국방부와 대전을 각각 출발하여 '국방과학연구소'에 집합하셨습니다. 이곳에 모이신 참석자들은 우선 대한민국 최신 무기체계를 관람하셨는데요, 금강산도 식후경, 물론 점심식사 이후의 일이었지요.^^ 



국군용사들과 가족들이 식사하시는 모습-'국방과학연구소'에서

            

초청행사의 시작 -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다음의 순서로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동, 참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천안함 희생 장병들이 잠든 곳에 참배하고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의 천안함 희생장병 참배

                         


참배 후 방명록을 작성하시는 모습

                    

 

국립대전현충원내 천안함 희생장병들이 잠든 곳

                        

 

천안함 희생장병의 비석에 씌인 글귀를 보시는 귀국 국군용사의 모습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중인 6・25 전쟁 사진전시회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귀국 국군용사분들의 대화가 부쩍 늘어나시더군요. 옛 생각이 나신 것이겠지요..



6・25 전쟁 사진전을 관람하시는 귀국 국군용사들

                       


 

6・25 전쟁당시 사용된 물품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참배와 관람을 마친 후에는, 간담회 및 만찬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진행간에는 최근  국방부 추진 국군포로 정책에 대하여 설명을 드렸으며 건의사항 청취의 시간도 가졌답니다.

 


현충원 참배 후 간담회 모습

                                     

 

국방부와 군에 건의사항을 말씀하시는 귀환 국군용사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는, 귀환 국군용사들의 애로사항들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던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참석하신 국군용사들은, 밤이 늦도록 오랜시간 쌓아두셨던 회포를 푸시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시기도 하였습니다.

행사 2일차 오전, 참석자들은 연세대학교 이호선 교수님의 「노년기 건강관리와 부부생활」 강의를 들으신 후 청남대를 관람하셨습니다. 전날의 간담회가 귀환용사들의 특수성에 초점이 맞춰진 행사였다면, 행사 2일차에는 일반적 노년의 생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강의로 행사를 구성하였습니다.


노년의 건강과 부부생활에 대한 강의

                              

  강의청취후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계룡스파텔에서 1시간 거리의 청남대로 향하였습니다.



귀환 국군용사들의 청남대 관람

                                 

 

 청남대는,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에 건설된 대통령 별장입니다. 이곳은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 라는 뜻으로 역대 대통령의 명절휴가・여름휴가시 이용되어왔다고 하는데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충청북도로 이관되어 최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남대 관광을 끝으로 '제9회 귀환용사 초청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금번 행사를 계기로 처음 귀환 국군용사들을 만나뵌 저는, 그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워 시간가는 줄을 몰랐답니다. 그분들은 주로 북한 탄광촌 일을 하시다가 탈북하여 어렵게 한국에 오신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국가에서는 물론 이분들을 예우하고는 있으나, 이미 나이도 많으시고 또한 북한에 두고온 가족 걱정으로 한국에서도 마냥 편하게 지내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번 초청행사는 제게 60년전 6・25전쟁이 남긴 상처가 과연 어떤 것이었는 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 60 주년을 맞은 2010년, 우리국민 모두는 6.25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치르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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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길을 자원한 황제
 
 

2002년 8월 13일자 미국의 금융전문지인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한 인물이 2001년 6월부터 2002년 6월까지 1년간 보통사람은 꿈에도 꾸기 힘든 총 3,700만 달러에 달하는 소득을 올린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로 고소득을 올린사람은 이미 고인이 된지 25년이 넘었던 사람이었다.

 
                                               세계적인 금융전문지인 포브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물차 운전수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연예기획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스무 살이 되던 1955년 연예계에 데뷔하게 되었고 잘 생긴 외모와 훌륭한 가창력 그리고 탁월한 무대매너 덕분에 순식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젊은이는 순식간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연예계에서 이름을 막 휘날리며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던 1957년, 그는 국가로부터 징집영장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징병제였고 징집을 당한이상 병역의무를 반드시 이행하여야 했다.
그런데 군 복무기간 동안 공백기는 자칫하면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에게 여러 가지 좋은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신체검사를 받는 모습
 

마침 이때 그의 대중적인 상품성을 알고 있던 군 당국이 군의 이미지제고를 위한 예술특별부대에 그를 배속하여 주겠다는 제안을 하여왔다.
만일 그가 이런 부대에서 근무를 한다면 계속하여 대중과 접촉할 수 있어서 인기유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군의 이러한 특별한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는 특별한 제안을 거부하고 여타 국민들과 똑같이 의무를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보통의 여타 다른 국민들과 차별이 되는 어떠한 대우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느 사병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훈련받고 미군의 근무규정에 따라 병역활동을 하기를 원하였으므로 군의 특별 제안을 거부하였던 것이고 그의 뜻대로 훈련소에 입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극히 평범한 군 생활을 시작하였다.

 
                                        자대 배치를 받은 서독에 도착하였을 당시
 

1958년 신병 훈련을 마치고 그가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서독의 한 미군기지였는데, 서독은 전쟁이 막 끝난 한국과 더불어 가장 첨예하게 공산진영과 대립하던 냉전시대의 최전선이었다.
즉, 미군으로써 가장 기피지역 중 한곳에 배속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 미 육군 공문에는 '그를 우러르는 많은 청소년들이 훗날 군 생활에서도 그를 본받을 것' 이라고 기록되었다.
 

                                      서독의 제1기갑사단에서 소총병으로 근무 중
 

그의 극히 평범한 군 복무는 그를 추앙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병역의무의 신성함과 고귀함을 알게 해 주었다.
그에게 편안한 군 생활을 제안하는 대신 선전도구로 활용하고자 하였던 군은 오히려 어떠한 특혜도 마다않고 묵묵히 군무에 임하였던 그의 모습 때문에 역설적으로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의 커다란 선전효과를 얻게 된 셈이었다.
 

                     어깨 위의 견장을 자랑스러워하였던 그를 대중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과는 별개로 타고난 바람기와 인기는 어쩔 수 없었던지 서독에서 군복무 중일 때 미성년자였던 한 미소녀와 염문을 뿌려 세인들의 가십거리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소녀는 피 끓는 젊은이의 1회성 사랑이나 지나가는 바람의 대상이 아니었고 이후 황제의 부인이 됨으로써 사랑에도 책임을 다하는(?) 멋있는 모습을 전 세계 팬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인물이 바로 로큰롤의 황제인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ron Presley 1935~1977)다.

 
                             멋진 모습으로 군복무를 수행중인 엘비스 프레슬리
 


병역 비리사건이 터지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이 종종 연루되어 실망시키고는 하였지만, 최근에는 위에 소개한 엘비스 프레슬리 못지않게 많은 우리의 젊은 연예인들이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일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병과에서 자진하여 근무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 주어 팬들을 기쁘게 만들고 있다.
부여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도 제대 후 계속하여 인기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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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의 용맹한 사자들

 
 
조금 오래전인 2007년 3월 7일, 강원도 춘천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다.
에티오피아(Ethiopia) 한국전 참전 기념관의 개관식이었는데, 참전 당시 에티오피아군의 활약상은 물론 현재 에티오피아의 물산 등을 상설 전시하는 복합공간이다.
의외지만 6.25전쟁에 참전한 UN군 국가의 기념관 중 이런 형식의 다목적 복합공간은 이것이 최초라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개관행사 당시
 

현재 지구상에 있는 200여 국가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로 손꼽히는 곳이 에티오피아다.
따라서 기아와 빈곤 타파를 위해 많은 비정부 구호단체들이 활동을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세상사가 흥망성쇠를 겪듯이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만 3,000년이 넘는 에티오피아가 처음부터 못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우위에 있어 6.25전쟁 당시에는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를 도와준 국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세계 최고(最古) 교회 중 하나인 베트 지요르기스 교회 유적지
 

만세일계(萬世一係)를 자랑할 만큼 역사가 깊은 독립 국가였지만 에티오피아는 제2차 대전 직전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고초를 겪은 역사가 있었다.
당시 집권층에게 망명지를 제공하고 침략자 이탈리아군을 격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영국의 영향으로 전후, 적극적인 친서방주의 정책을 취한 셀라시에(Haile Selassie 1892~1975) 황제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파병을 결정하였다.

 
                                 파병을 주도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아마도 잠시나마 국권을 잃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는지, 그는 동서냉전시기가 도래하자 어느 한편에 확실히 가담하여야 차후에도 국가의 주권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전격적으로 파병이 결정되었는데, 1950년 8월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황실근위를 담당하던 10개 대대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 중에서 자원자들을 차출하여 1개 대대규모의 신편 파병부대를 창설하였다.

 
                          파병 직전 카그뉴대대를 사열하는 셀라시에 황제
 

이 부대는 카그뉴(Kagnew) 대대라고 명명되었는데, 황실근위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였으나 사실 현대적 교리에 따른 대대급 전술훈련 경험도 없었던 전근대적인 군대였다.
하지만 파견 나온 영국군 교관의 지도하에 강도 높은 전투훈련을 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용맹스러운 군대로 탈바꿈을 하였고, 1951년 5월 6일 파견사령관 게브레(Kebbede Guebre) 대령의 지휘 하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모자에 국기가 선명한 부산도착 직후의 모습
 

카그뉴대대는 부대정비 후 7월 11일, 가평으로 이동하여 종전 시까지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전하였다.
여타 UN군에 비교한다면 부대편성 및 교육훈련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비록 참전은 늦은 편이었지만, 1951년 9월 적근산전투를 필두로 1952년 10월 김화고지전투, 1953년 5월 요크, 엉클고지전투 등에 연이어 참가하면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용맹한 아프리카 사자들인 카그뉴대대의 전투 모습
 

이들이 전투를 벌인 곳은 오늘날 에티오피아군 참전비와 최근 건립된 기념관이 있는 춘천 일대의 중동부전선 일대였는데, 고원지대 출신들답게 고지전에서 탁월한 전과를 벌여서 용맹한 아프리카의 사자들답게 한번 피탈된 고지는 반드시 탈환하는 괴력을 선보였고 종전 시까지 적에게 포로가 된 에티오피아군 병사가 한명도 없다는 무서운 신화를 창조하였다.

 
           아프리카의 용맹한 사자들은 민사작전을 벌일 때 순한양들로 돌변하였다
                       ( 에티오피아군이 설립한 고아 보호시설인 보화원 )
 

연인원 총 3,518명이 이역만리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 120명, 부상 536명 등의 피해를 당한 에티오피아군은 1965년까지 순차적으로 철군하였다.
엘리트 집단인 황실근위대원이자 파병경력 때문에 병사들은 귀국하여 영웅대접을 받았으나, 1974년 멩기스투(Mengistu Haile Mariam 1937~)가 이끄는 쿠데타세력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후 단지 북한과 싸우는데 이들이 자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핍박을 받기도 하였다.

 
                                       전적지를 방문한 참전용사들
 

사회주의 정권의 탄압으로 탄압을 받은 6.25전쟁 참전 용사들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한국촌(Korea Village)을 형성하여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최근 한국 구호단체의 참여로 참전용사 및 그 후손들에 대하여 지원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되고 우리가 어려울 때 목숨을 주었던 그분들에게 더욱 많은 도움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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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제가, 좋아하는 '황현님(악랄가츠)과 국방부대변인'입니다.  그들은 왜 만났을까요??
(저의 절친 가츠님, 초상권 침해 아니죠~잉? 원에 의해 찍으셨잖아요. ^^)


'국방부-파워블로거 워크숍' 후 한 컷!


 
6월 5일 토요일, 국방부 브리핑룸입니다.   TV에서 많이 보셨던... 


'국방부-밀리터리 파워블로거 워크숍' 참석자들(먼저 가신분들도 계시네요.)

       

짜자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유진우님(퍼싱의 전쟁영화 이야기), 김홍익님(도라공의 블로그), 박창범님(아침안개의 블로그) 등 밀리터리분야 파워블로거 17명, 자주국방네트워크분들, 국방부 대변인,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 국방부 국방운영개혁관, 합조단 대변인은 바쁘신 관계로 워크숍 후 사진찍기 시간에는 안계셨네요~


오신분들께 감사와 이번 워크숍의 취지를 말씀드리는 국방부 대변인

             

금번 워크숍은, 국방개혁 관련 전력개편방향에 대하여 밀리터리분야의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추신 파워블로거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추가로 최근 온라인 상에서 각종 의혹 가운데 있는 천안함 사건의 의혹들을 해소할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신분들, 파워블로거들인 만큼 카메라 하나 이상씩은 지참이십니다.^^


TV와 온라인 상에서 많이 만나신 '민군합동조사단 대변인'의 천안함 사고원인 설명

          


금번 워크숍을 기획하신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

                          

파워블로거들과의 만남이 기쁘신지, 노래를 하시는 건가요? ㅎㅎ


국방부 국방운영개혁관

                                           

그리고, '국방개혁'에 관해 국방부 국방운영개혁관과 파워블로거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질문과 답변들.....  파워블로거님들, 역시 내공이 대단하시더군요!

어떤 질문과 답변들이 오고갔을까요?

국방운영개혁관 : "24개월 복무기간의 단축 등 빈 자리를 무엇으로 매꾸어야할 지.. 국방은 고민이 많습니다. 새로운 무기체계로 대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 하였으나, 여러가지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아침안개'님 : "제가보기에 현재의 국방개혁2020은 '동원체제'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는 듯 합니다. 현재의 동원체제를 가칭 'shadow system(이건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만..)' 으로 개편하면 어떨까요? '정밀보충대대'를 보완하는 것입니다...." 등등등...



유진우(퍼싱)님의 진지한 질문...

                                   

퍼싱님도 한말씀 하시더군요... 모처럼 진지한 모습(?). 워크숍 내내 국방부 브리핑룸 사방을 두루 다니시며 두개의 사진기로 마구 찍어대시더군요. 사진찍으시다가 제 카메라를 보시고는 "이건 너무 후진 것"이라 하시면서~ ㅋㅋ    호기심 왕자셨습니다.^^

국방부 대변인의 말씀을 제가 대신 전해드리며, 마쳐야겠네요.

 " 밀리터리 파워블로거님들의 군에 대한 포용과 관심을 부탁드리며, 앞으로 더욱, 군을 개방적으로 만들어 주시고, 또한 '국방정책'에 대한 견제의 역할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국민들께서 혹시 잘못알고 계신 것들이 있으시면 이에 대해 제대로 전해주시기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워크숍에 참석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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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천안함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6월초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국방부는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6월8일 국방부는 대학신문기자, 파워블로거, 트위터이용자들을 국방부 대회의실로 초청하였습니다.

바로, 여기 이분들을요.


국방부 대회의실

                                        

아시는 분들도 계시다고요?  맞습니다.^^  유명하신 밀리터리 파워블로거님들이 몇분 계시지요?
합조단에서는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요, 오신 분들께서는 워낙에 자유분방들 하셔서 ^^, 아랑곳 않고 취재에 열중하고 계시는군요. 물론, 처음부터 그 모든것이 가능하다고는 말씀드렸답니다. 


국방부 대회의실에 오신 트위터리안과 대학생기자들



트위터리안과 대학생기자들입니다. 대회의실 저- 뒤쪽으로 천안함으로 유명해지신 국방부 대변인이 완전 소외되어 앉아계십니다. ㅋㅋㅋ.. 국방부 공무원들의 공식 회의석상이었다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 자유로운 분위기였죠. 하지만, 오신분들의 열렬한 관심과 오고가는 대화들이 저희 국방에게는 너무도 감사하였답니다.   




민군합동조사단 대변인은, 말하자면 '장군'이시지요. 군에서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 하지만, 오신분들은? 말씀 듣고싶은 사람은 듣고, 사진 찍고싶은 사람은 찍고 하시더군요~ 그 광경이 한편으로는 흥미로웠고, 그들의 능동적인 모습에 감동도 받게 되더군요~   



   
대회의실 정책설명회 시간. 그중에서도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역쉬!

질의, 응답이 진행중이나 그와 상관없이, 강당 앞쪽으로 자유롭게 나오셔서 어뢰 사진을 찍고 계시지요? ^^  '1인 미디어 시대'라는 말이 실감이 났답니다. 

오전 국방부 대회의실에서의 정책설명회가 끝나고, '제2부'로 참석자들 모두함께 국방부 버스를 타고 평택 2함대사령부로 '천안함 절단면'을 보러 갔었답니다.  국방부도 해군도 천안함 사건 관련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평택 2함대사령부내 천안함 선체 앞에서

                                

위의 사진은 2함대사령부입니다. 천안함을 뒤로하고, 열심히 천안함 함체에 대해 설명하시는 장군님. 오신분들은 장군님 찍고 천안함 찍고 하시느라 보시는 바와 같이 무척 바쁘셨습니다. 질문도 수도 없이 하셨지요...^^


천안함 절단면을 보기전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



아참, 질문 내용이 무엇이었냐고요? " 혹자는, 천안함 사고 원인이 어뢰가 아니고, 좌초 후에 또 무슨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결과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물기둥의 물방울이 병사의 얼굴에 튀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등등 주로 저희 국방부와 군도 트위터와 인터넷 등에서 많이 접하였던 질문들이었습니다. 합조단과 해군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사건의 원인이 북한어뢰임을 다시한번 명백히 설명드렸답니다.




오신분들 모두, 해군 제독의 설명을 경청하시면서 천안함 절단면을 보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과 함께 사진촬영 등에 몰두하셨지요. 요- 앞에 계신분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트윗과 리트윗을 하고 계셨죠.

천안함 절단면 공개 후, 추가적인 천안함 관련 질의와 응답 시간을 가졌고 초청의 시간을 모두 마쳤답니다.

오늘 오신분들과는 천안함에 대한 '의혹'속에 만났지만... 헤어짐의 시간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저희 국방부와 군은, 방문해 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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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1일 아프간 재건 지원을 위한 '오쉬노(Ashena) 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창설식은 육군 특전사 특수임무단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아프간 재건지원단장과 육군참모총장



상징명칭인 '오쉬노'는, 아프간 현지어인 다리어로 '친구' 또는 '동료'의 의미를 가지며, 오쉬노 부대 파병은 부대단위 해외파병으로는 레바논 동명부대, 소말리아 청해부대, 아이티 단비부대에 이어 4번째입니다.

재건지원단원들은, 특전사를 모체로 항공, 통신, 정비, 보급,의무 등 평균 9.6대1의 경쟁을 뚫고 320명의 장병(특전사 여군 3명 포함)으로 선발, 구성되었으며, 이중 특전사 126명은 PRT요원들에 대한 직접적 보호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아프간 재건지원단 창설식



아프간 PRT는 아프간 주정부의 행정역량을 배양하고 안정화와 재건 지원을 하는 민,군 통합조직으로서, 현지인들에게 보건/의료지원과 함께 농촌개발, 교육/직업 훈련, 각종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지원을 합니다. 우리 아프간 재건지원단은, 이들의 활동이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PRT 주둔지 경계와 PRT요원의 외부활동 경호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아프간에서 의료활동을 벌였던 동의부대원의 모습



주둔지인 파르완은, 주민 대부분이 탈레반에 적대적이며 아프가니스탄 34개 주 중 가장 안전한 지역중 하나라고 합니다. 해당지역에는 미 공군 기지가 위치하여 미군의 신속한 지원도 가능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에는 대학과 병원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더욱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둔지인 아프간 파르완주

 

아프간 재건지원단 창설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세계평화의 도전세력에 대한 척결에  동참한다는 의의를 갖습니다.

대한민국의 아프간 파병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6.25전쟁때 유엔의 지원을 받은 수혜국으로서 마땅한 보답을 하는 것이며 유사시 우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아프간 파병은 글로벌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한국군의 실전경험을 축적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프간 재건지원단장 임명



아래는 오쉬노 부대의 '부대기' 이미지입니다. 하늘색 바탕은 평화와 안정을 나타내며 태극/방패 문양은 대한민국과 재건을 위한 방호의지를, 월계수는 아프간 평화와 재건의 희망/번영을 상징합니다.


아세나 부대의 '부대기' 이미지


 
오쉬노 부대는 4월 5일부터 임무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왔으며, 6월 중순 선발대를 파병, 7월 초 본대가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날 예정입니다.


늠름한 대한민국 아세나 부대원들



우리 오쉬노 부대원들,  많이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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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8월 15일 '저탄소 녹색성장'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선포된 이래, 우리사회 전반에는 '저탄소녹색성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LED전등을 사용하는 GOP

                       

국방도 이러한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걸맞게 국방녹색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녹색기술을 활용해 석유 고갈 등 미래 에너지 안보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나아가 미래 녹색 방산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방위산업을 신경제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녹색국방기술 : 무인기체계의 핵심기술인 초소형 터보제트엔진( MTJ-150 )을 개발하였다.

 

그럼 지금부터 국방녹색기술 중에서 무기개발과 관련해 국내외에서 연구 중인 신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녹색 신무기라 하면 보통 친환경 무기, 비살상 무기 등을 말한다.


비살상장거리음향장치 LRAD(Long Range Acustic Device) : 평형감각상실, 두통 등 유발



초강력 전자기 펄스탄부터 살펴보자. 흔히 EMP탄이라고 하며 게임방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모게임에서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EMP탄을 볼 수 있는 모(?) 게임

                                


EMP탄은 순간적으로 전자 장비를 오작동시킬 정도의 강력한 전기장․자기장을 일으켜 적의 전기 장치․시설 등을 무력화시키는 무기이다.
현재 이를 응용해 이라크전 등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등장한 급조폭발물(IED)제거를 위한 EMP 발생기술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급조폭발물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폭발장면 - 영화 Hurt Locker 중에서 -



탄소섬유탄 적의 전력시설에 탄소섬유를 살포하여 전기적 단락, 누전 및 방전 등을 일으켜 마비, 파괴시킴으로써 적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비살상 무기이다.


탄소 섬유탄 폭발과정

                                              

영화 스타워즈에서 사용되던 광선검과 유사한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 또한 녹색 신무기로 연구되고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는 UAV(무인항공기), 항공기 등에 장착하며, 전기에너지로부터 고에너지의 레이저광을 발생시켜 동체를 파괴하거나, 유도탄 탐색기 및 감시정찰장비의 전자광학 센서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이다. 별도의 추진제나 화약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 에너지를 통해 레이저빔을 발사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은 물론 환경오염이 전혀 없는 무기이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무기이기도 하다.

                                                 

고에너지 레이저무기



이외에도 고섬광탄, 태양전지를 활용한 비행체 연구, 하이브리드 전투차량 개발 등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가장 파괴적인 전쟁 무기들이 친환경, 비살상무기로 진화하고 있다.


레이저를 쏘아 일시적으로 눈을 멀게하는 비살상무기

                            

물론, 무기를 더이상 개발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일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을 그리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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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 없다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28일 북한의 국방위원회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관심을 끌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국제정세가 북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만큼 다급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물론 철저한 부인과 책임회피로 일관하였는데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아 그리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었다.
우리 국방부는 이에 대해 5월 31일, 조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들어 반론을 제시하여 북한측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하였다.
 

철저한 부인으로 일관된 북한 국방위원회의 기자회견

 

이와 관련하여 당시 북한의 회견 내용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연어급 잠수정이요, 무슨 상어급 잠수정이 없고 130t짜리 잠수정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글어스(Google Earth)에 등장한 잠수정의 위성사진만 가지고도 쉽게 거짓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중 연어급, 상어급이라는 명칭이 북한에 없다는 점은 사실(?)이다.

 

연어급 잠수정 제작공장과 진수장소로 알려진 구글어스의 사진모습



최근 공개된 연어급 잠수정

 

전 북한 잠수함대원이던 이광수씨를 대담한 동아일보 2010년 6월 2일자 기사에 의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광수씨는 "로미오급, 상어급, 연어급, 유고급이라고는 안 하고 톤(t)수에 따라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으로 분류한다. 1000t급 이상은 대형, 300t급 이상은 중형 하는 식이다." 라고 하였다.
사실 함정의 급(Class)은 동일한 함정들을 다른 종류의 함정과 구분하기 위해 붙이는 편의상 구분법인데 보통 초도함의 이름을 따서 정해진다.
예를 들어 천안함은 동종 첫째 함정이었던 포항함의 이름을 따서 포항급 초계함으로 구분된다.

 

로미오급으로 알려진 잠수함. 이 이름 또한 서방에서 부여한 코드네임이다.


     
반면 동구권은 무기의 이름을 스스로 공개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때 서방에서 편의를 위해 코드네임을 부여하였고 이것은 당연히 무기 제작국의 의사와 관련이 없다.
예를 들어 동구권의 대표적 전투기인 MIG기 시리즈에 대해 서방은 전투기를 의미하는 F로 시작되는 타칭을 부여하였는데, MIG-15 Fagot, MIG-17 Fresco, MIG-19 Farmer, MIG-21 Fishbed, MIG-23 Frog Foot, MIG-25 Foxbat 등이다.

 

농부(Farmer)라 불리는 MIG-19. 제작국에서 부여한 애칭이 아니라 서방측에서 부여한 코드네임이다

 

당연히 연어급처럼 새롭게 알려진 북한 잠수함의 구분명칭은 북한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한미정보 당국이 부여한 명칭인 것이다.
세계적인 전략정보 싸이트인 Globalsecurity 에서도 연어급의 이란 버전인 가디르급과 함께 Yono Class / Ghadir Class  Submarine 으로 표시할 정도이고 북한도 우리가 붙인 이런 구분법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다.

 

Globalsecurity 에 소개 된 연어급 잠수정



동급 잠수정으로 알려진 이란의 가디르급

 

사실 정보당국이 연어급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고 일부 실제 제작 중인 사진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자신들이 부여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인 것처럼 주장하는 북한의 교묘한 말장난은 통용될 수가 없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고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무기체계마저도 공공연히 부인하는 자세에서부터가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이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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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5월28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하였
니다.  




국방부와 합동조사단은,

 5월31일 '
북한 주장은 명백히 허위'임을 조목조목 설명하였습니다. 


합동조사단은 北의 연어급 잠수정 영상사진을 확보하였다.



'北의 주장'과 합동조사단의 설명내용을 한번 들어보시죠.

아래 주소(URL)를 클릭하세요.
 

http://www.mnd.go.kr/mndMedia/mndNew/mndPlanManage/20100531/1_-12460.jsp?topMenuNo=1&leftNu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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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작지 않았던 커다란 은혜

 
 
전투병을 파병한 16개 참전 국가를 포함하여 6.25전쟁 당시에 무려 40여 개의 나라들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직간접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웠을 때 도움을 주었던 이들 국가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두고두고 되새기고 기억하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듯하다.
 

6.25전에서 맹활약하는 필리핀군

                             
 
이들 국가들 중에는 전투병력 및 무기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으로도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미국과 같은 나라는 물론 의료용 알콜과 혈청 같은 특정물품을 보내주었던 쿠바 같은 생소한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라도 아쉬웠던 당시 우리나라의 입장을 고려할 때 도움을 주었던 나라들의 경중을 일일이 따지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지원한 40여 국가 중 굳이 참전 16개국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다른 가치로는 도저히 환산 할 수 없는 고귀한  인명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전 UN군 병사들 대부분에게 극동의 신생국 코리아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이역만리 타국이었다.
이처럼 생소한 곳에 와서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귀한 생을 마감하거나 아니면 평생을 가지고 갈 부상을 당하였다.

 

많은 외국의 젊은이들이 사상당하였다.

                                 
 
이런 너무나 고마웠던 16개 참전국 중에는 룩셈부르크대공국 ( Grand Duchy of Luxembourg ) 도 있다.
흔히 베네룩스 3국이라는 단어처럼 많이 들어는 보았지만 의외로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나라가 바로 룩셈부르크인데 유럽 중부의 프랑스, 독일, 벨기에 사이에 있는 입헌군주국으로 서울시의 4배 정도 되는 크기에 약 45만의 국민이 사는 미니국가다.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는 1867년의 런던조약으로 영세중립이 보장되었던 국가였다.
그러나 이웃 벨기에와 더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일에게 점령당하여 수많은 희생자와 국토의 황폐를 초래했기 때문에 소극적인 중립을 포기하고 1948년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창설국이 되어 집단 안보체계를 통한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는 정책 전환을 하게 되었다.
 

중립을 포기하고 집단안보 체제에 가담한다.(전쟁 당시 룩셈부르크를 점령한 독일군)

  
 
중립을 포기한 룩셈부르크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최초 44명의 자원자들로 구성 된 소대규모의 부대를 1950년 11월 한국에 파병하였고 이후 연인원 89명의 용사들이 지구 반 바퀴 건너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였다.
워낙 작은 규모라서 단독적인 작전은 펼치지는 못하였고 미 제3사단 예하의 벨기에대대에 편입되어 휴전 후까지 전선에서 활동을 하였다.
 

6.25전쟁에 참전한 룩셈부르크소대 (사진출처-동아일보)

                
 
하지만 룩셈부르크군이 소규모라 하더라도 후방에서 편하게 작전을 펼쳤던 것은 아니었다.
전사 및 실종자 7명에 21명의 용사들이 부상당하였을 정도로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는데 이러한 규모를 분석하면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모든 참전국들 중 총 인구 대비 참전 병력 비율 및 전사상자 비율이 1위를 하였을 만큼 대한민국에게 최선의 도움을 우리에게 주었던 국가다.

 

룩셈부르크와 그 국민들께 감사를 전한다(유럽연합군의 일원인 현재 룩셈부르크군의 멋진 모습)

 

룩셈부르크는 냉전이 끝난 현재 안보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서유럽에 있으면서도 2개 대대 900명의 상비군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다.
유럽 주요국가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워낙 나라가 작아 의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룩셈부르크는 한국전 당시 이처럼 귀한 피를 받쳐가며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룩셈부르크와 그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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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입니다.

 

먼저 국민과 언론인 여러분들께서

「천안함 사태」로 인해,

심려가 크셨음에도 불구하고

軍의 사기를 염려하시며

많은 격려를 보내주신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민‧군합동조사단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미 밝혀드린 바와 같이,

천안함은 북한 잠수함정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군사행동은

우리 해군에 대한 무력공격이며,

대한민국에 대한 명백한 군사도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를 비난하면서

험악한 수사적 위협과 실제 도발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 軍은 한・미 연합정보자산을 통합 운영하여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해

24시간 감시활동을 강화하면서

만반의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軍은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 의지를 근절하고,

불법적 행동에는

상응하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는 점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입니다.

 

첫째, 오늘 5월 24일부터 지난 6년간 중단되었던

대북 심리전을 재개합니다.

남북은 지난 2004년 6월 4일

「서해상 우발충돌 방지 및

군사분계선일대 선전활동 중지」에 관해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북함정간 통신망 교신과

제3국 불법어선에 대한 정보교환,

서해 통신연락소 운영 등

서해상 우발충돌방지를 위한 합의사항을

2008년 5월부터 지금까지 준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공격한 것은

서해 우발충돌방지 관련 합의서 제2조 2항의

“상대측 함정에 대해 부당한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결정적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더욱이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우리 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허위 조작과 비열한 선전 선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심리전 재개는

정전협정, 남북불가침, 상호 비방・중상 금지 등의

합의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북한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정당한 대응조치입니다.

 

둘째, 우리 정부는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전면 불허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軍은 오늘 5월 24일 이후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진입을 차단하고,

이에 불응하는 경우에는

강제 퇴거 등의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북한군이 상선으로 위장하여

우리 영해의 해양정보와 작전환경을 정탐하고,

해상침투용 모선의 기능을 수행하며

잠수함정의 잠항 침투 등을 획책하는 것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셋째, 가까운 시일 내에 서해에서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 훈련에는 한・미의 최정예 전력이 참가하여

북한의 수중공격에 대한 방어전술과

해상사격 능력을 집중적으로 향상시킬 것입니다.

 

넷째,‘확산방지구상(PSI)’의 정신에 따라

북한의 핵 및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역내・외 해상차단훈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해군이 주관하는 역내 해상차단훈련은

금년 하반기 중에 실시될 예정이며,

금년 9월 호주가 주관하는

역외 해상차단훈련에도 참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 軍은

추후 나타나는 북한의 반응과 태도에 따라

필요한 군사적‧비군사적 조치를 강구할 것입니다.

 

우리 軍이 시행하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북한이 「천안함 사태」와 같은 불법적 군사도발을

다시는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여

우리의 안보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軍은

국민 여러분의 사랑과 신뢰 속에서

「천안함 사태」를 교훈삼아

적의 다양한 도발 유형을 고려하여

대비태세를 보완하고

실전적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더욱 강해질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2010년 5월 24일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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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합동조사단은,

국내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이 참여한 가운데 과학수사, 폭발유형분석, 선체구조관리, 정보분석 등 4개 분과로 나누어 조사활동을 실시하였습니다.

오늘(5월20일) 발표내용은, 조사단에 참여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과학적․객관적 접근방법을 통한 조사활동과 검증과정을 거쳐 도출한 결과입니다.

천안함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 및 분석한 결과를 보면,
천안함은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민군합동조사단 발표와 발견된 북한 어뢰

                       

침몰원인을 어뢰피격으로 판단한 이유는, 선체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고 분석해 보았을 때,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습니다.주갑판은 가스터빈실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습니다.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인 것도 수중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좌현 선저부에서 발견된 알루미늄 조각

                       

생존자와 백령도 해안 초병의 진술내용을 분석한 결과,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100m의 백색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진술내용 등은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하였습니다.

또한, 사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는 등 충격파 및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습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습니다.지진파와 공중음파는 동일 폭발원이었으며,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합니다.


수차례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수심 약 6~9미터, 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대략 좌현 3미터의 위치에서 총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발표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어뢰를 활용한 공격에
제한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침몰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부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습니다.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 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 이라는 한글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도 일치합니다. 이러한 모든 증거는 수거한 어뢰 부품이 북한에서 제조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일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좌초나 피로파괴, 충돌, 내부폭발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폭발 원점에서 채증한 북 어뢰 샤프트

                      


결론적으로,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결정적 증거물과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사체 검안결과,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결과,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결과, 백령도 근해 조류분석결과, 수집한 어뢰 부품들의 분석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규모의 어뢰로
확인되었습니다.


연돌 연통내부 화약 검출

                       

울러 지난 5월 4일부터 운영해 온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 5개국의 '다국적 연합정보분석TF'에 의해 확인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북한군은 로미오급 잠수함(1,800톤급) 20여척, 상어급 잠수함 (300톤급) 40여척과 연어급(130톤급)을 포함한 소형 잠수정 10여척 등 총 70여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에 천안함이 받은 피해와 동일한 규모의 충격을 줄 수 있는 총 폭발량 약 200~300kg 규모의 직주어뢰, 음향 및
항적유도어뢰 등 다양한 성능의 어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 연습용 어뢰(스크류 부위)

                         

와 같은 사실과 사건 발생해역의 작전환경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작전환경 조건에서 운용하는 수중무기체계는 소형잠수함정으로단됩니다. 또한 서해의 북한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전에 서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주변국의 잠수함정은 모두 자국의 모기지 또는 그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5월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 즉 각각 5개의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장치는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과도 일치합니다. 러시아산 어뢰나 중국산 어뢰는 각기 그들 나라의 언어로 표기합니다.

북한산 CHT-02D 어뢰는 음향항적 및 음향 수동추적방식을 사용하며 직경이 21인치이고 무게가 1.7톤으로 폭발장약이 250Kg에 달하는 重어뢰입니다.

이러한 모든 관련사실과 비밀자료 분석에 근거하여,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또한, 이상의 증거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어뢰는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되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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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최근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국방개혁'이 그 주제였습니다. 



'국방개혁'이라 하면, 많은 분들께서 난해해하거나 생소하게 느끼실텐데요,

'국방개혁'은 '국방의 선진화와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비하여 2005년에 수립된 중장기발전계획'니다. 2012년 전시작전권의 전환과 2020년까지 국방개혁의 달성을 목표로 수립되었던 '국방개혁'은, 계획수립 당시엔 북한 위협이 감소할 것을 전제로 수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월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하였고, 5월13일 정부는 국가안보시스템의 총체적 재점검을 위해 '국가안보태세 확립과 국방개혁2020 재검토'를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 "국방개혁,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는 우리 국방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는 군 참석자들..

                              

토론회는, 한국국방연구원, 세종연구소, 조선일보 등 5개기관의 국방분야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고, 국방부와 합참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역시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토론회에 다녀온 제가 토론회의 대강을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순간 여러분들도 국방개혁에 관하여 한말씀 남기셔야하는 국방의 의무가 발생함을 알려드립니다. ^^

토론회는, 현 안보태세의 문제점, 북한의 위협 가능성, 이에 대한 대응방안, 이에따른 국방개혁의 과제 등을 짚어보고자 하였습니다.

토론중 발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 군의 전략과 전력의 현주소'라는 주제에 대해 국방연구원 차두현 연구실장의 발제입니다.


차두연 연구실장 발제

                                          

" 천안함 사태를 통해 우리가 교훈으로 얻은 것은, '제도'나 '계획'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국방부 혼자서 모든 것을 할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외교, 안보, 재정 등 위기 유관부처간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우리사회가 문제의식을 너무 국방태세의 취약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위기'에는 예방과 대응, 사후관리가 모두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군의 현주소 측면을 살펴봅시다. 천안함 사건과 같은 위기에 대응하려면, 북의 도발에 대비한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한, 1년이상 긴장이 지속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장병들에게 적절한 휴식조치도 병행이 되어야 유사시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유관 기관간 보고체계의 신속/정확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특별히 현 시점에는 모든 주변국들이 공감할 상황종결을 유도하기 위한 차후대책이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싸울것인가'의 정립이 매우 필요합니다.
국방개혁의 합리적 수정/보완을 위해서는, 위협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분명한 전략수립, 취약한 해/공군력의 자체 억제력 제고, 이를 위한 무기체계의 장비유지예산 증액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국방개혁 2020 수정안, 바람직한 방향이었나?' 에 대하여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편집인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치논리에 좌우되어 턱없이 부족한 국방개혁 예산의 증액이 필요합니다. NLL최전방의 수요는 줄지않았는데 고속정의 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해군의 전력...'국방개혁 2020'의 핵심은 계획된 예산의 조달입니다. 육군 중심 군 지휘구조의 '삼군균형발전'도 필요합니다. 합리적 예산과 조직이 운영될때, 효율적 전력투자와 국방개혁이 달성될 것입니다.

이어, '남,북 전력의 강점과 취약점' 대해 디펜스타임즈 김병기 편집위원이 발제하였습니다.  




"최근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계를 만들기위해 군이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경제난에 따라 무기/탄약이 노후되고, 병사들의 체력이 약화되는 등 체제유지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으로 군사적으로는 한계에 달하여 무모한 모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북한의 강점이라면, 전략적 목표 수립과 그 구현을 위한 수단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여, 약점 극복을 위한 특수전 병력강화, 게릴라전 등 준비, 군지휘부의 독자적 작전기획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남한의 약점은 국민전체의 안보 불감증, 미군에 의존적인 군 구조와 의식에 따른 한국군 지휘부의 작전기획능력 부족, 3군의 자군 이기주의에 따른 어중간한 합동군 체제 등이며, 강점이라면 미국과의 동맹체제에 따른 강한 억제력(핵억제력 등), 세계적 신뢰향상에 다른 정치/외교 입지 우위, 무기의 현대화 등이라 하겠습니다. 한국군은 너무 빨리 북한에 대한 자만심을 보여왔습니다. 북한군은 언제든 폭발 가능성이 있는 불발탄 같은 존재입니다." 

네번째로, '북한의 특수전 능력과 양산 평가' 관해, 북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

                                       

"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으로 인민군대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대다수 병사들의 전투능력 상실에 따라 특수부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2003년 이라크전 이후 게릴라전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게릴라전을 강화, 핵무기 개발, 정치범을 이용한 세균무기 및 생화학무기 등을 개발(세계3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도발임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는데, 북한도발의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인민군의 사기 제고를 위한 충격적 승리가 필요했고, 둘째, 화폐개혁에 따른 북한주민의 분노를 잠재울 외부로부터의 공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방개혁, 어떻게 재조정되어야 하나?' 주제로 세종연구소 이상호 박사가 발표하였습니다.


세종연구소 이상호 연구위원

                                                 

" 최초의 '국방개혁 2020'은, 자주국방 등 당시의 진취적 정책이 잘 반영되어 있으나, 실현이 의문시되는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정부의 수정안은, 정량적 평가에 치우쳐 예산의 축소, 지상군 전력강화에 주력, 해/공군 전력보강 지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정한 국방개혁의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측면보다는 군의 입장에서 '전쟁의 방법(군사전략과 작전)'에 맞는 합리적 예산과 전력 소요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은 토론회의 발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국방개혁'이 어느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보는,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를 가능케하는 기본 인프라이며, '국방'은 온 국민의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군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군의 명예는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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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전쟁 [ 下 ]

 
 
그로부터 1주일 뒤 이번에는 장소를 엘살바도르로 옮겨 2차전이 벌어졌는데, 홈팀인 엘살바도르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 원정 응원을 온 대규모의 온두라스 응원단의 불뿜는 응원 대결 속에 경기가 개시되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이번에는 홈코트의 이점을 얻은 엘살바도로가 3-0으로 승리하여 승패를 원점으로 돌려 버렸다.
 

엘살바도르에서 개최된 2차전에서 홈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에 경기가 어느 정도 과열되었는지 경기를 중계하였던 온두라스 방송단이 "엘살바도르에게 죽음을~", "엘살바로르에게 신의 저주를!~" 이라는 부적절한 멘트를 쉴새없이 외쳐대었다.
마치 상대편을 타도할 원수로 간주하여 생방송에 공개적으로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어이없는 모습이었다.
 

생방송 중에 상대편을 노골적으로 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렇듯 과열된 경기와 관중들의 적대감으로 가득찼던 경기가 끝난 후, 관중석에서는 흥분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관중 간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원정을 와서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온두라스의 응원단은 일방적으로 집단 린치를 당하여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국경 밖으로 추방당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소식이 온두라스에 전해지자 온두라스 전역에선 거주하고 있던 엘살바도르인에 대한 무차별적 보복 테러행위가 발생하였다.
 

경기 후 엄청난 보복 테러가 발생하였다.

 

그동안 불편하였던 관계에 있다가 축구경기로 감정대립이 격해진 이 두 국가는 6월 16일 상호간에통상교역 금지를 단행하고, 이에 대하여 6월 18일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를 제소하여 버리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6월 23일 양국은 단교를 단행하였다.
그야말로 다혈질의 라틴아메리카 국민들답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양국간의 관계는 순식간에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요즘은 홈앤드어웨이 ( Home and Away ) 방식으로 축구경기가 벌어질 때 양편의 승패가 동일하면 원정 경기에서 다득점한 팀이 최종 승리한 것으로 판정하는데, 당시에는 재경기를 벌여야 했다.
승패가 1승 1패로 동일하여 이미 축구를 넘어 폭력과 외교적 마찰을 불러왔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양국간의 재경기가 확정되자 국제축구연맹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세 번째 경기는 제3국인 멕시코에서 벌이기로 결정되었다.
 

3차전은 육박전으로 변질되었다.


 
단교 직후인 6월 27일, 제3의 장소인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최종전은 양측을 응원하는 관중들보다 삼엄히 경비에 나선 멕시코 경찰들이 더 많았던 경기로 기록되었는데, 경기내용은 안 봐도 비디오인 것처럼 운동이 아닌 집단 격투기같은 형태로 진행되어 말그대로 선수들이 피를 흘리는 혈전으로 비화되었다.
결국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3-2로 엘살바도르가 승리를 거두어 결말을 보았다.

 

엘살바도르는 선전포고와 함께 전쟁을 개시하였다

 

그런데 이런 경기 결과는 양국 간의 감정을 풀기는 커녕 더욱 악화시켜 계속되는 외교적 비난과 자국에 있는 상대국 국민들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다.
특히 온두라스 정부의 방관 하에 상대적으로 온두라스에 자국 국민이 많았던 엘살바도르인들에 대한 피해가 늘어났다.
그러자 분노한 엘살바도르는 7월 13일 새벽, 온두라스에 선전포고 후 포병부대의 포격을 시작으로 전쟁을 개시하였다.


온두라스는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패전에 이르렀다

 
 
엘살바도르군의 주력이 온두라스 동서 요충지인 엘포이와 아마킬로를 함락시키고 공군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와 여러 도시를 폭격하였다.
기습을 받은 온두라스는 반격을 하였지만 초전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여 2천 여 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며 치욕적인 패배를 거듭하였다.
결국 이를 방관할 수 없던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의 중재로 온두라스는 사실상 패전을 당한 상태로 휴전에 이르게 되어 100시간만에 전쟁이 종료되었다.
 

축구전쟁 당시의 온두라스 공군 F4U

 

이 두 국가 간의 앙금은 오래 동안 계속되다가 1980년 10월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벌어진 평화조약으로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런 사례는 극히 희귀한 사례고 재발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런데 그동안 뉴스를 보면 폭력사태를 우려하여 종종 무관중 경기가 열리는 등,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는 여타 경기종목과 달리 스포츠 이상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고 상대를 존중할 때 스포츠는 가치가 있다.

 

이러한 축구 이상의 그 무엇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응원문화처럼 아름답게 표현되면 다행인데, 전쟁으로 비화한 위의 사례같이 변질된다면 스포츠의 존재 이유가 없어질 것 같다.
축구에서의 전쟁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그라운드에서만 펼쳐지고 상대방을 존중할 때만 멋있다.
이번 2010년 월드컵에서는 멋진 축구전쟁만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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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올해는 이 땅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이 일어난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 60주년을 기념하여 5월4일부터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6.25전쟁을 재조명하여 잊혀져가는 6.25전쟁을 되새기고 국내외 참전자에 대한 감사,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통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아! 6.25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내 '아! 6.25' 특별기획전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 해당 전시관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근무하고 있는 제가 사전답사를 다녀와서 그 대략을 말씀드립니다..    

전시장은 6.25 관련 4개의 테마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테마1>은, '6.25 전쟁'입니다.
6.25전쟁 발발에서 3년후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6.25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전시라 하겠습니다.



징병의무가 없었던 재일 학도병의 자발적 참전

                                                   
                                           

인천상륙작전



공산군과 국군의 삐라 심리전

                                   

종군기자가 본 6.25 전쟁

                                        

<테마2>는, '한강의 기적' 입니다.
1960년대 대한민국 근대화의 시작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6.25전쟁 이후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의 국력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테마2 에서는, 오늘의 국방과학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도 만나실 수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차기전차 XK-2 “흑표” 와 세계에서 12번째로 개발한 초음속 비행기 “T-50 고등훈련기”, 디지털 기술이 적용돼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전 배치되는 복합형 소총 'K11' 등이 그것입니다.


 


 

한강의 기적(1960년 근대화~오늘)

                                        

우리의 오늘

                                                             

국방과학

                                                 

<테마3>는, '오늘의 북한'입니다.
오늘의 북한과 북핵의 실상을 소개하며, 세계 분단국가들의 통일사례를 통해 분단없는 조국을 말합니다.

<테마4>는,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 입니다.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DMZ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담았습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현장이며 생태자원의 보고인 DMZ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며, 특별히 <테마4>는 국방부(육군본부)와 민간이 공동기획한 전시입니다. 





과거 6.25 전쟁을 경험하였던 세대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전쟁기념관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은 우리의 역사와 오늘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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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전쟁 [上]


 
 
2010년은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의 대제전인 월드컵(FIFA World Cup)의 해로 이번 제19회 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6월 11일 개최될 예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개최는 경합에 의해 결정되었다기보다는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대륙에서, 그것도 한때 흑백 갈등의 상징이었던 비극의 땅에서 세계적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평화를 어필하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금번 월드컵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그런데 평화의 제전이라는 모토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건이 월드컵의 역사에 있었다.
그것도 모든 나쁜 것들 중의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 바로 월드컵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당대의 기준으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는데,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도 아닌 불과 한 세대 전의 이야기로 흔히 축구전쟁(Soccer War)로 통칭한다.  

월드컵과 관련하여 월드컵 역사에 있어 유명한, 하지만 창피한 사건이기도 했던 축구전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전쟁의 포연속에서도 열리는 것이 축구경기이지만 어처구니없게 축구가 전쟁을 촉발시킨 역사가 있었다.


 
한 세기 전의 영국이나 현재의 미국 정도가 아니면 대양을 건너가서 외국과 전쟁을 벌일 나라는 사실 없다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 국가 간의 충돌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 사이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고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간의 사이가 좋았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들끼리는 사이가 나쁠 일도 없고, 혹시 사이가 나빠진다하여도 전쟁까지 벌어지기는 사실 힘들다.
예를 들어 쿠바가 한때 우리나라의 적성국이었지만 적대국이라 하기에 곤란하였던 이유도 사실 너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전쟁은 인접국 사이에서 벌어진다.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몰려있는 중미(Central America)의 경우만 해도 역사적,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 중에서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국가들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온두라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축구 때문이었다.
축구전쟁이라는 명칭처럼 축구가 양국간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면에는 전쟁이 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내재적 요인이 축적되어 폭발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던 상태였다.
마치 호시탐탐 전쟁을 개시할 구실만 찾고있다가 사라예보의 총소리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모두 독립 이후 계속해서 반복된 정변으로 해가 뜨고 질 정도로 정부가 안정되지 못한 전형적인 중미 국가들이었다.
여담으로 중미에서 정치적으로 안정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코스타리카 정도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 지역은 정치적 안정을 찾아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일본의 통일을 이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군부가 군부통치하던 아르헨티나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여 무마하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것처럼, 1960년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정부 모두는 국가 이익을 위해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용인하고는 하였다.

많이 닮은 엘살바도르(좌)와 온두라스 국기

 
 
20세기 초부터 약 30만 명의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인구는 양국이 얼추 비슷한데 국토는 온두라스가 8배 정도 크다)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이 온두라스의 경제권을 급속히 장악하고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게 되었지만 온두라스 국민들에게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자 1969년 온두라스정부가 새로이 농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가시같던 엘살바도르인 수만 명을 국외로 추방하자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던중 월드컵예선전이 열렸다.(1970년 멕시코월드컵 포스터)


 
바로 이런 와중에 1970년 제9회 멕시코월드컵 중미예선에서 두 나라가 맞서게 되었다.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루어진 예선전이 벌어져 온두라스에서 1969년 6월 8일 경기가 먼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는 일방적으로 응원을 받은 홈팀 온두라스가 1-0으로 승리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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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7일, 국회에서 '전장스트레스 실태와 관리 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책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국회의원회관 1층 소회의실




'전장스트레스'...

우리는, 평소 무수한 종류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살아갑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연인과의 갈등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종종 스트레스를 호소하죠.

'전장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낯선 개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국군이 있는 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국회 정책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을 소개해 드려야지요?


전직 국방부장관 김장수 의원과 김동성 의원...



국민의례..(세미나를 주최한 김정 의원도 보입니다)



국방부장관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전장스트레스란,
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말하죠. 
전장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피로와 고통이 강요되는, 장래를 예견할 수 없어 여러가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라 하겠습니다. 




전장스트레스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전쟁, 교통사고, 폭력 등 강한 충격이 있는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장애로서, 조기발견과 치료가 어렵고 발병시기의 예측도 곤란하며 완치 후엔 재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증상이라 합니다.  세부 증상으로는, 외상적 사건 재경험에 따른 고통, 정서적 마비, 죄책감, 거부감, 환각 등을 경험하게 되며, 우울감, 자살기도, 공격성, 파괴적 행동 등을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증상은 대개 3개월 이내에 나타나지만, 길게는 30년 후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장병들은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직면할 극한의 상황에 대한 블안감으로 극심한 전장스트레스를 체험하게 됩니다. 전장스트레스는, 전투 피로감 증가와 전투의지 파괴를 야기하며, 종국에는 부대 전체의 사기와 전투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PTSD 국가연구센터를 운영합니다. PTSD의 사전예방-현장관리-전문치료-사후관리를 거쳐 다시 사전관리로 환류하는 PTSD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요,
'09년 미국 RAND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등 파병 장병 16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25%의 장병이 정신과적 질병을 앓고 있으며, 그 중 56%는 2가지 이상의 증세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장스트레스에 따른 PTSD와 우울증은, 자살, 살인충동으로 인한 인명손실 등을 초래하여 재정 손실로 따지면 약 4억~6억 달러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도, 지진 등 재해가 많은 나라로서 재난/재해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일본 '효고 외상성스트레스연구소(HITS)'에서는 '재해지역 정신보건의료 활동지침'을 마련하여 체계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군의 요청이 있을시 직접 군에 방문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답니다.  


대한민국의 해외파병은, 1965년 10월 청룡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991년 국제연합에 가입 이후 다양한 형태로 국군의 해외파병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는 2010년 1월25일 제정된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파병입니다.

이렇듯 국군의 해외파병 임무가 다양화되는 가운데 해외파병 장병 등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관리에 관한 논의는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전 국방대교수인 정효현님은 연구논문을 통해 국방부, 국가보훈처, 민간단체의 유기적 협조하에 'PTSD종합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방안과 의무사령부 내에 미군과 같은 '정신건강증진지원팀'을 공식 설치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였습니다.

계요병원 정신과 전문의 박주언님은,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베트남전 참전,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스트레스 환경에 직면해 있어 PTSD에 대한 고위험 사회라고 하면서, 군대에서도 PTSD 발병이 증가할 수 있어 관심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08년 해당기관 연구팀의 사병, 부사관, 장교를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 대부분(83.1%)이 군내 사고후 정신과적 개입과 PTSD 대응관리체계가 우리 군을 위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위상이 격상됨에 따라 UN 등 국제사회의 파병요구는 증가할 것이며, 현재는 국제적 역할과 국격제고를 위해 해외파병을 적극 수용하는 상황으로, 국가적으로 파병의 목적을 달성하고 군과 부대 및 개인차원에서의 성공적 파병을 위해서는 전문적 전장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군은 2010년 7월부터 해외파병 전담부대를 운용할 예정으로, 이는 파병전 전장 스트레스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로 인명손실 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한 방안이며, 이에 따라 개인과 군 , 국가차원에서는 파병의 엄청난 부가가치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국방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를 달성하려면, 무기체계 등 물리적 영역의 발전 못지않게 장병 개개인의 정신적 영역관리에 대한 업그레이드도 병행되어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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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의 시작을 알린 전차
 


 1945년 5월 7일, 프랑스 랭스(Rheims)에 있는 연합군사령부에서 독일의 항복조인식이 열렸다.
하지만 소련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독일을 겁박하여 다음날 베를린에서 그들의 주도 하에 별도의 항복조인식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전쟁의 끝을 상징하는 행사는 새로운 대립과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의 장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냉전(Cold War)의 시작이었다.

 

전날 미-영 주도하에 벌어진 항복조인식에 반발한 소련은 1945년 5월8일 별도의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1945년 9월, 패전국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연합군의 전승기념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명목상으로는 승리를 자축하는 연합국들의 합동행사였지만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의 축제에 서방측 연합군 관계자가 옵서버로 참관한 것과 다름없었다.
비록 겉으로는 화기애애하였지만, 행사에 참가한 군의 고위 책임자들은 앞으로 서방측과 소련은 한 배를 탈 수 없는 상대임을 잘 알고 있었다.


승리 직후 함께 행진하는 미국과 소련의 병사들

 

사실 전쟁 내내 소련군과 칼을 섞었던 것은 독일이었으므로, 서방측과 소련은 군사적으로 낯선 상대였다.
따라서 이번 퍼레이드는 소련군의 위용을 미영의 관계자들이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던 서방측 참관단은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행진하던 소련의 전차대열을 보고 경악하였다.
사전에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최신형 전차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차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였다.

 
 
현대 소련전차의 어머니라고도 불려진 JS-3(또는 IS-3) 중(重)전차가 세상에 선보인 것이었다.
IS는 스탈린의 이름(Iosif Stalin)을 딴 것인데, 때문에 흔히 소련의 IS중전차를 스탈린전차라고 부른다.
서방측 관계자들은 당시 서방측 전차들이 흉내 낼 수조차 없을 만큼 탁월한 JS-3의 외형만으로도 압도당하고 있었다.

 

외형에서부터 IS-3는 탁월하였다.



JS-3는 아름다운 곡선형태의 터렛(포탑)과 조종사가 위치하는 동체의 전면장갑을 V자 형태로 제작하여 피탄 면적을 최소화하였다.
더구나 최신 장갑형태인 공간장갑을 사용하여 방어력을 배가하였다.
이러한 장갑방식은 현대 전차들의 대부분이 기초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구조인데, 이것은 다시 말해 당대 기술수준을 뛰어넘는 구조였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방어에 적합한 구조는 1940년대 기술로 구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당시에도 이런 구조가 상당히 뛰어난 형태임은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전차를 제작하는 것은 보통의 기술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전차를 보자마자 경악하였던 것이다.
JS-3는 장갑능력 뿐만 아니라 122mm 43구경포를 장비한 화력도 감히 비교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그 만큼 소련은 기술적으로 매우 진보한 이 중전차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최신 전차에 대한 소련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JS-3는 기존에 사용하던 JS-2를 개량하여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말, 체르야빈스크(Chelyabinsk)에 있는 제100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였다.
제2차 대전 참전기록이 없이 전후 행사에서 처음으로 목격되었던 이유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굳이 다 이긴 전쟁에 투입하여 장차 대립할 미국에게 사전에 신기술을 누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전쟁 전 트랙터를 생산하던 체르야빈스크 제100공장


 
소련에 명품 T-34중형(中型)전차가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원조한 전차로 전쟁을 치렀다고 거만하게 생각하고 있던 미국은 이 전차의 등장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차세대 전차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JS-3는 소련의 중전차 시리즈 프로젝트의 효시인 T-10의 원조가 되었다.
한마디로 그날의 놀라운 등장은 동서냉전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공여 받은 미제 M-3전차로 전투를 하는 소련군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련의 전차개발 사상이 중전차와 중형전차를 함께 제식화하여 기갑전력을 구성하였던 기존방식을 제2차 대전 후 폐기하고 T-54/55로 대표되는 중형전차 정책으로만 진행되면서 IS-3로 대표되는 소련의 중전차 개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아마도 당시 서방측 전차가 소련 측 전차에 절대열세 때문에 굳이 중전차개발에까지 자원을 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냉전 시기 소련을 대표한 T형 전차


 
사실 미국이 소련을 능가하는 전차를 개발하여 제식화한 것은 1980년부터 본격 배치된  M-1전차이후부터다.
이것은 T시리즈로 대변되는 소련의 전차를 월등히 능가하는 전차를 만드는데 그만큼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냉전기간 동안 미국을 포함한 서방측 스스로도 독일제 레오파드(Leopard)를 최고의 전차로 평가하였을 정도였다.

 

IS-3이 처음 등장한 1945년 9월의 행사는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혹자는 중동전 때 이스라엘이 사용하던 미제 전차가 아랍 국가들이 보유한 소련제 T시리즈 전차에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두지 않았냐고 반문 할지 모르겠지만, 전차성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전술 및 훈련의 차이였다.
비록 IS-3는 소련의 정책 전환으로 전차개발사에 아주 잠시만 등장하는 전차가 되었지만 냉전의 개막을 알리는 무시무시한 발자국을 역사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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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0일 오전 국방부장관의 기자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진행중인 천안함 침몰 원인조사와 관련하여 최근의 근거없는 논란들을 자제하여 주실 것을 국민과 언론에 요청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래는 국방부장관의 브리핑 내용입니다.



   "국방부는 현재 천안함 침몰사건 원인의 조속한 규명을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국적 民軍합동조사단'은 채증과 과학적 분석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극히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최근 사회 일각과 일부 언론, 특히 사이버공간에서 근거 없는 추측성 논란이 지속되어 국민들에게는 혼란을, 국방부와 민군합동조사단에 대해서는 불신을 키워 향후 있을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내용의 신빙성에조차 의구심을 갖게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하는 점입니다.

   합동조사단의 그간 조사결과, 확인된 사항을 몆가지 말씀드리면, 


   1. 어뢰제조에 사용되는 화약성분인 RDX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나, RDX가 서방세계에서만 사용되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RDX는 현재 모든 국가의 군과 산업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합동조사단은 선체 절단부위에서 수 개의 알루미늄 조각을 채집하여 선체의 일부인지, 어뢰의 파편인지를 정밀 분석 중에 있습니다.

   3. 합동조사단 중간발표시 침몰원인이 '비접촉성 외부폭발'임은 이미 공식화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좌초설', '좌초후 충돌설' 등을 주장하고 있음은 매우 유감스런 일입니다.  

   앞으로도 지속하여 '다국적民軍합동조사단' 은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전문가의 참여로 검출된 화학물질과 파편성분의 분석과 시뮬레이션 작업 등을 통해 정확한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 사태로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근거없는 추측성 논란은, 우리의 대응과 후속조치의 신빙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 원인조사는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접근해야 할 사안임을 다시한번 말씀드리며, 국민과 언론은 정부와 군을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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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월 7일로 국회 파병동의안 의결에 따라 우리군이 아이티로 '단비부대'를 파병한 지 70일이 되었습니다.


단비부대 창설식장에서



'단비부대'의 해외파병은 우리군에게 특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나라 파병 역사상 가장 신속히 이루어진 파병이자,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파병이라는 점이 바로 그러합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09년 11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정식 가입함으로써 사상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지 어린이에게 간식을 나누어주는 단비부대원



'단비부대'는, 2010년 1월 12일 강한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중앙아메리카 국가 '아이티'의 피해복구 및 재건을 위해 2월 17일에 창설되었고, 2차례의 선발대에 이어 2월 27일 본대를 파병, 3월 15일부터는 피해복구 및 재건활동을 본격화하였습니다.


단비부대원들의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 활동



'단비부대'는, 그간 다양한 재건 및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지역주민으로부터 '레오간의 희망'이라는 칭송과, 유엔 아이티 안정화 지원단(MIHUSTAH) 및 타 파병국들로부터 'Thunder ENGCOY(번개처럼 빠른 공병부대)라는 평을 받으며 완벽한 임무수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비부대원들의 건물 복구 작업



그렇다면, 아이티의 현지상황과 단비부대의 활동여건은 과연 어떨까요?

아이티는 한국군이 처음 파병된 국가로서 우리군에게 그 지형과 기후 등이 매우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티는 1월 12일 대지진 이후 60여 회의 지진이 꾸준히 관측되고 있으며, 5월 현재 낮 최고기온은 43도를 기록,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등 열악한 기후로 인해 향후에도 현지민들의 피해는 가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치안상황은 호전되고 있고, 적대세력에 의한 테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나, 납치와 절도가 발생하는 등 어려운 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단비부대'는 주어진 여건을 극복하고 정서적 안정 속에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자 장병들의 생일축하 행사, 종교활동, 주말 영화상영 등 장병 정서함양과 스트레스 해소 등을 위해 노력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비부대의 70일간의 일기를 살펴볼까요?

1. 단비부대는 첫번째 임무로, 아이티의 중추신경인 204번 도로를 보수, 정비하고 있습니다.
레오간에서 자크멜에 이르는 204번 도로는, 말하자면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현재 204번 도로는 산사태 등으로 인해 급경사와 낭떠러지가 되어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204번 도로 공사 임무는 '10년 3월 31일 유엔총회에서 결의한 38억 달러 규모의 기금으로 집행되며 유엔 아이티 안정화 지원단(MIHUSTAH)에서도 가장 중점 추진하고 있는 중요임무입니다. 현재 공사는 20%의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7월 말까지 진행 예정입니다.  


204번도로 암석 제거 현장



2. 두번째 임무로, 단비부대는 레오간 시내의 모든 건물 및 학교 잔해를 제거하고 있는데요, 5월 초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 임무는 현지 학생들의 수업여건 보장을 위한 긴급조치 중 하나랍니다.
 

단비부대원의 레오간 시내 건물잔해 제거 임무수행



3. 세번째 임무로, 단비부대는 심정개발 및 급수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레오간에는 주민을 위한 급수시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민들은 정수시설 없이 강물 등을 그대로 마시거나 그 물로 빨래와 목욕 등을 하고 있어 각종 수인성 질병 및 피부병 환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단비부대는 레오간 곳곳에 심정을 굴착하여 주민들에게 양질의 물을 공급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맥탐지기를 이용하여 굴착지점을 찾고 있는 단비부대원들



4. 네번째 임무로, NGO단체 구호활동 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파병 역사상 최초로 외국군의 도움없이 정부(KOICA), 민간NGO단체와 연계하여 구호활동시 모든경호와 지원임무를 담당하는 것입니다. 현지인들은 단비부대원들의 인도주의적이며 적극적인 지원활동과 정성에 감동을 받고 있다고 전합니다.


단비부대원의 NGO연계 지원



5. 다섯번째 임무로, 의료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의 의료수준은 정치,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습니다. 즉, 국가차원의 기본적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등 서비스조차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물품등이 전량 외국에서 수입되어 의료비는 증가하고 현지인 대부분이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이에, '단비부대'는 22명(군의관 7명, 수의장교 1명, 간호장교 4명, 의무부사관 1명, 의무병 9명)으로 전문 의료팀을 구성하여, 매일 아침 8시~오후 6시까지 정기진료를 실시하며 야간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하여 당직군의관을 운영하는 등 24시간 친절하고 수준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레오간 전역에 알려지면서 일일 100명 이상의 환자들이 방문, 70일만에 진료환자 3,500명을 돌파하였다고 합니다. 




아이티 현지인들에 대한 의료지원 활동



6. 그리고, 한,일 연합건설 및 복구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단비부대는 일본군 파병부대와도 긴밀히 협조하여 건설 및 복구활동을 추진하고 있어 한일 군사교류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양국 파병부대는 월 1회 상호방문을 정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난민촌에 대한 연합 민사활동(의료지원, 구호품 전달)과 MINUSTAH 주요사업(도로복구, 배수로 정비, 건물 잔해제거) 등을 공동 추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단비부대장이 일본파병부대장에게 부대 활동사항을 설명하는 모습



이렇듯, 대한민국 단비부대의 인도주의적 재건활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모범적 실천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파병장병들의 안전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우려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할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세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있는 우리군을 격려해주는 편이 더욱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티 현지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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